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이란, 마음을 물화하는 것
내가 생각하는 선물이란, 상대를 향한 내 마음을 물화(物化)하는 것이다. 나의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물건을 전하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글을 쓰는 이유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선물을 할 줄 모르는 것처럼 다가온다. 인터넷만 보아도 20대 남자 선물, 30대 남자 선물 등으로 세분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주변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선물을 시장거래처럼 등가적인 것으로 여기는 듯하다. 예를 들면, "나는 20만 원짜리 선물을 해줬는데, 쟤는 5만 원 선물을 해줬어." 같은 말이 대표적이다. 이외에도 몇몇 어르신들은 현금 선물이 최고라고 하시는데, 나는 이를 당당하게 무시하고 물질적인 것으로 선물한다.
일단 선물은 시장거래 논리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한다. 선물은 즉각적이고 등가적인 하나의 거래가 아닌, 부등가적인 증여와 호혜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선물은 답례를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는 불확정한 논리가 지배되는 영역이다. 그러므로 상대에게 20만 원 가치의 선물을 해줬다면, 20만 원의 답례를 받을 기대부터 해선 안 된다.
"그럼 니는 얼마나 선물을 잘하길래?"
사실 나도 사회성이 부족한 찐따라 선물을 잘하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묘하게도 상대방은 내 선물을 상당히 좋아해 줬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쩌면 선물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서 그런 것일 지도 모른다.
선물이란 상대의 결핍을 채우는 것
과거에 만났던 여성분에게 브라 팬티 세트를 선물한 적이 있었다. 누군가는 음흉한 변태라 생각할 수 있으나, 그녀의 결핍을 채워서 자신감을 심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녀는 70G, 미국 기준으로는 32 DDD 사이즈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사이즈의 브라를 구하기가 어려웠기에,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취향의 브라를 입어본 적이 없었다. 일본 여행을 가서 가슴에 대보고 맞으면 구매하는 정도였다. 내가 속옷 선물을 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그녀는 자신의 속옷을 향해, '거지 속옷'이라는 말을 자주 뱉었기 때문이다. 비키니 수영복을 많이 보유한 이유도 비슷한 이유로 생각했다. 그 말을 워낙 많이 뱉어서 당시 순수했던 나는 그녀의 옷을 벗기는 것조차 미안할 정도였다.
나는 이 선물을 하기 위해 약 6개월의 시간이 걸렸다. 그녀의 어질러진 자취방을 청소해 주는 척을 하면서 브라, 팬티 사이즈를 몰래 살펴보고, 팬티에서 드러나는 그녀의 취향을 간접적으로 살폈다. 그 끝에 나는 빅토리아 시크릿의 핑크빛 레이스 소재의 브라팬티 세트를 골랐다. 그리고 그녀의 옷장에는 일반적인 팬티들로만 채워져 있었기 때문에 티팬티를 선택했다.
선물을 받았을 때의 그녀의 표정과 목소리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브라를 보고 감동받았지만, 티팬티를 보고 표정이 순간에 일그러졌기 때문이다. 살짝 오바를 하자면, '저 변태새키.. 너를 위해 입어달라고?' 같은 눈빛처럼 느껴졌다. 선물을 할 때는 상대의 취향에 맞는 걸 선물해 주는 것도 좋다. 하지만 나에게 중요한 것은 어떤 선물을 하느냐가 아닌, 어떤 마음으로 이 선물을 했는지이다. 내가 그녀에게 선물하고 싶었던 가치는 '당당함', '자신감'이었다.
선물과 함께 건넨 편지 내용은 대략 아래와 같다.
"진짜 자신감은 보이지 않는 데에서 드러난다고 생각해. 옷을 입고 있을 때는 속옷에서, 속옷만 입고 있을 때는 속옷이 가린 곳에서, 알몸인 상태에서는 상대를 향한 마음에서 자신감이 드러나지. 난 너의 일상이 더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모습으로 그려졌으면 바랄 뿐이야. 내가 이 속옷을 선물한 이유지. 티팬티를 음흉하게 생각하지 말아 줘. 모델 한혜진 씨가 해준 말인데, 티팬티를 입으면 바지를 입었을 때 팬티 자국이 남지 않는다고 하더라. 난 네가 바지를 입었을 때도 당당하게 움직일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야."
그녀는 편지를 읽은 후, 부모님조차 자신에게 이런 말을 해준 적이 없었다며 크게 감동했고 편지를 읽은 후 표정과 목소리톤은 브라를 처음 봤을 때보다 더욱 환하게 밝아졌다. 이처럼 내가 생각하는 선물은 상대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을 물화(物化)하는 것이다. 누군가가 정해놓은 리스트를 따라가는 건 선물의 의미를 모르는 것이라 생각한다.
