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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rasol Sep 23. 2024

회사로운 일상공상6

눈치게임

삭막한 사무실 한편에 걸린 미술품은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잠깐의 쉼을 준다. 무심코 지나치는 이런 작품들도 과학의 눈으로 보면 더 많은 이야기를 알 수 있다.


미인도로 유명한 신윤복의 ‘월하정인(月下情人)‘속에는 조금은 낯설어 보이는 달이 등장한다.


위로 볼록한 눈썹달


보통의 초승달은 태양이 진 서쪽하늘에 태양방향인 오른쪽 아래가 밝게 빛나는 형태이지만 월하정인에 뜬  달은 마치 초승달을 반시계 방향으로 90도쯤 돌려놓은 형태이다.


신윤복은 조선 중기 문인 김명원의 한시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는 당시 유행하던 시구에 영감을 받아 월하정인을 그린 것이 아닌가라는 추측이 있다.


“달도 침침한 야삼경(23시-01시), 두 사람의 마음은 두 사람만 알리라“


시를 바탕으로 본다면 자정에 가까운 시간의 밤하늘에 떠 있는 달이니, 더더욱 이상한 그림이다.


한밤중 뜨려면 큰 달이어야 하고, 큰 달이 초승달처럼 작아졌으니 이는 월식이 일어난 모습을 그린 것이 아닌가라는 추측으로 이어졌다. 천문우주학과 이태형 교수는 조선시대 “승정원일기”를 뒤져, 신윤복이 살았던 당시 1793년 8월 21일에 부분월식이 있었다는 사실을 시뮬레이션을 통해 찾아냈다. 신윤복이 정말로 이 날 밤 밤하늘을 보고 그린 그림인지, 아니면 두 정인의 애틋한 마음을 담아 상상으로 그려낸 달인지 진실은 알 수 없겠지만, 이렇듯 알고 보면 달 한 조각으로도 많은 것을 유추할 수 있다.


추리 소설 같은 그림 속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에서도 하나를 보면 열을 아는 에피소드는 가득하다. 1696년 부유한 귀족 베르누이는 미적분의 탄생을 알리는 ’사이클로이드’ 문제를 제시했다. 높이가 다른 두 점 A에서 B까지 가는 가장 빠른 경로를 알아내는 단순해 보이는 문제였지만, 당시까지 이론화되어 있지 않았던 미적분 개념을 이용해야 풀 수 있는 까다로운 문제였다. 뉴턴은 뒤늦게 문제의 편지를 받고는 한나절만에 문제를 풀어 이름도 적지 않고 답장을 보낸다.


천재는 천재를 알아본다고, 자신의 문제를 푼 익명의 편지를 받아본 베르누이는 ”사자는 발톱만 보아도 안다“는 말로, 푼 솜씨만 보아도 뉴턴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는 말을 남기게 된다.


현실세계에서 고객사나 협력사와의 수많은 회의가 벌어진다. 한 마디 한 마디가 서로에게 족쇄로 돌아올지도 모르는 전쟁 같은 시간이기 때문에, 우리의 노하우는 최대한 숨기고, 상대측의 핵심은 하나라도 더 알아내려는 눈치게임이 벌어지는 것이다.


달의 각도만 보고도 월하정인 속 날짜를 알아내는 인재, 그리고 그 인재의 일 솜씨만 보아도 ‘그’라는 것을 알아주는 상사가 한 팀이라면, 그야말로 환상의 하모니가 펼쳐지지 않을까 상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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