겸손하게 말하는 법
저번 주에 친할아버지께서 좋은 곳으로 떠나셨습니다. 수술 경과가 좋아서 당연히 자리를 털고 일어나실 줄 알았는데, 곡기를 끊으시며 준비하고 계셨더군요.
저희 아버지는 차남이지만 사정상 장남 역할을 맡으셔서, 장례식 내내 친척분들과 조문객분들에게 아버지 따라 인사드리며 칭찬을 많이 듣게 됐습니다.
예전 같으면 ‘아닙니다. 과찬이십니다.’ 같은 한국에서 흔히 하게 되는 겸손한 방식으로 답을 했을 텐데, 이번에는 저 스스로도 놀랄 만큼 자연스럽게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기분이 좋네요.’ 같이 긍정적인 답변을 하고 있더군요.
아마도 그간 다이어트와 더불어 글을 쓰며 사색을 하고 저 스스로에 대해 묵상하는 시간을 오래 가지면서 자존감이 올라가서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문득 동양과 서양의 겸손이 다르다는 것이 떠올랐습니다.
한국에서 겸손하게 말하는 것은 주로 누군가 나를 칭찬하면 그것에 대해 부정하듯 답하고, 자신을 낮추어 표현하는 것으로 압니다.
예를 들면 ‘너 잘한다.’라고 누군가 칭찬을 하면 ‘아닙니다. 아직 많이 부족하죠.’와 같은 식으로 답변하는 것처럼 말이죠.
물론 요즘에는 이렇게 말하는 것을 지양한다고 들었습니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지만 동양에서 겸손을 표현하는 방법이 서양에서는 자기 비하로 보인다고 알려져 변화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와 더불어 자기 PR이 중요하다는 것이 알려진 지 꽤 됐으니 동양에서 하는 겸손이 설 자리는 더더욱 없어졌겠죠.
이러한 생각들에 더해 '그렇다면 서양에는 겸손이 없는 것인가?' 하고 물음표가 찍혀졌습니다. 분명 겸손이 없지는 않을 텐데, 왜 우리가 하는 것을 자학 수준으로 바라보는 것인가도 궁금하더군요.
언제나 그렇듯 단어에서부터 출발해 보려 합니다. 찾아보니 한국에서 사용되는 겸손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영어 단어는 humility라고 하더군요.
humility
당신을 다른 사람들보다 낫게 만드는 특별한 중요성이 없다는 느낌이나 태도
하던 대로 영영사전을 중심으로 살펴봤는데, 나온 의미는 겸손과는 꽤 많이 달랐습니다. 앞서 '겸손 1' 글에서 말했듯 겸손은 남을 존중하고 (힘이 있음에도) 나를 낮추는 태도를 뜻하는 것이었는데, humility는 힘 자체가 없다는 듯이 말하는 것이 신기하더군요.
그래서 어원을 찾아봤습니다. humility는 라틴어 humilis에서 비롯되었는데, 이는 ‘낮은’, ‘지면에 가까운’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humilis는 라틴어 humus에서 파생되었는데, 이 단어의 뜻은 ‘흙’이나 ‘토양’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어원을 바탕으로 보자면, 땅에 바짝 엎드려 낮은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겸손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왜 그럴까요? 분명 동양에서의 겸손은 저 정도로 낮추지는 않는데 말이죠.
'지들이 더 낮으면서 동양에서 겸손을 표하는 것을 자기 비하로 보다니 웃기지도 않네.'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불현듯 생각나는 것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를 제외한 저희 가족 모두가 천주교 신자여서 가끔 어머니가 말씀하시던 ‘하느님 앞에 납작 엎드려라.’라는 말이 저희에겐 매우 자연스럽다는 점이요.
그렇습니다. 서양에서 겸손을 표하는 대상은 바로 하느님이었던 것이죠.
황제조차 교황으로부터 서임을 받는 시대가 있던 서양은 기독교 중심의 문화가 오래도록 자리 잡았고, 그에 따라 서양에서의 겸손은 신이라는 절대자 앞에서 인간들이 정한 지위는 의미가 없으며 모든 인간이 땅에 엎드려 낮은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서양에서는 오래전부터 기독교가 중심이었고, 하느님이라는 신을 가장 중요시했기에 다른 인간보다는 '신'을 중심으로 사고를 하게 되었고, 이러한 사고방식은 신이라는 전지전능한 절대자 앞에 자기 스스로는 한계가 명확하고 미천하며 땅에 엎드리는 존재로서 받아들이며 겸손을 표하는 것이 당연했을 겁니다.
