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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워홀러 Oct 01. 2024

밴쿠버 건축회사의 7개 인터뷰 복기와 총평中

이민 1세대의 당돌한 실무 에세이-회사

지난 캐나다 건축회사의 면접 이야기에 이어 패전 4와 무승부, 승전 복기를 계속해본다.


패전 4: 5분 만에 끝났다.


이 인터뷰는 2차 인터뷰였다.


될놈될 이탈리아 친구가 붙은 회사의 면접이었는데, 사실 그 친구보다 먼저 인터뷰를 봤었다. 나는 그가 유럽에서 휴식을 취하는 동안 준비했었던 포트폴리오와 함께 면접에 임했고, 친구는 포트폴리오 없이 면접*을 봤다. 나에게는 몇 주 동안 어떤 이메일도 오지 않았고, 친구는 3일 만에 잡오퍼를 받았다. 이것은 분명 나의 포트폴리오 문제라 생각했다. 마침 그 회사에 일하고 있는 BCIT 대선배**에게 아래와 같이 부탁했다.


혹시 회사에서 제 포트폴리오를 검토한 담당자에게 고쳐야 할 부분들에 대한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지 여쭐 수 있을까요?


이 질문을 하자마자 선배에게 돌아온 답변은


아이고, OO야! 우리 회사 지원할 거면 나를 통해서 했어야지!!!!!


선배에게 신세 지기 싫었다 말하니, 캐나다는 한국에서 통용되는 '낙하산'이란 개념은 없고, '네트워크'라는 것이 존재하는데, 사람들은 지원하려는 회사에 친한 누군가를 알고 있다면 반드시 기회로 삼는다고 했다. 이 경우 채용은 몰라도 최소한 인터뷰 기회는 보장된다는 것이 캐나다 국룰임을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나도 결국 이 '네트워크'를 통해 반전을 일으키게 되는데, 선배가 회사 측에 내 부탁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재밌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바로 회사가 일찍이 나에게 잡오퍼를 주려고 했었다는 것, 하지만 어떠한 이유로 몇 번 보낸 이메일이 반송되었다고.


이메일 오류 발생이 없었다면 될놈될 친구보다 먼저 회사를 다녔을 텐데, 선배가 나의 채용을 확인하는 시점에는 마침 회사의 한 임원이 팀원 충원을 하는 중이었다. 그렇게 2차 인터뷰가 생겨버렸고, 나는 잡오퍼를 받기 위해 남들보다 하나의 관문이 더 생겼던 것. 안될놈안될


당시 인턴십***을 하고 있는 중이라 오후 다섯 시 반에 인터뷰 시간을 잡았고, 피곤해 보이는 임원이 인사담당자(이하 HR)와 함께 면접장에 들어왔다. 내가 자기소개하는 중 나의 포트폴리오를 넘겨보던 면접자는 그것이 매력적이지 않았는지, 혹은 내 실력(?)을 간파했는지, 5분 만에 자리를 떠나버렸다.


이 면접에서의 기이했던(?) 경험은, 위 짧은 시간 동안 나눈 대화 몇 마디에서 면접자가 내 대답을 잘 못 알아들을 때마다 동석한 HR이 내가 했었던 말을 자기식대로 풀어 설명해 주었는데, 마치 한 팀의 느낌으로 든든한 아군 역할을 했다.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희한한 장면이었다.


무례한 인터뷰는 벌써 세 번째였던 나는 전혀 당황한 기색 없이 포트폴리오를 주섬주섬 가방에 넣으며 갈 채비를 하니, 매우 당황한 얼굴의 HR은 나에게 Pㅇㅇ(다른 직원)을 불러주겠다며 회의실 밖으로 뛰어 나갔다. 나는 속으로 'Pㅇㅇ가 누구야?' 하고 있는데, 막 회의실로 불려 들어온 Pㅇㅇ도 ‘내가 여기 왜 있지?’ 하는 표정으로 나에게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주섬주섬 다시 꺼낸 포트폴리오에서 그는 유독 Revit으로 그려진 도면들을 가리키며, 이 작업하는데 얼마나 걸렸는지 물었다. 내가 대략적인 시간을 말하니, 그것보다 더 빠르게 할 수 있는지 재차 묻기에, '현재 인턴십하는 회사에서 Revit을 사용하므로 포트폴리오 도면 만들 때 실력보다 훨씬 늘었다'라고 확신 있게 대답했다.


그와의 대화는 면접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단지 인간미 넘치는 HR이 내가 받았던 무례한 대우의 보상 차원에서 미래에 있을 다른 회사와의 면접 대비 연습 기회를 준 것이라 여겼다.


그런데 다음날 오전, 잡오퍼가 들어왔다.


*면접 후 HR은 포트폴리오가 없는 그에게 학교에서 했던 도면 과제들을 이메일로 보내라고 했다.

