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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 채찍으로 때리면 좋냐? 퓨ㅠ

사디즘, 마조히즘이 그린 새로운 사랑의 풍경

by 찡따맨


사랑을 말할 때 많은 사람들은 다정한 온기로 이루어진 분위기를 떠올립니다. 그런데 인간은 자유를 꿈꾸는 존재입니다. 자유롭고 싶어 하는 누군가는 다정한 온기로만 채워진 사랑이라는 좁은 틀에 저항하고 벗어나고 싶어 할 것입니다. 정상이라고 불리는 섹스의 뒤편에는 고통과 쾌락으로 얽히고 섞인 다른 세계가 존재합니다. 변태적 성애로 불리는 사디즘(Sadism)과 마조히즘(Masochism)이 가장 대표적인 예입니다.




학교 근처의 카페는 비 오는 날의 고요함에 잠겨 있었다. 창밖으로 부슬부슬 내리는 비가 유리창을 타고 흘렀고, 나는 평소처럼 책을 펼쳐놓고 재미있는 생각들을 수집하기 바빴다. 그때 누군가가 내 테이블을 툭툭 두드렸다..


가는 손가락 끝에 달린 진주빛 매니큐어가 테이블 위에서 달빛처럼 반짝였다. 매끄러운 손톱이 나무 표면에 부딪히는 소리는 마치 조심스러운 초대장과도 같았다. 손목은 마치 백조의 목처럼 우아하게 꺾여 있었고, 섬세한 은팔찌가 그 움직임에 따라 부드럽게 흔들렸다.


"야 책 좀 그만보고, 카톡 좀 봐."


오늘도 친구들과 시끄럽게 떠들다 왔는지, 그녀의 목소리는 오늘도 허스키한 톤이 섞여 있었다. 그녀의 음색은 공기를 감미롭게 간지럽혔고, 듣는 사람의 마음속에 어딘지 모를 전율을 남겼다. 이토록 생기 넘치고 명랑한 사람이 목소리를 혹사시키지 않고 살아갈 수 없겠지. 그녀의 말들은 명랑한 파도의 포말처럼 끊임없이 튀어 오르듯, 내 미소도 자연스럽게 터져 나왔다.


그녀의 긴 흑발은 달빛이 은은하게 내려앉은 한밤의 바다 같았다. 한 올 한 올이 가냘프면서도 힘이 있었으며, 어깨 위로 자연스럽게 흘러 그녀를 더욱 빛나게 해 주었다. 저 머릿결을 가꾸려면 하루에 몇 번이나 빗질을 해야 할까? 2,000번 정도는 해야겠지?


그리고 그녀의 눈, 아! 눈매! 살짝 올라간 눈꼬리는 영특한 고양이의 장난기 어린 눈빛을 닮아 있었다. 그 안에서 반짝이는 빛은 장밋빛 황혼과도 같았다. 따뜻함과 장난스러움이 공존하는 그 눈을 계속 보고 있으면, 누군들 그녀의 유혹에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넌 절대 사기꾼 같은 거 하지 마라.


그녀의 입술은 장밋빛으로 물들어 있었으며, 웃을 때마다 드러나는 하얀 치아는 작은 진주처럼 반짝였다. 그런데 그녀의 손에 쥐어진 게 아이스 아메리카노라니, 혹시 이 아메리카노 새키가 그녀의 화사한 진주빛 미소를 위협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내가 대신 마셔야 할 것 같기도.


오늘 그녀는 크림색 니트와 짧은 체크무늬 치마를 입고 있었다. 니트는 그녀의 곡선을 부드럽게 감싸며, 품격을 더했고, 짧은 치마는 그녀의 다리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무릎을 덮은 검정 스타킹은 그녀의 다리를 더 매끄럽게 보이게 했고, 발끝을 장식한 로퍼는 고전적이면서도 세련된 느낌을 자아냈다. 그런데 비가 오는 데 이걸 왜 입었지? 궁금하지만 그냥 참아야지. 난 패알못이니까.


그런데 난 아직도 궁금해 죽겠다. 그녀는 왜 나를 만나는 걸까? 우주의 법칙을 거스르는 걸 좋아하는 취향인가? 어쩌면 그녀는 내가 재벌 3세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조만간 자연스럽게 내 통장 잔고를 보여줘야 할 것 같다. 인생이 희극이라면, 적어도 배우들에게는 진실을 알릴 기회가 있어야 하니까.



