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 망각의 경계에서 피어나는 사랑의 씨앗
발렌타인 데이, 화이트 데이는 사랑을 약속하는 날이기도 하지만 헤어짐이 많은 시즌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종종 헤어진 연인에 대한 기억을 '잊어야 할 것'으로 치부하곤 합니다. 떠오르는 아픔을 억누르고, 빠르게 일상으로 복귀하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랑의 상실이 가져다주는 고통을 억지로 밀어내고 망각해버리려 하는 게 꼭 좋은 것이 아닙니다. 이는 유령처럼 나를 끊임없이 배회하며 괴롭히기 때문입니다. 고통스러운 이별도 제대로 마주해야 하며, 헤어진 연인을 다시 곱씹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기억과 고통은 예술의 기원
'뮤직(Music)'라는 단어는 '뮤즈(Muse)'에서 왔다는 건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예술가에게 영감을 불어넣는 뮤즈라는 존재는 '기억의 여신' 므네모시네(Mnemosyne)의 딸들입니다. 다시 말해, 음악을 비롯한 예술의 뿌리에는 기억에 있습니다. 물론 앞서 언급한 것처럼 기억은 단순 추억만 말하는 게 아니라, 고통마저도 껴안는 것입니다. 사랑의 이별 또한 고통으로 각인되었지만, 그 각인된 흔적이 결국 음악과 예술을 탄생시키기도 하며, 내 삶을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수 있도록 이끌어주기 때문입니다. 고통스러운 이별도 제대로 마주하고, 헤어진 연인을 다시 곱씹어야 한다고 주장한 이유입니다.
과거 고대의 축제를 보면 동물을 희생시키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생명체를 죽이는 행위는 비극적인 풍경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는 예술의 씨앗일 지도 모릅니다. 디오니소스 신화를 들여다보면, 처절한 고통이 예술적 영감을 낳으며, 민중이 공감하는 정신적 토대로 형성되었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노래와 작품이 쏟아지는 현대사회를 들여다보면, 진정으로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는 노래는 대체로 밝음 뒤에 슬픔이 함께 깃들어 있습니다. 고통과 희열이라는 이질적인 것들이 함께 공존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비극이 예술의 원친이 될 수 있듯이, 사랑의 상실, 이별이라는 아픔도 새로운 창조의 씨앗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정신분석이 말하는 기억해야 하는 이유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이론에 따르면, 깊은 상처와 아픔을 억지로 덮어주려 할수록 그것은 유령처럼 현재를 배회하게 됩니다. 프로이트 식으로 표현하자면, '억압된 것의 귀환'입니다. 마치 공기가 잘 통하지 않는 텅 빈 공간에 쿰쿰한 곰팡이가 피어나듯이, 말끔하게 치웠어도 고통이 또 다른 문제로 되살아나는 것입니다. 이별의 아픔을 외면하려 할수록 그것은 일상의 틈새에서 고개를 내밀어 마음을 더욱 괴롭게 할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진정한 망각이란 제대로 된 기억에서 시작됩니다. 아파하고 부딪히고 눈물을 흘려야 그 상처가 발효되어 언젠가 잊히거나 더 아름답게 바뀌기 때문입니다. 상처를 마주하지 않고 서툴러 묻는다면 상처는 풀리지 않는 응어리가 되어 나중에는 홍수처럼 범람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영화 <인사이드 아웃, 2016>에서 잘 그려내었습니다.
진정한 애도가 치유의 시작
이별 후의 상실감은 삶 전체를 잠식하는 어둠처럼 다가옵니다. 그러나 그 어둠이 깊어질 때 즈음, 무엇을 진심으로 사랑했는지 들여다볼 노력을 해야 합니다. 헤어진 연인을 곱씹는다는 것은 '괴로움'에 방치하는 것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 고통 속에서 한 걸음씩 애도해 나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정신분석학에서는 억압된 감정이나 기억을 의식화하고 직면하는 것을 치유의 핵심으로 보고 있습니다. 한스 리발트는 억압된 감정을 '유령'으로 비유하였는데, 이 유령을 '조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정신분석 치료의 목표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다시 말해, 과거의 고통스러운 기억과 경험을 완전히 지우는 게 아니라, 그것을 인정하고 통합하여 현재의 삶을 풍요롭게 이끄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외면하려는 고통을 마주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음악이 내 마음의 깊은 곳을 건드려 주듯이 헤어진 연인에 대한 기억을 되짚는 행위는 상처를 보듬고 치유할 기회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 고통스러운 기억은 우리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예술적이면서도 인간적인 차원으로 거듭나게 해 줄 것입니다.
아픈 사랑의 흔적을 더디게 곱씹는 과정은, 마치 겨울의 얼어붙은 씨앗의 햇살을 만나기 전까지, 깊은 흙 속에서 인고의 시간을 보내는 것과 유사합니다. 헤어진 연인의 기억을 바로 지우려는 게 아닐 , 비극이 예술의 근원이 되듯이 고통을 예민하게 품을 줄 알아야 합니다.
시간이 흐르면 그 고통을 마주한 경험은 자신만의 새로운 리듬으로 자리 잡게 될 것입니다. 그때 깨닫게 될 것입니다. 기억은 슬픔을 반복하기 위함이 아니라 진정한 망각과 치유를 향해 나아가기 위한 과정이라는 것을. 고통을 마주할 때 우리의 내면은 더욱 단단해집니다. 그래야 새로운 사랑이 더욱 풍요롭게 깊게 뿌리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흠~~ 쓰고 보니 나름 좋은 글이군요.
대충 요약해서 제 인스타 친구들에게 공유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