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심리학 박사냐!?!?! ㅠㅜㅠ

진단 용어를 남발하는 연인

by 찡따맨


요즘 연애에서 심리학 용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교양 수준이 높아져서 그럴까, 아니면 오은영 박사님의 영향력 덕분일까. 심리학과 정신 건강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진 것은 긍정적인 현상이지만 그만큼 연애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가스라이팅을 시작으로 나르시시즘, 애착 이론, 인지부조화, 자의식 과잉 같은 용어들이 연인 간의 다툼에서 등장하는 걸 보면 심리학이 일상에 깊이 스며든 듯 하다. 문제는 이러한 용어를 무분별하게 사용해 상대를 진단하듯 말하는 태도다.

물론 다양한 지식을 알고 이해하는 건 좋다. 하지만 전문지식 없이 전문 용어를 상대에게 적용하면 연애를 분석의 장으로 만들 뿐만 아니라, 관계를 해치는 흉기가 되기도 한다.



심리학 용어 남발의 위험성


찐따가 생각하는 건강한 연애는 감정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상대와의 유대감을 형성하는 과정이다. 그런데 균형을 잡는 건 말처럼 쉽지 않다. 이 균형을 제대로 이해하고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하여 심리학 개념을 참고하는 연인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과도하게 사용할 때다.


심리학, 정신분석학적 개념과 치료 용어를 남용하여 마치 전문가처럼 상대를 분석하고 진단하는 듯한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물론 지식이 많으면 좋다. 하지만 비전문적인 사람들이 심리학 용어를 무분별하게 적용하려는 건 다소 위험하다. 이는 상대를 조종하거나 권력을 행사하려는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선한 의도로 시작되었어도 관계를 해칠 가능성이 높다. 종종 지인들과 잡담을 나눌 때, 이런 부류의 사람과 거리를 두라고 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유리 멘탈인 사람들은 이러한 부류와 거리를 둬야 한다. 이는 자존감과 정서적 안정성을 흔들어 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연인을 분석하며 우위를 점하려는 사람이 있다. "넌 회피형 애착유형이어서 그래.", "너는 자존감이 낮아서 나에게 의존하려는 거야.", "그건 인지부조화야." 마치 오은영 박사님이라도 된 듯한 태도로 상대의 행동을 설명하려 드는 것이다. 듣는 입장에서는 분석 당하는 기분이 들 수밖에 없다. 이런 식의 대화가 지속되면, 연애는 감정의 교류가 아니라 심리 실험의 장으로 전락하게 된다.

또 다른 예로는 진단하는 듯한 말투로 상대를 몰아붙이는 것도 있다. "넌 지금 나를 가스라이팅하는 거야.", "너 나르시스트 아니야?", "이거 조울증 증상 같은데?". 이런 말을 들으면 상대는 단순 감정 표현조차 심리적 문제로 해석되는 기분을 받게 된다. 그런데 한 사람의 특정 행동과 감정에 모두 이름표를 붙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더 나아가 모든 행동이 해석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나만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ㅜㅜ)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고 이유 없이 기분 좋을 때, 나쁠 때가 있으며, 침묵하고 싶은 순간도 있다. 그런데 무분별한 심리학적 용어 남발은 자연스러운 감정의 흐름을 부정하고 내면에 불안과 의심으로 가득 채운다.


연애는 동등한 두 사람이 서로의 마음을 맞추어 나가는 과정이다. 그런데 한 사람이 연애 관계에서 '전문가'의 입장을 취하고 다른 한 사람이 '피험자'가 돼버리는 순간 관계는 기울어진다. "너는 이렇게 행동해야 할 이유가 있어."라는 말은 마치 상대를 완벽하게 파악했다는 듯한 태도를 내포하기도 한다. 물론 이러한 조언은 종종 던질 수 있지만, 하루종일 정신과 전문의처럼 지속되면 상대방은 자신의 감정을 변호할 기회를 잃어버린 채, 상대의 분석대로 행동해야 하는 종속적인 존재로 전락하게 된다. 사랄은 상대를 이해하는 것이지 분석하는 게 아니다. 상대의 감정을 해부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느끼는 것이 사랑인 것이다. (* 물론 찐따의 공감능력 수치는 매우 낮다.)


성급한 진단은 연애의 언어를 메마르게 만드는 원인이다. 따뜻한 속삭임 그리고 진솔한 감정의 교류로 이루어지는 연애에 진단의 용어가 자리 잡게 되면, 대화는 진료 기록처럼 딱딱하게 변한다.