"아. 응. 그런데 어차피 와서 대화하면 되잖아. 굳이 카톡 볼 필요가 있나?"


나는 책을 덮으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러자 그녀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며 장난스러운 미소가 번졌다.


"내가 늦을 수도 있잖아."


"난 2시간도 기다릴 수 있어."


내 대답에 그녀가 살짝 눈썹을 찌푸리더니, 곧이어 또 허스키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내가 안 올 수도 있잖아."


"아 그렇네. 그래도 덕분에 카페에서 혼자 책 보고 좋지. 또 안 오면 마땅한 이유가 있겠지. 나는 이해할 수 있어."


내 말을 들은 그녀는 테이블 위에 턱을 괴며 나를 빤히 쳐다봤다. 길고 짙은 속눈썹이 조명을 받아 그림자를 드리웠는데, 이는 마치 깊은 우물처럼 흔들림 없이 빛났다. 그 순간 그녀의 모습은 영화 속 한 장면 같았다. 아무런 장치도 연출 없이도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완벽한 장면이 만들어지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 지금 내 앞에 있는 그녀겠지. 배우를 하면 참 잘할 것 같은데, 왜 안 하는 걸까? 뭐 본인이 알아서 하겠지.


"그냥 카톡 보라고 하면, '네~' 하고 대답해."


그녀가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 그녀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며 장난스러운 미소가 번졌다.


"응. 아니.. 네~ 그런데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돌아다니기 싫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내 말에 그녀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단순한 호기심도 심문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가만히, 깊숙이 파고들어 나를 탐색하려는 듯한 시선이었다. 그러더니, 그녀가 테이블 위로 몸을 살짝 기울이며 말했다. 허스키한 목소리, 그 안에는 부드러운 설렘이 가득했다.


"그러면 여기 근처에서 밥 먹고 우리 집 갈래?"


난 그녀의 말에 머리가 멍해졌다. 난 돌아다니기 싫다고 했는데, 왜 결론이 '우리 집 갈래? 가 되는 거지? 나는 이 카페에 그대로 있고 싶다는 뜻이었는데;;;;;;;;;;;;;;;


"나 돌아다니기 싫어"


내 단호한 대답을 듣고도 그녀는 별 반응 없이 나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아니 별 반응이 없었다기보다는, 반응을 천천히 만들고 있는 것 같았다. 속눈썹이 다시 한번 조명을 받아 부드러운 그림자를 만들었고, 그녀의 눈빛은 내 속을 꿰뚫어 보려는 듯 깊고 따뜻하게 변했다. 그러다 입술이 살짝 굳어지더니, 곧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다시 민소가 번졌다. 그 미소는 장난스럽기도 했고, 애정이 묻어나기도 했다. 아마 애정이라면 내가 아닌, 재벌 3세일 것이라는 환상을 애정하고 있는 것이겠지. 그렇게 그녀는 손을 뻗어 내 손을 툭 두드렸다. 따뜻한 손끝엣 ㅓ전해지는 온기와 은은한 바닐라 향이 비 오는 날의 축축한 공기를 꿰뚫고 들어왔다.


"그래? 밖에 식당 말고 우리 집에 가서 배달 음식 먹을까?"


이쯤 되면 그녀는 이 카페가 싫은 게 분명하다. 아마 전 남친 또는 절교한 친구가 이 카페에 있는 게 아닐까? 그래. 내가 재벌 3세는 아니지만 마음만큼은 재벌 3세가 되려고 노력해야지.


"네가 편하면 그렇게 하자."



그녀의 자취방에 도착했을 때, 비에 젖은 그녀의 머리카락이 어깨에 가볍게 달라붙어 있었다.

거봐 ㅠㅠ 내가 이래서 돌아다니기 싫다고 한 건데 ㅠㅠ 이따가 저 머리를 또 말리고 빗질을 2천 번 해야 할 텐데.. 무튼 수고해라 친구야.



"저기 앉아. 물 마실래?"

그녀가 부엌으로 향하며 말했다. 허스키하면서도 부드러운 여운.


"응."