이와 반대로 동양, 특히 현재 한국에 있어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종교는 다름 아닌 유교입니다. 유교가 주요하게 주장한 것은 주변을 아끼고 챙기는 사람다움, ‘인(仁)’입니다.
공자가 살던 시대에는 살인, 강간, 약탈, 식인 등 다양한 범죄들이 즐비했습니다. 그 속에서 공자가 주장한 것은 ‘우리 인간답게 살자’였습니다.
이것을 조금 다른 시각으로 보자면 동양은 유교를 통해 서양보다 '인간' 중심적 사고를 한 것입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인의예지신(仁, 義, 禮, 智, 信)과 오륜(五倫)으로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인의예지신을 간단히 말하자면 사랑과 정의, 예의, 지혜, 믿음이며 오륜은 부모, 자식 간의 사랑, 임금과 신하 사이의 정의, 부부간의 존중, 어른과 아이의 예절, 친구 사이의 믿음을 얘기합니다.
이러한 내용은 인간관계를 매우 중시하는 문화를 조성했고,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예절을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로 이어졌을 겁니다. 그리고 이 가운데서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함으로써 겸손을 표현하는 것 또한 자연스러웠을 겁니다.
그렇기에 자신을 낮추는 표현을 하더라도 문제 될 것이 없고, 상대 또한 그것을 문제로서 바라볼 일이 없었던 것이죠.
하지만 이러한 결과가 현재 겸손함을 표현하는 데에 있어 동양과 서양의 차이가 생긴 겁니다.
분명 똑같이 자신을 낮추는 표현임에도 그 대상이 다르다 보니, 서양인 입장에서는 '같은 인간인 나에게 왜 신 앞에서 보여야 할 겸손을 표현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을 겁니다.
더불어 서양인들 눈에는 동양인들이 스스로를 노예같이 수준 낮고 미천하게 생각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었겠죠. 신께서는 따로 존재하는데 자신을 그렇게 보다니 얼마나 불쌍해 보이겠습니까? 자기 비하를 넘어 자학으로 보는 게 당연할 겁니다.
반대로 동양인 입장에서 서양인이 오만하게 느껴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인간으로서 맺는 관계에서 각자의 지위나 입장, 위치 같은 것이 있으니 서로를 존중하고 자신을 낮추는 대화를 함으로써 칭찬을 주고받는 것이 당연한데, 동양인인 내가 스스로를 낮추면 불쌍하게 보고 서양인 스스로는 자랑만 하는 것처럼 보이니까요.
하지만 앞서 말했듯 형성된 문화에 따라 달라졌을 뿐, 동양과 서양의 겸손은 잘못된 것은 없습니다. 그저 다를 뿐이죠.
글로벌한 사회가 된 것에 비해 여전히 각 문화권을 서로가 이해하기에는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 겸손함을 서로 달리 표현하는 점에서도 역시 동일하겠죠.
겸손을 보이는 ‘대상’이 다른 것으로, 동서양이 서로 오해가 발생하는 것을 바로잡기란 힘들 겁니다. 오랜 기간을 통해 형성된 문화권에 살고 있는 공동체 수준에서 인식이 달라져야 하니 말이죠.
사실 '바로잡는다'는 표현도 틀렸습니다. 틀린 게 없으니 바로잡을 필요도 없죠. 해야 할 것은 간단합니다.
'표현하는 방법을 바꾸는 것'이죠.
그 방법은 생각 외로 간단합니다.
낮추는 이유는 그대로 두면서, 그것을 표현하는 것에 미세한 변화를 주면 됩니다.
일반적으로 낮추는 표현을 할 때 '뛰어난 것에 비해 내가 낮다.'는 형식으로 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을 '뛰어난 것에 비하면 현재 낮지만, 그것을 향한다.'는 형식으로 바꾸면 많은 것이 달라집니다.
예를 들면, 어떤 대회에서 1등을 해서 상을 탔다고 해보죠. 물론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대단합니다. 이때 일반적으로는 더 뛰어난 위인이나 더 많은 상을 탄 사람 또는 앞선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해 겸손을 표현할 겁니다.