**이 한국인 대선배를 만나게 된 경위는 다른 이야기 때 언급해 본다.

***인턴십을 따낸 후기는 아래 무승부 편을 확인.



무승부: 성실한 면접관


시간 순서상 패전 4 직전에 발생했다.


게스타운에 위치한 작은 회사였고, 사장과 프로젝트 매니저가 회의실에 들어왔다. 자기소개를 마치자, 본격적으로 사장의 질문 더미들이 들어왔는데 그 물음들은 구글에서 검색할 수 있는 인터뷰 질문 리스트들 안에 있었다. (기특하게도 나는 학교 친구들이 '인터뷰 전 구글에 있는 Job Interview Questions를 숙지하라'라고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


인터뷰 때 받은 질문들은 아래 예시와 더불어 도덕적인(?) 물음들도 있었다.

출처: https://novoresume.com/career-blog

그중 가장 대답하기 힘들었던 질문은 '싫은 사람이 생기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였다. 이 질문의 의도는 회사 업무 중 팀 동료와의 불화나 타회사와 담당자 간 오해 등 애로사항 발생 시 대처 능력을 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잠시 생각을 한 뒤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싫은 사람이 생긴다면, 가까이 두지 않는다/ 내가 멀리 떨어진다.' 식의 철없이 솔직한 대답을 내놓았다.


이 면접에서 기억에 남는 것은 내 부족한 영어로 대답하는 것들을 사장은 작은 글씨로 빼곡하게 실시간 피드백을 적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매우 책임감이 있어 보였다. 그가 준비한 질문들이 끝나자, 내가 준비한 포트폴리오 설명이 이어졌다. 전 회사들 면접 때  했던 그대로 설명을 해나갔고, 면접관은 내 포트폴리오를 책을 정독하듯 꼼꼼히 바라보며, 중간중간 ‘Good.'과 ‘Very Good.'이라며 호응을 해줬다.


정말 성실했던 면접으로 후회 없던 인터뷰였다.


하지만 삼일 뒤 '우리는 경력 있는 사람을 찾는다.' 하는 이메일이 왔다.


기대감이 컸기 때문에 실망감도 컸다. 그렇기에 인터뷰 내내 성실했던 면접자의 태도와 그의 반응을 기억하며 용기 내어, '인터뷰 기회를 줘서 고맙다.'는 이메일에 '내가 경력이 없어 인턴십으로 작은 실무 경험을 원하는데, 혹시 일을 배울 수 있는지?' 요청을 덧붙였다. 곧이어 온 HR의 회신에는 'Mㅇㅇ(사장)이 매우 흥미 있어한다며, 그와 상의하기 위해 다른 날 사무실로 올 수 있는지'를 물었다. 다음날 사장을 다시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건축 실무용 자료와 읽을거리들을 잔뜩 받아왔고 그렇게 2주간 무급 인턴십이 시작되었다.


*당시 내 주변에 발생한 두 경우로 그 사람들을 극혐 하는 시기와 겹쳤었다. 위 대답에서 그 경험들을 공유하진 않았지만, 돌이켜보건대 내가 했던 면접 답변은 프로페셔널해야 할 순간 사사로운 감정 반응이었는데, '철없이 솔직함'이라기보다 매우 유치한 처사였다.



무승부의 인턴십 후기: HR의 피드백


2주 인턴십을 약속받은 작은 규모의 회사는 Revit을 사용하며 레노베이션을 위주로 했다. 옆자리에 앉은 동료 (BCIT 한 학년 선배*)의 레노베이션 프로젝트와 나이 지긋한 건축가의 Childcare 프로젝트를 도왔는데, 주로 도면의 Drafting과 Graphics 관리 업무로 비교적 쉬운 일이었다. 한 번은 리치몬드의 창고를 레노베이션하기로 하여, BCIT 선배와 현장을 찾아 실내를 측정했고, 사무실에 돌아와서 Revit 모델링을 하기도 했다.


틈틈이 HR은 나와 마주칠 때면 종종 'ㅇㅇ가 너와 일하는 것을 좋아한다.', 'ㅇㅇ가 네가 일을 잘한다고 했다.'며 조용히 잡오퍼의 힌트를 주곤 했는데, 참 행복한 기억이었다.


*내가 모르는 사람이었는데, 학교 다닐 때 학년 간 왕래는 거의 없다. 일반적으로 밴쿠버의 건축회사들에 BCIT Architectural and Building Technology 졸업생들이 많다.



승전 1: 이메일함 용량 초과로 굴러들어 온 잡오퍼를 뻥 차버렸다.


시간상 이 면접은 위 무승부 전에 앞서 일어났다. 면접은 갓 20분을 넘겼던, 좋지도 나쁘지도 않게 기억하는 보통의 인터뷰였다.


