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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 청소년은 언제 해야 할까?

청소년의 성(性)은 성(城)처럼

by 찡따맨


사람들은 오래된 성곽과 고풍스러운 저택을 보면 웅장함과 우아함을 떠올립니다. 높은 담장과 묵직한 대문 그리고 바깥세상을 향해 조그맣게 열린 창. 과거에는 그 안에서 화려한 연회가 열렸고, 사랑과 욕망이 뒤섞이며 권력의 흐름이 결정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공간은 아무에게나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함부로 들어가려 하면 금세 문지기의 날카로운 눈초리를 마주해야 했고, 경계를 넘으려는 자는 그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시대가 변했습니다. 인터넷 방송과 온리팬스(OnlyFans) 같은 플랫폼이 등장하면서, 성(性)은 더 이상 감춰진 게 아니라 개방된 경제적 자원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성매매가 불법이지만 성을 활용해 돈을 버는 일이 점점 매력적인 현상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습니다. 특히 이러한 흐름은 청소년들에게 도 쉽게 노출되고 있습니다.




나는 친구와 주말마다 PC방 아르바이트를 하기로 했다. 친구와 편하게 놀면서 돈을 벌고 싶었기 때문이다. 토요일 PC방은 평일과는 사뭇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주말의 여유를 만끽하는 직장인 아저씨들부터 손을 턱에 괴고 고스톱을 하는 아저씨, 화면 속 캐릭터와 한 몸이 되어 마우스를 휘두르는 초등학생들까지. 그리고 그중에서도 유독 시선을 사로잡는 존재들이 있었다.


일진 여고생 무리였다.


7~8명 정도 되는 무리는 마치 이곳을 자신들의 무대처럼 휘젓고 다녔다. 게임을 하지 않으면서도 늘 피시방 안을 떠돌며, 익숙한 남학생들의 자리로 다가가 장난을 치거나, 때로는 카운터 근처에서 아르바이트생들을 구경하듯 바라보았다. 걸음걸이는 느긋했고, 표정에는 싱그러운 여유가 서려 있었다. 때로는 카운터로 다가와 가벼운 말장난을 걸었고, 손끝으로 계산대의 모서리를 톡톡 두드리며 시선을 끌었다.


그날도 친구와 카운터에 기대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었을 때였다.


“여기, 우리 놀이터예요.”


일진의 우두머리처럼 보이는 그녀의 목소리는 칵테일처럼 달콤하면서도 알코올처럼 도발적이었다. 화려한 아이섀도가 눈꺼풀 위에서 반짝이며, 마치 밤하늘의 별자리를 그린 듯했다. 도도하게 고개를 살짝 기울인 그녀의 표정은, 마치 왕관을 쓴 여왕이 새로 도착한 신하를 내려다보는 듯했다. 짧은 단발머리가 어깨 위에서 물결치며, 교복 치마는 바람에 흔들리는 꽃잎처럼 짧고 대담했다. 나는 그저 금붕어마냥 입을 뻐끔거리며 그녀를 쳐다볼 뿐이었다. (토요일인데 왜 교복을 입고 있냐고? 그때는 놀토가 아니면, 학교를 갔으니까!!!)


"..."

나는 찐따답게 낯선 여자가 말을 거는 순간 머릿속이 멍해졌다.


“어, 얘네들 게임 안 하고 맨날 여기저기 돌아다녀.”

옆에서 친구가 툭 던진 말은 익숙하게 소개하는 투였다.


나는 그녀들을 처음 마주한 것처럼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들은 유리창 너머에서 스며드는 불빛처럼 자연스럽게 PC방 카운터를 감싸고 있었다. 때로는 초등학생 손님들이 일진 누나들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려는 듯 조용히 발길을 돌릴 때면, 나는 초등학생 손님들에게 재빨리 다가가 고개를 숙이며 무엇이 필요한지 물어보곤 했다. (시간이 흐르고 PC방 사장님은 이런 내 모습에 감명받아, 아르바이트 생들 중에서도 가장 높은 시급을 제안하셨지.)


친구가 청소라는 명목으로 카운터를 떠난 사이, 여고생 무리가 다시 밀물처럼 다가왔다. 이번엔 타이트한 교복을 입은 그녀가 앞장섰다. 그녀의 웃음은 햇살처럼 순수했지만, 그 아래 깃든 장난기는 여름날의 장마처럼 예고 없이 터질 것 같았다.


