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 50가지 그림자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섹스를 논할 때, 육체적 쾌락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래서 행위 그 자체나 자세를 중심으로 논합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섹스를 통한 친밀감과 감정적 교류를 이루기 어렵습니다.
보다 성숙한 섹스를 통한 소통을 하려면, 단순 기술적인 방법론을 넘어 상대와의 상호 존중, 소통, 신뢰 관계까지 고려해야 합니다. 섹스는 단순 육체적인 행위를 넘어, 두 사람 사이의 감정적 연결을 표현하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보다 성숙한 섹스에 필요한 재료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진솔한 소통, 존중과 합의, 끊임없는 탐구 의식입니다.
개인적으로 이 세 가지를 가장 잘 담은 영화를 꼽자면,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시리즈입니다.
표면적인 이야기와 그 이면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표면적으로 보면, 재벌남과 평범녀의 사랑 이야기처럼 다가옵니다. 경제적으로 무한한 힘을 갖고 있는 젊고 잘생긴 크리스천 그레이와 대학 졸업을 앞둔 평범하고 순수한 여성 아나스타샤 스틸의 만남은 전형적인 신데렐라 스토리의 분위기를 풍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19금이라는 자극적인 요소에 BDSM까지 더해져, 상업적이고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야기로 치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이 영화의 매력은 자극적인 요소와 익숙한 신데렐라 스토리에 있는 게 아닙니다. 서로 완전히 다른 두 사람이 진솔한 소통을 통해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 핵심입니다. 크리스천 그레이는 어릴 적부터 겪은 상처로 인해 자기 세계에 갇혀 있고, 자신만의 규칙 속에서 사람들과의 관계를 형성해 왔습니다. 반면에 아나스타샤는 그와 정반대로 열린 감정과 순수한 마음으로 사람을 대합니다. 이 둘의 관계는 단순 자극적인 BDSM을 넘어, 서로 다른 세계와 마음이 조화롭게 어우러지기 위한 노력의 과정을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상호 소통과 합의의 가치
영화에는 BDSM이라는 자극적인 주제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다만 단순 자극적인 설정이 아닌, 아름다운 사랑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간접적으로 그렸습니다. BDSM이라는 설정을 통해 연인 관계에서 중요한 요소인 "합의" 본질을 상징적으로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크리스천 그레이는 아나스타샤와 관계를 시작하기 전, 그녀에게 계약서를 제안합니다. 이는 그가 관계에 있어 모든 것이 상호 동의와 명확한 소통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 사례입니다. 사실, 연인 관계에서도 계약서까지는 아니어도 이러한 과정을 밟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매사에 이럴 순 없겠죠. 귀찮으니까요.)
물론 처음에 아나스타샤는 크리스천의 세계를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의 요구는 그녀의 상식과 경험을 넘어서는 것이었으며, 그녀에게 공포와 혼란을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에게 단순 거리를 두고나 회피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대화를 나누고 그의 세계를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이 과정에서 크리스천 그레이 또한 변화합니다. 그는 아나스타샤를 이해하기 위하여 자신의 고정된 틀을 조금씩 깨고, 그녀가 원하는 방식으로 관계를 재조정하려 합니다. 이처럼 이 둘이 맺는 합의는 단순 계약을 넘어 관계를 더욱 단단히 묶어주는 중요한 기둥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연인 관계에 상호 소통과 합의를 통해 이루어진 약속이 얼마나 숭고하고 가치있는 지에 대해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진솔한 소통은 상처와 이해, 성장의 씨앗
크리스천 그레이의 과거는 그가 왜 복잡한 내면을 갖게 되었는지 설명해 줍니다. 어린 시절 약물 중독자인 생모의 방치와 학대 속에서 자랐고, 이러한 경험은 인간관계와 감정 표현 방식에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결국 그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강한 외적인 모습을 만들었고, 사람과의 관계에서 철저히 통제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나스타샤는 그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녀는 단순히 그의 요구를 따르는 사람이 아닌, 그에게 자신을 열어 보이고 상처를 치유할 기회를 주었기 때문입니다.
아나스타샤 또한 크리스천 그레이와의 관계를 통해 성장합니다. 처음에는 그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점차 그의 내면을 들여다보며 그가 왜 그런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하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녀는 단순 그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며 관계를 재정립합니다.
이 이야기는 사랑의 본질을 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한 19금 로맨스를 넘어 사랑을 통해 상처를 치유하고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은 서로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임과 동시에 함께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이었습니다.
저는 더 나은 사랑을 위해서는 섹스에 대해 조금 더 깊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순 체위와 행위 그 자체에만 초점을 맞추는 게 아닌, 서로의 규칙과 룰을 하나씩 정립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우리만의 섹스, 우리만의 관계, 우리만의 사랑이 예술적으로 다가올 거라 생각합니다.
그럼 저는 불타는 막창이나 먹으러 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