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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성집 Sep 09. 2024

미세한 바람이 가르쳐준 연구의 의미


석사 과정 때 일이다. 연구실에서 실험을 진행하다 보면, 종종 예상치 못한 문제에 부딪히기 마련이다. 특히, 연구에 몰두할 때는 사소한 변수 하나가 전체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내가 겪었던 '온도 조절 사건'은 그러한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경험이었다.


 그날 나는 특정 온도에서 유기물 반도체 소자의 성능을 테스트하기 위해 특정 온도에서 실험을 진행하던 중이었다. 온도는 이 실험의 핵심 요소였다. 소자의 특성이 온도에 따라 크게 달라지기 때문에, 정확한 온도를 유지하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처음엔 모든 것이 완벽했다. 전기 측정 데이터는 예상대로 나왔고, 실험은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결과가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했다. 특정 온도에서 소자의 성능이 갑작스럽게 떨어지는 현상이 반복되었고, 데이터는 점점 일관성을 잃어갔다. 때로는 아예 엉뚱한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모든 것이 한순간에 불확실해지며, 나는 혼란스러웠다. 무엇이 문제일까? 왜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오는 걸까? 실험실의 공기는 답답하게 느껴졌고, 나는 끝없는 의문 속에서 헤매고 있었다.


 나는 장비를 다시 점검하고, 온도 조절 장치의 설정을 몇 번이고 확인했다. 실험 환경의 다른 변수들도 하나하나 꼼꼼히 체크했지만, 문제의 원인은 좀처럼 드러나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으로 연구실의 동료들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그들 역시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다. 마침내 그날의 실험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실험실을 나서는 내 발걸음은 한없이 무거웠다. 집으로 돌아왔지만, 마음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머릿속은 온통 "장비를 고장 낸 걸까?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하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압박감이 나를 짓눌렀다. 평소 같았으면 금방 잠들었을 시간인데, 그날 밤은 유난히 길고도 답답하게 느껴졌다. 그날 밤은 유난히 길고도 답답하게 느껴졌다.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아도 생각들은 끊임없이 이어졌고, 나는 잠을 이루지 못한 채 뒤척였다. 


 연구의 길이 얼마나 험난한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마주하게 되는 감정들이 얼마나 깊고 복잡한지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연구란 단순히 지식을 쌓아가는 과정이 아니라, 끊임없는 실패와 좌절, 그리고 그 속에서 자신과의 끝없는 싸움을 이어가는 여정임을 절실히 느꼈다. 그 여정 속에서 겪는 감정들은 결코 가볍지 않다. 때로는 무거운 책임감이 마음을 짓누르고, 때로는 끝을 알 수 없는 불안감이 뒤따라온다. 이 모든 감정들이 뒤엉킨 채, 연구자는 흔들리면서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 길은 결코 평탄하지 않지만, 바로 그 어려움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고, 연구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해 주었다.


 다음 날, 나는 다시 실험에 돌입했다. 금요일에 있을 세미나를 앞두고 있었기에, 반드시 데이터를 확보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크게 느껴졌다. 마음을 가다듬고 침착하게 실험을 이어가던 중, 프로브스테이션 장비 근처에서 낯선 소리가 들려왔다. 그 순간, 나는 그동안 놓치고 있었던 무언가가 있다는 예감을 느꼈다. 장비를 면밀히 살펴보던 중, 마침내 작은 이상 징후를 발견했다. 


 유리 덮개에 미세한 금이 가 있었고, 그로 인해 작은 깨짐이 생긴 것이었다. 그 미세한 틈으로 인해 진공이 제대로 유지되지 않았고, 한쪽에서 아주 미세하게 바람이 새어 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순간, 바로 이 미세한 바람이 문제의 원인임을 깨달았다. 마치 오랫동안 풀리지 않던 퍼즐의 마지막 조각이 맞춰지듯, 그동안의 혼란이 순식간에 풀리는 듯했다.


 새로운 덮개로 교체한 후, 실험을 다시 시작하자 모든 데이터가 완벽하게 일치했다. 예상했던 대로 소자의 성능은 안정적으로 유지되었고, 문제는 완전히 해결되었다.


 이 사건 이후로, 나는 실험 장비를 다룰 때 사소한 부분도 결코 놓치지 않으려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그날의 경험은 적은 디테일 하나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그것이 실험의 결과를 얼마나 크게 좌우할 수 있는지를 깊이 깨닫게 해 주었다. 특히 온도나 환경 조건이 중요한 실험에서는 모든 변수를 꼼꼼히 점검하는 것이 얼마나 필수적인지 절실히 느꼈다.


 연구라는 길은 때로는 끝이 보이지 않는 험난한 여정이지만, 작은 것들이 쌓여 큰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깨달음은 나에게 큰 의미로 다가왔다. 이 경험은 이후의 연구에서 나를 더욱 섬세하고 신중하게 만들었다. 작은 디테일이 만들어내는 차이를 이해했고 연구자로서 한 단계 더 성장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그날의 깨달음은 단순한 실험 이상의 의미를 지니며, 나의 연구 여정에 깊이 새겨졌다.


 “연구는 디테일에서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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