진단 용어보다 이해와 공감부터


어쩌면, 진단용어를 남발하는 사람이야 말로 진짜 가스라이팅을 하는 것이며, 나르시시즘 성격장애에 가까운 사람일 지도 모른다. 심리학적 개념은 사람을 이해하고 돕기 위한 도구이지, 상대를 몰아붙이거나 낙인찍기 위한 무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 누군가를 쉽게 가스라이팅하거나, 나르시시스트라고 단정 짓는다면, 그것이야 말로 진짜 가스라이팅하는 나르시시스트일 지도 모른다.


가스라이팅은 영국의 연극 Gas Light에서 유래했고, 영화 <Gaslight, 1944>를 통하여 대중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영화 속 남편은 아내가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사람으로 보이도록 하기 위하여 집안의 가스등 밝기를 줄이고, 아내가 그 변화를 감지해도 "네가 잘못 본 거야."라고 부정하며 현실을 조작한다. 이처럼 가스라이팅은 피해자가 점점 자신의 기억과 감각을 의심하게 만들어 가해자에게 의존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나르시시즘(Narcissism)의 어원은 그리스 신화의 나르키소스라는 인물에서 비롯되었다. 나르키소스는 뛰어난 미모를 가진 청년으로 많은 이들이 사랑했지만, 그는 누구의 사랑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를 지켜보던 신들은 그의 자만심에 대한 벌로 연못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도록 만들었다. 나르키소스는 자신의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연못에서 떠날 수 없었고, 사랑의 고통 속에서 서서히 시들어가다 수선화(Narcissus)가 되었다. 이 신화에서 비롯된 나르시시즘(Narcissism)은 자기애(self love) 정도로 볼 수 있다. 그런데 현재는 병적인 자기중심적인 심리학적 용어로 쓰이고 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를 통해 나르시시즘이 심리학적 개념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1차 나르시시즘은 유아기에 보이는 자기애적인 경향으로 모든 아이들이 부모의 관심을 독차지하고 싶어 하고, 세상의 중심이 자신이라 믿는 단계다. 이는 정상적인 발달 과정으로 간주한다. 2차 나르시시즘은 성인이 된 후에도 자기애적 성향이 과도하게 지속되며, 타인과의 관계에서 병리적인 영향을 끼치는 경우이다.


하인츠 코헛은 나르시시즘을 더욱 발전시킨다. 건강한 나르시시즘과 병적인 나르시시즘인 나르시시즘 성격장애로 구분한 것이다 여기서 더 발전되어 미국 정신의학회(APA)가 말하는 나르시시즘 성격장애는, 단순하게 자기애를 뛰어넘는 병리적 수준에 가깝다. 자신의 능력과 업적을 실제보다 과대평가하여, 자신이 특별한 존재라고 믿는 것, 자신이 평범한 사람들과 다르다고 생각하여, 높은 지위나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과만 어울려야 한다고 믿는 것, 지속적으로 타인의 칭찬을 갈구하며, 인정받지 못하면 불안해하거나 분노하는 것, 인간관계를 상호적으로 보지 않고,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도구로 여기는 것, 타인을 무시하거나 깔보는 태도를 보이며, 자신의 의견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는 것 등이다. 물론 이 특징이 있다고 하여 병적인 나르시시즘이라 할 수 없다. 여러 상황에서 일관되게 나타나야 하며, 이러한 특징으로 인해 사회적, 직업적 영역에서 문제가 초래하는 등 전문가의 종합적인 판단이 필요하다.


전문 용어를 사용하는 것도 좋다. 사랑하는, 소중한 누군가에게 진단 용어 또는 진단하는 듯한 말을 남발하는 건 위험한 태도라 생각한다. "너는 경계성 성격 장애 같아.", "너는 그때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했어.", "너 우울증 있는거 아니야?" 같은 문장은 정신과 상담실에서 나와야 한다. 물론 때로는 이러한 치료적 언어를 통하여 그 사람 앞에 놓인 문제를 개선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나치게 남용될 경우 관계의 깊이는 사라지고, 상대는 의사에게 의존하는 환자처럼 되어 주체성과 자발성이 사라지게 된다. 이는 상대를 특정한 프레임이 가두고, 부정적인 낙인을 찍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상대를 해석하다 할 말이 남지 않게 되는 순간, 그 관계는 서서히 메말라 갈 것이다.




오늘 아침은 떡볶이 박살내야겠다.

오늘 나는 떡볶이 테러리스트 ㅋ_ㅋ_ㅋ_ㅋ_ㅋ_ㅋ_ㅋ_ㅋ_ㅋ_ㅋ_ㅋ_ㅋ_ㅋ_ㅋ_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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