HR과 젊은 임원이 들어왔는데, 이 HR이 위 패전 4편에서 나를 도와줬던 그 사람이다. 이 인터뷰에서 기억나는 영어 실수 하나는 HR의 'How did you find BCIT?' 질문을 잘못 이해한 것인데, ‘How do you find ㅇㅇㅇ?'이나 'How did you find ㅇㅇㅇ?'의 의미는 'ㅇㅇㅇ를 찾았니/찾았었니?'가 아니라 'ㅇㅇㅇ가 어떻니/어땠니?' 혹은 'ㅇㅇㅇ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이다. 나는 find를 당연히 '찾았니?'로 받아들여, 나의 이민 5개년 계획을 구구절절 이야기했다.

2013년 여름 한국에 있을 때, 캐나다 이민을 하고 싶어 구글에서 방법을 찾으니, 여러 이민 방법 중 국공립학교에서 공부하면 3년 Work Permit이 나오는 것을 알았다. 그중 만 1년 실무 경력을 채우면 영주권 지원 신청을 할 수 있다.'

장황한 설명을 끝까지 기다린 HR은 '아니, 아니, 그게 아니고 BCIT 학교가 어땠니?'라고 다시 물어줬는데, 속으로 아차! 싶었다.


다른 한 실수는 영어라기보다는 면접에 임하는 태도였다. 인터뷰 말미에 자신감 넘치는 젊은 임원이 'I like questions.' 라며, 어떤 것이든 물어보라고 했다. 나는 준비했던 단 몇 가지만 물었었는데, 시간을 돌이킨다면 인터뷰 전 최소 10개의 질문들을 준비했을 것 같다.

내 인터뷰 이후 BCIT의 이탈리아 친구도 같은 회사에서 면접을 봤는데, 그는 인터뷰를 한 시간가량 가져갔었다. 그는 질문 시간을 충분히 활용했는데, 목재 건축과 콘크리트 건축의 차이, 심지어 실무에서 쓰는 단위가 Imperial인지 Metric인지 등등 신입이 궁금해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물어봤다고 했다.

그의 인터뷰는 HR과 매우 유쾌하고 재밌는 다른 임원(Gㅇㅇ)이 참석했는데, 특히 그 둘의 대화 케미가 잘 맞았다고 했다.

이 외 딱히 기억이 남는 것이 없는 첫 승전 인터뷰였다. 하지만 이메일 오류 발생으로 나는 잡오퍼를 온 지 깜깜이 몰랐고, 그 이후 나에게 벌어진 일이 맨 위 패전 4의 이야기이다.



승전 1의 후일담


2018년의 여름은 혹독했다. 면전에서 무시받는 대접을 연달아 3번 몇 주 내 일어났고, 그 기억은 지금도 매우 거북하다. 당시 나는 '사회초년생은 그런 대접을 받아도 된다', 혹은 '받아야 한다'라고 여겼지만, 중년차인 지금 돌이켜보면 누구도 그런 대우를 받으면 안 되었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은 승전 1의 인터뷰의 후일담이다. 나는 그저 그랬던 면접으로 기억하지만, 그 면접장에서 한 명은 전혀 다르게 생각했다.


늘 HR이 나를 채용했다고 알았는데, 정작 나를 채용한 것은 젊은 임원 Nㅇㅇ이었다. (워크홀릭인 데다 능력까지 출중하여 빠른 승진을 거듭해 몇 년 뒤 사장단에 합류했음) 그 면접관이 나를 뽑은 이유는 '영어는 서툴지만, 포트폴리오를 열심히 설명하는 모습에서 성실하게 일할 것 같아 채용했다.'라고 내 선배와 사적 대화 때 밝혔다. 그는 이후 다른 인터뷰에선 한 구직자가 'OOO(나) 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녀를 채용했다.'고도 말했다고 한다.


최근에는 Nㅇㅇ이 회사를 옮기게 되었는데, 그 회사를 인수할지 말지 의사결정 중이라고 들었다. 만일 그 일이 성사된다면 ‘데려올 사람 리스트 중 1순위’로 나를 염두하고 있다고도 전해 들었다. 실제로 그 일이 있기 한참 전인 2024년 봄에 그로부터 비슷한 뉘앙스의 대화를 했었다. (당시는 옮긴 회사의 임원이었다.)

정중하게 거절했지만, 그와 일하는 것의 가능성은 충분히 열어둔 상태이다.



다음 회사 편엔 2018년에 받은 두 잡오퍼 사이의 고민과 2022년 승전 2 이야기를 이어간다.


또한 해외 취업에 대한 자세한 구직 정보는 해외취업을 위한 지침서: 건축설계 편도 참고했으면 한다.


https://brunch.co.kr/brunchbook/workabro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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