또 다른 예로 과거에 다른 여성에게는 향수를 선물한 적이 있었다. 그녀는 인간관계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중이었다. 나는 그런 그녀의 곁에 좋은 기운이 맴돌았으면 하는 마음에 향수를 선택했다. 내가 선택한 제품은 '가브리엘 샤넬'이었다. 이 향수의 설명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고, 자유롭게 표현하는 여성을 위한 향수'였기 때문이다. 내가 그녀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이 향수에 모두 담겨있었다. 궁금하지 않겠지만, 그녀에게 보낸 편지는 대략 아래와 같다.
"내가 너를 처음 봤을 때 가장 아름다웠던 모습은 바다와 같았지. 거침없이 출렁이는 모습은 그 누구보다 자유로웠고, 변치 않는 색을 품은 모습은 그 누구보다 단단해 보였어. 때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이 쌓이고, 노력해도 전해지지 않는 말들이 남아 너를 괴롭힐 수 있겠지. 내가 이 향수를 선택한 이유야. 생색을 내자면, '가브리엘 샤넬'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고, 자유롭게 표현하는 여성을 위한 향수'거든. 물론 향수 하나로 모든 게 바뀌진 않을 거야. 하지만 적어도 이 향이 네 곁을 감싸는 동안, 그 순간만큼은 네 주위가 조금 더 아름다워졌으면 좋겠어. 어떤 향기는 한 사람을 감싸 안기도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바꾸기도 하거든. 그러니 니 취향이 아니라면, 그냥 이불에라도 뿌려줘."
엄마에게 한 선물
이렇게 말하면 누군가는, "찐따야.. 부모님한테나 잘해라."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우리 부모님에게도 같은 맥락으로 선물을 했다. 엄마에게는 페라가모 바라 펌프스 하이힐을 선물했다. 엄마는 6남매 중 외동딸이어서 남자 형제들과 잘 어울려 놀지 못했다. 결혼한 남자는 딸-딸-딸-아들-딸-아들인 집안의 장남이었다. 그래서 고모들의 텃세가 상당히 심해, 이곳에서도 제대로 적응하질 못했다. 내가 페라가모 구두를 선택한 이유다.
나는 이 브랜드를 볼 때마다 여동생을 향한 순수한 사랑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페라가모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14남매 중 11번째로 자랐다. 그는 9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구두를 만들게 되었는데, 그 계기는 여동생의 성찬식이었다. 당시 관례상 하얀 구두를 신어야 하는데, 가족 형편상 새 구두를 살 돈이 없었다. 당시 9살이었던 어린 실바토레 페라가모는 어린 여동생을 위해 마을의 구두 장인이 작업하는 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보며, 구주 제작 과정을 어깨너머로 배운다. 그다음 못실과 하얀 캔버스와 도구를 빌려, 동생을 위한 하얀 구두를 만든다.
내가 엄마를 향한 마음은 실바토레 페라가모가 여동생을 바라보는 마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리 엄마는 외동딸로 자라면서 남자 형제들과 어울리지 못했던, 시집을 가서도 고모들의 텃세에 짓눌렸기에 엄마가 조금 더 아름다운 시선을 받았으면 하는 순수한 마음이었다.
선물은 단순히 물건을 주는 게 아니다. 상대를 향한 감정의 표현이자, 애정의 증거이다. 그러니 선물을 하기 전에 살펴봐야 하는 것은 인터넷이 아닌, 오랜 시간 상대를 바라보고, 그 사람이 어떤 순간에 아쉬워했는지, 무엇을 채워주고 싶었는지 떠올려야 한다. 그런 고민 끝에 고른 선물이 단순 물건을 넘어 내 마음이 담긴 메시지가 된다.
사실 부모님께 이런 방식으로 선물을 하면 참 좋다. 그 이유는 명절 때 친척들 사이에서 효자라고 소문이 나기 때문이다. 효자라고 소문이 나면 왜 좋냐고? 명절 때 남은 음식.. 그중에서도 내가 무심코 '맛있다.'라고 말했던 음식들은 모두 내 앞으로 향해있다 ^_^vvvv
선물은 단순 물질적 가치를 넘어, 내가 얼마나 얼마나 상대에 대해 생각했고, 특별한 마음을 품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방법이다. 앞으로 '남자친구 선물 BEST 5', '여자친구 선물 추천' 같은 콘텐츠가 내 눈에 띄지 않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