'제가 상을 받을 줄은 몰랐습니다.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하지만 그 대회 1등을 했다고, 상을 받았다고 그만둘까요?
아니죠. 다음을 향해 나아갈 겁니다. 다음 대회에서도 1등을 노린다든가, 아니면 1등 한 것을 가지고 좋은 곳에 취직하여 더 많은 성취를 이뤄내든가. 미래에 도달할 곳이 더 다양하게 존재할 겁니다.
이처럼 '미래에 내가 도달할 목표치에 비해 현재의 성취가 낮지만, 그 목표를 향해 계속 노력해갈 것'이라고 표현해야 자기 비하가 아닌 나를 낮추는 겸손으로 전달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서양처럼 드러냄에 있어서도 오만하게 보이지 않을 방법이 있습니다. 동양의 겸손을 띄면 됩니다.
바로 남을 높임으로써 나의 성취를 확고히 알려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을 하려면 지금의 내가 이룬 성취는 혼자서는 결코 이곳에 도달하지 못하였음을 정확히 알아야 올바르게 표현할 수 있겠죠.
앞서 든 예시처럼, 어떤 대회에서 1등을 한다는 것은 스스로의 능력이 뛰어난 것도 맞습니다만 혼자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도움을 준 가장 가까운 이로는 부모님이 있겠죠. 물론 부모님의 도움이 없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대회를 주최한 주최측이 없었다면?
대회 자체가 없으니 1등을 할 수도 없었을 겁니다.
또 참가한 인원이 혼자였다면?
주최측에서 대회를 취소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이처럼 내 재능과 노력 외에도 무수한 도움들이 있기에 현재의 성취가 있다는 것을 정확히 알며 남을 높여야 올바르게 겸손을 표현하면서도 자신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예전에 겸손하게 답한다고 ‘아닙니다.’ 하고 답했다가 칭찬해 주신 분께서 ‘내가 그렇다는데 왜 너는 자꾸 아니라고 해? 내가 잘못 보는 거야?’라는 말을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많지는 않지만 사람에 따라 다르기에 부정하는 듯한 말 대신 상대의 칭찬도 인정하면서 겸손하게 보이고 상대도 기분 좋게 되어지는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상대의 말에 동의하며 내 감정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제가 이번에 장례식장에서 답했듯이, 상대가 하는 말을 인정하고, 동의하며, 그에 따른 나의 감정을 전한다면 칭찬하는 상대가 더 기뻐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직장 상사가 '이번에 좋은 성과 냈다며? 축하해.'라는 말을 건넨다고 해보죠. 이에 대한 답변을 제가 말한 것들을 바탕으로 말한다면 이럴 겁니다.
'상사분께서 그렇게 축하해 주시니 실감이 나서 기쁩니다. 주변 분들 덕에 이뤄낸 거라 생각합니다. 더 열심히 해야죠.(더 노력해야죠.)'
또 다른 예시로, 지인이 외모에 대해 칭찬한다고 해보죠. 이 또한 간단합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기분 좋네요. 부모님 덕이 큽니다. 앞으로 더 잘 꾸미고 다녀야겠어요.'
글로만 보면 조금 덜 해 보이지만, 소리 내어 말해본다면 겸손하면서도 자신감이 내포된 게 느껴지실 겁니다.
정리하자면, 칭찬해 준 상대의 말에 동의해 주고 나의 감정을 전한 후 주변의 도움 덕에 이 자리에 있게 되었음을 드러내며 미래지향적인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나를 낮추는 것이, 보다 자신감 있어 보이면서도 동양과 서양의 방식을 조화롭게 합친 겸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수식화한다면 이렇겠죠.
상대방의 칭찬을 인정 또는 동의
+ 그에 따른 감정표현
+ 주위를 높이고(겸)
+ 높은 곳을 향함으로서 낮춤을 표현한다(손)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고 지구는 점점 더 좁아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오래전부터 유지되어 온 것들은 각각마다의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기에 그대로 존재하고 있지요. 겸손 또한 그중 하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나 한국이라는 좁은 땅에서는 겸손이 그대로 유지되는 것이 필요했을 겁니다.
하지만 온고지신(溫故知新, 옛것을 익히고 새것을 안다)의 의미처럼 겸손 또한 제대로 익히고 새로운 것을 더해 나간다면, 단순히 동양과 서양이 아니라 모든 문화권에 구애받지 않는 보다 올바른 겸손을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