나는 소파에 앉아 그녀의 집을 둘러봤다. 깔끔한 인테리어와 곳곳에 놓인 아기자기한 소품들. 유리 꽃병 속 말린 라벤더, 책상 위의 은은한 조명. 그리고 전공서적으로만 채워지고 텅 비어 있는 책장.


그녀가 물 잔 두 개를 들고 돌아오더니, 내 옆에 가볍게 앉았다. 그녀의 우아한 크림색 니트는 소파에 닿으며 살짝 구겨졌고, 체크무늬 치마는 살짝 올라가, 그녀의 다리를 더 드러냈다. 검은색 스타킹이 조명을 받으니 더 은은하게 빛났고, 그녀의 존재는 방 안을 따뜻한 빛으로 채우는 듯했다. 라잌 무드등. 그녀가 나에게 물 잔을 건네며 나를 쳐다봤다. 그녀의 눈동자는 촉촉하게 반짝이고 있어, 내 시선을 붙잡았다.


"집에 오니까 더 편하고 좋지?"


"응. 너 진짜 깔끔하구나?"


그것보다 내 통장 잔고는 언제 보여줘야 할까? 배달음식 계산할 때 보여주면 되겠다. 그래도 밥은 내가 사야지.



배당 음식을 먹고 집에 가려고 할 때 즈음 그녀가 말 문을 열었다. 돈가스의 기름진 향이 방 안을 감싸고 있었지만, 그보다 더 강렬한 건 그녀에게서 은은하게 퍼지는 바닐라 향기였다. 그 향은 공기 중에서 느리게 퍼져 나를 감쌌고, 나는 이유 없이 손끝이 간질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우리 뭐 하고 놀까?"


그녀가 말을 꺼냈다. 여전히 허스키하면서도 달콤한 울림을 지닌 목소리. 그 소리는 가벼운 농담처럼 들리면서도 어딘가 묘하게 진지한 기운을 띠고 있었다. 진지한 걸 보니, 바둑이나 장기라도 한 판 뜨자고 할 기세다.


"그러게.."


그녀는 내 매가리 없는 찐따 같은 답변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그녀의 손이 천천히 내 손을 찾아와 감쌌다. 살짝, 그러나 확실하게. 그녀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는 걸 느꼈다. 그건 떨림이라기보다, 마치 바람이 흔들리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아름다웠다. 그녀의 장난스러운 미소 뒤에는 무언가 감춰져 있는 것 같았다.


“너 나… 때려볼래?”


"데려다 달라고? 어디 가야 해?"


"아니, 나 때려볼 수 있냐고. 너처럼 순수한 애가 때릴 때 어떻게 변할지 궁금해서."


그녀의 입가에 번지는 미소는 마치 잘 짜인 희극의 절정처럼 자연스럽고 완벽했다. 그 미소는 단순한 표정이 아닌, 순간의 감정을 우아하게 직조한 예술적인 장면에 가까웠다. 긴 속눈썹 아래에서 그녀의 눈빛은 깊은 호기심과 장난기가 어우러져 반짝이고 있었다.


그녀의 입술은 단순 촉촉함을 머금은 곡선이 아닌, 기분 좋은 농담이 채 끝나기도 전에 피어나는 웃음에 가까웠다. 그녀의 숨결이 부드럽게 새어 나오는 순간, 나는 황당한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아~ 그런데 굳이 때릴 필요가 있나?"


그녀는 순간 머뭇거리는 듯했으나, 확신이 스며든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입가에 걸린 미소는 여전히 장난스러웠지만, 그 안에서는 고도의 연출이 느껴졌다. 혹시 배우 겸 영화감독을 하려는 걸까? 마치 능숙한 배우가 대사를 던지기 전, 관객의 반응을 미리 계산한 듯한 표정에 가까웠다. 그녀의 눈매는 부드러우면서도 교묘하게 빛났고, 음영이 내리 앉은 속눈썹 아래서 호기심과 도발이 교차되는 걸 발견했다.


"그러면, 네가 입은 팬티를 내 입에 물리고 하는 건 어때?"


그녀의 목소리는 허스키하면서도 놀라울 만큼 가볍고 부드러웠다. 마치 사소한 제안을 내놓듯 무심하게 던지다니. 농담처럼 들리지만, 어쩌면 농담이 아닐 수도 있다는 뉘앙스. 그녀는 여전히 미소를 머금고 있었지만, 그 눈빛은 내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지금 돈가스 먹다 남은 한 조각을 네 입에 물리는 거라면 모르겠지만.."