“오빠는 몇 살이에요? 우리는 언덕 위 창녀촌 고 2에요.”

그녀의 목소리는 꿀처럼 부드럽게 흘렀고, 말끝에 살짝 묻어나는 웃음은 장난꾸러기 고양이 같았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살짝 꼬며 나를 쳐다봤다. 눈동자는 맑은 호수처럼 반짝였지만, 그 깊이엔 무언가 짓궂은 물결이 일렁였다.


“아… 네?”

나는 다시 멍청한 금붕어처럼 다시 입을 뻐끔거렸다.


“우리 ㅇㅇ여고. 우리 학교 별명이 언덕 위의 창녀촌이에요.”

그녀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킥킥 웃었다. 그 웃음소리는 마치 종소리처럼 맑았고, 주변의 담배 연기마저 잠시 정화시키는 듯했다. 그녀의 교복은 몸에 꼭 맞아, 마치 바람에 꽉 찬 돛처럼 그녀의 곡선을 드러냈다.


나는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잡담의 물결에 휩쓸려 점점 더 가까워지게 되었다.


그녀들은 종종 옥상 계단으로 올라가 담배 연기를 하늘에 뿌리며 침을 툭툭 뱉곤 했다. 마치 도시를 내려다보는 작은 폭군들처럼. 하지만 내가 카운터에 있을 땐, 적어도 침 뱉을 뱉지 않으려 했다. 그건 그녀들이 평소에도 지켜왔던 예의였을까, 아니면 나를 향한 배려였을까.


손님들이 물러간 한가한 시간, PC방은 마치 폭풍이 지나간 후의 고요한 바다 같았다. 키보드 소리도, 욕설도 잠잠해진 그 순간, 문이 스르륵 열리며 그녀가 들어왔다. 평소의 화려한 무리와 달리 혼자였다. 그녀는 컴퓨터 대신 카운터로 곧장 다가왔다. 단발머리가 살짝 흐트러져 있었고, 교복 블라우스는 구겨진 채였다. 평소처럼 잡담을 나누다 그녀는 조용히 주위를 살피며, 마치 비밀을 속삭이듯 조용히 입을 뗐다.


“그런데 남자들은 어떤 여자랑 하고 싶어 해요?”


그녀의 목소리는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나지막하고 떨렸다. 눈썹이 살짝 올라가며 궁금증이 어린 표정이 떠올랐다. 그녀의 입술은 살짝 말려 올라가, 마치 호기심과 장난 사이를 오가는 작은 새 같았다. 그녀는 손톱으로 카운터를 톡톡 두드리며 내 대답을 기다렸다. 그 손톱엔 반짝이는 매니큐어가 칠해져 있어, 마치 밤하늘의 별빛처럼 빛났다.


“음… 예쁜 사람. 야동도 여배우가 예쁘지 않으면 재미가 없어.”

나는 찐따답게, 사회성 없는 야동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럼 다들 저랑 하고 싶어 하겠네요?"

그녀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웃었다. 그 미소는 장미꽃처럼 화사했지만, 어딘가 가시처럼 날카로운 자신감이 묻어났다. 그녀는 턱을 괴며 나를 바라봤고, 그 눈빛은 무언가를 겨냥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녀의 당당한 모습을 지켜주고 싶어, 긍정적인 답을 내고 싶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순간만큼은 조선시대 사람으로 빙의했다.


“음… 꼭 그렇지 않아. 언덕 위의 창녀촌이지만, 평소처럼 단정하게 하고 다녀야 해. 그래야 더 섹시하거든. 문이 활짝 열린 주택보다 대문이 굳게 닫힌 주택이 더 많은 호기심을 자극하잖아. 대문이 굳게 닫힌 곳들은 대부분 부자들이 사는 주택 단지이잖아..?”

그렇게 나는 정 떨어질 만한 헛소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우리가 섹스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이유는 성에 대한 시각이 성숙하게 자리 잡은 덕입니다. 그러나 청소년들은 2차 성징 이후 변화한 자신의 신체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뿐더러, 성에 대한 개념이 제대로 확립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무분별한 정보에 휩쓸릴 위험이 있습니다. 이들이 성을 단순한 상품이나 하나의 놀이로 인식하기 시작한다면, 성의 본질적인 의미와 가치를 제대로 들여다보기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여기서 후장 섹스 같은 자극적인 단어를 사용했음에도, 청소년과 섹스를 주제로 대화할 때 다소 보수적인 태도를 유지한 이유입니다. 물론 자유로운 논의와 표현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 자유는 자기 자신에게 가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스스로 이끌 필요가 있습니다. 성곽이 무너졌다고 하여, 모든 문을 활짝 열어두는 게 정답이 아닌 것처럼, 중요한 것은 경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성(性)은 불처럼 다루는 것


