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가 내 탓은 아니잖아
수많은 찐따에게 거절은 매우 익숙한 대답입니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용기를 내 다가갔을 때, 돌아오는 대답이 침묵이거나, 냉혹한 거절이거나, '친구 사이로 지내고 싶다.' 같은 우회적인 거절이 대표적일 것입니다. 그 순간, 마음 한구석에 먼지처럼 자리하고 있었던 콤플렉스는 한순간에 묵직한 짐처럼 다가오게 됩니다. 불안을 확신으로 바꿔주었던 용기의 불꽃은 순식간에 재가 되어 사그라진 것입니다. 더 나아가 '어쩌면 내가 오징어, 아귀처럼 흉측한 놈이어서 곁에 두기도 싫어하는 건가..?ㅠㅜㅜㅠㅠㅜㅠㅜ' 같은 생각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그렇게 우주괴물이 된 것 같은 생각에 사로잡혀, 거울을 외면하고 땅바닥만 보며 걷게 됩니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니 거절당한 상황을 조금 더 멀리서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일단 상대의 거절은 내 모든 삶과 영혼까지 들여다보고 거절한 게 아닙니다. 존재 자체를 혐오하거나 부정하려는 의도라고 볼 수 없습니다. 이는 상대방이 이성적, 본능적으로 감지할 수 있는 매력을 느끼지 못했을 뿐입니다. 조금 더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성적인 매력은 외모와 감정 그리고 무의식적 취향이 만들어내는 매우 복합적인 결과물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의지나 논리로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거절을 마치 헌법재판관의 판결처럼 하나의 엄중한 심판처럼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거절이라는 판결이 떨어지는 순간, '내가 못나서, 내가 잘못해서'와 같은 죄책감으로 자기 자신을 몰아세웁니다. 그럴 때 조금 더 원시적으로 생각해봐야 합니다. 원시인은 폭우 앞에서 인간이 큰 잘못을 했기에, 신이 벌을 내린 것이라 믿었습니다. 하지만 기상학이 발달한 덕에 폭우가 자연적, 기상학적 상호작용이라는 결과를 알게 되었습니다. 불시에 내리는 호우는 죄다 인간의 잘못이라 할 수 없으며, 그저 운이 나쁜 날씨의 단면으로 볼뿐입니다.
이성의 거절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보면 됩니다. 갑자기 댐이 무너져 홍수가 나는 것처럼, 마음의 물길이 감정의 물길에 휩쓸려 어찌할 바를 바를 몰라하는 순간이 옵니다. 그렇다고 하여, 그 홍수를 마치 ‘내가 나쁜 사람', '우주 괴물'로 단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 물론 우주 괴물은 맞을 수도 있습니다.) 폭우가 환경적, 복합적 요인에 의하여 발생한 것처럼 거절도 상대방이 가지고 있던 무의식적 끌림의 부재 또는 단순 타이밍 불일치 같은 요소가 겹쳐서 생겼을 것입니다.
그리고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볼 필요도 있습니다. 과거의 내가 누군가에게 호의를 받고, 커다란 설렘과 흥분을 느끼지 못했던 상황이 대표적입니다. 그때의 나는 '이 사람은 착하고 호감도 가지만, 어딘가 맞지 않는다.'라는 막연한 감정에 사로잡혀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것이 그 사람의 외모와 성격을 모두 부정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나의 무의식이 내 의지와 무관하게 그 사람에게 특별한 끌림을 느끼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좋아하는 이성에게 거절당했다는 사실을 바로 '나라는 존재가 부정당했다.', '내 영혼은 쓰레기다.', ‘나는야 우주 오징어 몬스터’ 처럼 비약해서 받아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어쩌면 이는 변덕스러운 날씨의 희생양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기의 흐름이 바뀌면서 비구름이 폭풍처럼 몰아닥쳤을 뿐이지, 그것이 내 모든 삶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고개를 들어 창밖을 내다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 해가 비추는 날이 옵니다. 거절로 인한 어두운 시간 역시 언젠가는 걷힙니다. 그러므로 폭우를 맞이했다면, 나의 부족했던 내면과 외면을 조금 더 단단히 다질 계기로 삼아 새로운 인연을 맞이할 준비를 하면 됩니다. 물론 좋아하는 이성에게 고백할 때는 불확실함이란 그림자가 또다시 드리워질 것입니다. 이 그림자를 걷어내는 건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절대적인 방법론이 아닙니다. 이는 신기루를 쫓는 것과 같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확실한 것은 각자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견고한 신념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찐따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은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드 넓은 바다 위에서 그나마 확실한 정보인 나침반*을 따라 이성이라는 돛을 올리는 것입니다. 물론 예상치 못한 폭풍우를 만날 수 있지만, 이 방법만이 나를 더 나은 곳에 닿게 할 것입니다.
(* 앞서 언급한 정보는 나의 경험과 지식 그리고 현재 눈앞에 놓인 상황, 상대에 대한 이해 등이 있습니다.)
거절은 누구나 마주할 수 있는 작은 불운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상대의 성적 끌림이나 애정이 이성의 힘으로도 강제할 수 없는 자연 현상이라는 걸 받아들인다면, 자괴감과 배신감이라는 나쁜 감정에 휘둘리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거절당하면 어떻게 하냐고요?
마음 같아서는 차단당할 때까지 카톡으로 장문의 편지를 보내고 싶은데요. 그냥 책을 읽으면서 부정적인 생각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합니다. 그리고 책을 읽다 보면, 지금 내 부정적인 마음에 이름표를 붙일만한 단어나, 설명할 수 있는 문장들을 만나게 되는데요. 이를 메모해 놓고 다시 곱씹고 나만의 방식으로 재구성하게 됩니다. 그러면 나를 조금 더 정확하고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게 되고, 한 편으로는 반성할 수 있게 되더라고요.
아 그것보다 오늘 아침은 뭘 박살 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