그렇게 나는 잠시 집에 갈 계획을 내려놓고 그녀와 진지한 대화를 나눴다.




사디즘과 마조히즘은 성적인 감정이 고통으로 연결되는 현상을 설명한 개념입니다. 그래서 이 둘은 '알고라그니아(Algolagnia, 고통 도착증)이라는 개념으로 묶여 있습니다.


사디즘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 상대에게 육체적 또는 정신적 고통을 가하면서 묘한 쾌락을 느끼는 경향입니다. 이 개념은 18세기 프랑스 작가 마르키 드 사드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통하여 폭력과 성적 고통을 결합한 내용을 주로 다뤄, 사디즘이라는 개념이 정립되었습니다. 아직까지도 많은 독자들은 그의 책을 읽다가도 불쾌함에 책장을 덮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조히즘은 완전히 반대되는 듯하지만, 사실상 같은 맥락에 놓여 있습니다. 고통을 당하거나 도덕적 굴욕을 경험하는 순간, 쾌락을 느끼는 성향입니다. 이는 오스트리아 작가 레오폴트 폰 자허 마조흐의 이름에서 유래했습니다. 그의 대표적인 <모피를 입은 비너스>는 한 남성이 스스로 고통을 감내하면서 그 안에서 희열을 찾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사드가 고통을 주고 싶어 했다면, 마조흐는 그것을 받고 싶었던 셈입니다.


그런데 이 두 개념이 단순 문화적 기행으로 그치지 않고 보편적인 개념이 되었습니다. 어쩌면 그 이유는 인간의 몸이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어졌기 때문일 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고통을 느끼면 신경계는 즉각적으로 교감신경을 활성화하여 아드레날린을 분비합니다. 동시에 뇌는 위협을 완화하기 위하여 엔도르핀 같은 진통 물질을 방출합니다. 결과적으로 고통이 쾌락으로 변질되는 아이러니한 과정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고로 사디즘과 마조히즘을 단순한 변태적 취향으로만 단정 짓기는 어렵습니다. 어쩌면 이는 인간 본성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기묘한 진실일 수도 있습니다. 고통과 쾌락이 하나로 엮이는 순간, 인간은 비로소 스스로를 이해하게 될 수 있을 지도 모릅니다. 반대로 이해하고 싶지 않아질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원시적인 본능?


성적인 욕망을 인간만의 특권이라 생각한다면, 동물 다큐멘터리를 보지 않은 사람일 확률이 높습니다. 동물들도 열정적으로 사랑하고, 질투하며 경쟁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물론 제가 동물 다큐멘터리를 볼 때마다 이런 장면들만 찾아서 보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가 원하든 그렇지 않든, 자연은 늘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본성을 있는 그대로 비춰주는 거울과 같습니다.


예를 들어 동물의 짝짓기 과정은 격렬한 투쟁에 치닫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짝짓기 과정을 보면, 공격적인 힘겨루기를 하거나, 상대를 밀쳐내는 등의 공격적인 행동을 보입니다. 성적 욕망이라는 것이 단순한 로맨틱한 감정의 산물이 아니라, 강렬한 긴장과 물리적 힘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외면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유튜브 영상에서 본 돼지 농장을 보더라도, 발정 난 수컷 돼지를 함부로 건드리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성적 충동이 육체적 긴장과 맞물릴 때, 그것이 어떤 폭발력을 일으킬 수 있는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런 긴장감은 인간에게도 적용됩니다. 인간이 동물보다 더 세련된 방식으로 행동하고 믿는 것은 기만일 수도 있습니다. 위태로운 순간, 공포가 극에 달하는 순간, 인간은 오히려 서로에게 더 강렬한 애착을 느끼기도 합니다. 롤러코스터를 함께 타거나, 공포 영화를 보고 난 후 두 손을 꼭 잡는 연인들, 높은 곳에서 등골이 서늘해지는 순간을 공유한 뒤에 호감을 느끼는 심리 실험 결과도 이와 같은 이치입니다. 영화에서도 매우 극적인 순간에 두 남녀가 포옹 또는 키스를 하는 이유도 이와 비슷한 맥락입니다. 어쩌면 이는 자연이 우레에기 심어놓은 본능일 지도 모릅니다.