성(性)은 불과 같습니다. 불은 인간에게 유용한 도구입니다. 따뜻한 온기를 제공하고, 음식을 익혀주며, 추위와 어둠을 몰아냅니다. 그러나 불을 제대로 통제하지 않으면, 불길이 걷잡을 수 없이 번져 마을을 집어삼키고, 소중한 집과 재산을 잿더미로 만듭니다. 성욕도 다르지 않습니다. 옛사람들은 인간의 성적 욕망을 단순한 본능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이를 잘 다스리면 사회를 안정시키는 원동력이 되지만, 제어되지 않으면 공동체를 파괴하는 악이었습니다. 불을 다루는 기술이 부족했던 시대에 사람들은 함부로 피우지 않았습니다. 허락된 곳에서만 조심스럽게 사용하며, 바람이 강한 날이나 건조한 날에는 불씨하나에도 각별한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이와 동일하게 옛사람들은 성욕이라는 불씨를 사회적 틀 속에서 조심스럽게 관리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이는 역사 속에서 수없이 반복된 고통 끝에 맺어진 교훈에 가깝습니다. 고대 로마, 바빌론, 프랑스혁명 이후의 혼란기 그리고 20세기 성혁명 이후의 사회 변화까지. 성적 방종과 무절제한 자유가 가져온 혼란은 수많은 사례를 통해 입증되었습니다. 성욕은 불과 같고, 잘 다루지 않으면 결국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사회 전체가 흔들린다는 것이 옛 철학자와 정치가들의 결론이었습니다.


고대 로마는 초기 공화정 시대에 철저한 가정 윤리를 기반으로 번성하였습니다. 로마 사회는 가족 중심으로 유지되었고, 결혼과 가정이 국가의 안정성을 보장하는 중요한 요소로 간주되었습니다. 하지만 제국이 확장되고 부유해지면서 성적 문란함이 만연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귀족층과 황제들은 무분별한 성적 향력을 즐겼습니다. 칼리굴라 황제는 성적으로 타락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힙니다. 그는 여동생과 근친상간을 했으며, 연회를 열어 상류층 여성들을 강제로 유흥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네로 황제 역시 공공연하게 동성과 성관계를 맺었으며, 결혼을 놀이처럼 여겼습니다. 황제들만이 아닌, 귀족 사회 전반이 성적으로 방종해지면서 결혼의 의미는 희미해졌고 출산율은 급감했습니다.


그 결과 로마는 점점 더 외국 용병에 의존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사회적 혼란과 함께 군사력 약화를 맞이했습니다. 서기 476년 로마제국은 게르만족의 침략을 막지 못한 채 멸망합니다. 고대 로마 철학자 키케로가 "국가의 운명은 가정에서 결정된다."라고 한 말은 단순 추상적인 철학적 명제가 아닌, 로마 사회의 몰락을 예견한 경고 메시지였습니다.


이는 단순 로마인들의 문제로만 여겨지지 않습니다. 강력한 문명일수록 성적 윤리가 문란해지는 시점에서 급격한 쇠퇴를 맞이합니다. 바밀론과 마야, 몽골제국 같은 거대한 문명도 부유함과 권력의 정점에 섰을 때 방종과 퇴폐가 만연했고, 이는 내부 분열과 사회적 무질서를 초래하며 멸망의 길을 걷게 됩니다. 바빌론은 성적 방종과 쾌락이 도시 전반에 퍼졌을 때 사회적 혼란을 겪었고, 마야 문명은 종교적 의식을 빙자한 성적 타락이 증가하면서 가문의 질서가 무너졌습니다. 몽골제국은 급격한 확장과 함께 따라온 군사적 지배력은 강력했으나, 후기로 접어들면서 왕실 내부에서 혼란과 음모가 심화되었고, 이는 곧 권력의 분열로 이어졌습니다. 이처럼 성적 질서의 해체는 단순한 개인적 문제가 아닌, 사회와 국가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근본적인 요소였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교훈 속에서 옛사람들은 성적 욕망을 무절제하게 방치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혼전순결, 일부일처제, 결혼제도, 가문의 명예와 도덕적 기준을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도덕적 틀은 단순한 개인 억압이 아닙니다. 공동체를 보호하는 방화벽과 같은 역할을 한 것입니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개인의 욕망이 방치되면 결국 국가도 질서도 무너질 것이다."라고 경고하기도 합니다. 이는 성적 욕망이 절제되지 않을 경우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가 혼란에 빠질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규제를 과거의 낡은 유물로 바라보지만, 당시 사람들에게는 사회 질서를 유지하여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한 안전장치이기도 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의 섹스, 상호 동의가 유일한 기준인가?


청소년들의 콘돔의 등장은 섹스에 대한 시선을 바꿨습니다. 그동안 섹스는 출산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기에 성윤리 또한 생식과 가정 유지라는 사회적 필요 속에서 형성되었습니다. 하지만 콘돔을 비롯한 피임 기술의 발전은 성관계를 생식과 분리시켰고, 성윤리에 대한 시각도 변화했습니다. 이제 섹스는 가문을 잇기 위한 도구가 아닌, 개인적인 즐거움과 관계 형성의 수단으로 인식되었습니다. 과거 성윤리가 출산과 사회적 책임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이제는 동의와 개인의 권리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변화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이제 섹스는 법적 사회적 합의가 있다면 윤리적으로 문제가 될 수 없다고 간주하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새로운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상호 동의만으로 모든 섹스를 정당화할 수 있는가?"


법적,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상호 합의한 섹스가 개인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건 아닙니다. 충동적이고 가벼운 섹스가 개인에게 미치는 심리적 후유증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처음 만난 사람과 연애를 전제로 섹스를 했는데, 다음 날 상대방이 연락을 끊는 상황을 가정해보겠습니다. 이는 법적으로 사회적으로도 문제는 없지만, 삼정적으로 상처를 남길 수 있습니다. 피임법이 보편화된 사회에서도 충동적인 섹스가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은 무시할 수 없습니다. 고로, 단순한 동의가 있었다고 하여 모든 섹스를 건강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이외에도 섹스 중에 존중받지 못하거나, 개인의 자아를 훼손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경우, 이 또한 긍정적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보다 나은 섹스를 원한다면, 상호 동의를 넘어, 상호 존중이 갖춰진 안정적인 관계 속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섹스는 단순한 욕망 해소가 아닌, 자기표현의 한 방식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예술과 춤, 음악, 문학을 통해 내면을 표현하듯, 섹스를 통해 감정과 욕망을 자연스럽게 표출합니다. 섹스는 단순 신체적 결합이 아닌, 감정과 신체적 친밀감을 표현하는 방식이자, 사랑과 신뢰, 애착 같은 감정을 더 깊이 교류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합니다. 인간은 각기 다른 욕망과 판타지를 지니고 있으며, 이를 건강한 방식으로 탐구하고 상대방과 공유하는 건, 상호 존중을 기반으로 한 아름다운 섹스가 될 수 있습니다. 단순한 동의를 넘어서, 섹스가 더욱 깊이 있는 의미로 발전될 때에야 자기 확장과 성숙된 인간관계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청소년의 섹스를 단순 법적 기준만으로 논하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18세 360일 된 청소년과 20세 20일 된 성인의 정신적 성숙도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18세가 더 성숙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인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일단 정서적으로 안정적이고 자신의 몸과 마음을 존중하는 상태에서 섹스를 선택하는 게 중요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섹스는 성욕 해소를 넘어, 상호 존중과 감정적 안정성의 균형을 잡아주는 매개체가 되어 더 건강한 삶을 그려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고로 섹스는 단순 동의를 넘어, 자신과 상대방을 존중하고, 감정적, 정서적으로 안정된 상태에서 이뤄져야 합니다. 이는 청소년 뿐만 아니라 성인에게도 해당되는 것입니다. 자유롭고 개방적인 섹스가 아닌, 상호 존중과 감정적 정서적으로 안정된 상태에서 섹스를 한다면, 욕망을 대상으로 하는 포르노와 온리팬즈 보다 관계 중심의 성적인 콘텐츠가 더 늘어난 사회 그리고 연애와 결혼을 조건이 아닌 관계 중심으로 전환될 지도 모릅니다.



물론 제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가장 좋은 섹스는 자기 확장을 일으키는 것." 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섹스는 가벼운 곳을 긁는 것." 이라고 여기는 사람에게는 제 말이 크게 와닿지 않을 것입니다.


아 그것보다 저녁 뭐 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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