사디즘과 마조히즘 또한 긴장과 고통으로만 해석할 수 없습니다. 어쩌면 이는 성적 흥분을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일 수도 있습니다. 강렬한 스파크가 튈 수록 그 속에서 드러나는 쾌락은 더욱 강렬해집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두 사람은 서로의 존재를 더 강렬하게 인식하게 될 것입니다. 고통을 주고 받는 순간, 신경은 극도로 예민해지고, 모든 감각이 극도로 예리해집니다. 그 순간 우리는 상대를 단순 연인이 아닌, 마치 세상의 전부인 양 강렬하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결국 사디즘과 마조히즘의 근본은 성적 긴장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문명이라는 외투 속에 감추고 싶어했던 동물적 본능의 일부일 지도 모릅니다.



주의해야 할 것은?


세상은 단순 이분법으로 설명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에게 맞고 쇠롭힘을 당하면서 성적 흥분을 느끼는 사람은 변태 싸이코 정신이상자 나라의 왕자와 공주닙이다." 같은 식의 말은 지나치게 단순한 해석에 불과합니다. 인간의 욕망은 그리 단순하지 않으며, 내면의 심리적 방어 기제와도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끊임없는 불확실성과 통제 불가능한 고통으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예측할 수 없는 재난, 뜻밖의 실패, 감당할 수 없는 상실. 인간은 이런 상황에서 좌절하고 스트레스 받으며 때로는 공포를 느낍니다. 하지만 자신이 선택한 고통은 다릅니다. 내가 원해서 겪는 고통은 예상 가능하고, 통제할 수 있으며, 심지어 심적인 해방감을 가져다 줍니다. 마조히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묶이거나 굴욕을 당하는 상황에서 오히려 편안함을 느끼는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 이는 수동적인 굴복이 아닌, 스스로 설정한 규칙 안에서 자신을 해방시키려는 하나의 방법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억눌린 자아가 보상을 받는 방식으로도 연결됩니다. 누군가 살면서 크고 작은 스트레스를 겪고 이를 해소할 창구가 필요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익스트림 스포츠를 통하여 스스로를 벼랑 끝으로 내모는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공포 영화를 보며 두려움 속에서 쾌감을 즐기며, 어떤 사람들은 합의된 폭력적인 섹스를 통하여 심적인 안정을 찾습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진정한 통제권을 나에게 있다." 라는 인식입니다. 그러므로 소중한 상태가 고통 받는 모습을 원한다고 해서, 반드시 폭력적인 성향을 갖고 있다고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이는 단순 가학적인 욕망이 아닌, 인간이 품고 있는 본능적인 긴장과 해소의 과정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중요한 전제가 있습니다. 폭력이 항상 문제인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무책임한 폭력입니다. 만약 사랑하는 사람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고통으로 몰아넣는 게 어렵다면, 야구방망이를 들고 억지로 침대로 향할 게 아니라, 롤러코스터를 함께 타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이외에도 번지점프를 하거나, 고층 빌딩에서 바람을 맞으며 고통과 쾌감을 공유하는 경험을 가져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랑하는 상대가 침대 위에서 막 다뤄주길 원한다면? 무작정 때리고 괴롭히는 게 아닙니다. 예를 들어 성적인 흥분이 결합되면 자연스럽게 힘을 통제하지 못하게 되고, 상대의 목을 조르다 큰 위험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로 "내가 안전한 놀이기구가 되겠다 ." 라는 태도로 임해야 합니다. 고로 상대가 나를 믿고 의지할 수 있도록 정신을 단단히 차리고, 적절한 강도와 한께를 조절하는 게 매우 중요합니다.


물론 요즘은 데이트 폭력'이라는 말이 자주 들리기에 조심하게 다뤄야 합니다. 워낙 조심스럽게 다루려고 하다보니, 현제ㅐ 폭력에 대해 쓰고 있는 저의 ㅅ손과 발ㅇ이 붇벌부덜 떨리거 있ㅅ니다. 그ㄹ서 계석 오타가 발샹하고 있네요 ,ㅡ 이햏해주시깃 바랄니ㄷ.


여기ㅏ서 분명ㅇ히 할 게 있습니다. 제가 말하는 폭력은 상대를 해치는 게 아닙ㄴ다 . 상호 간의 합의된 행위이자, '이 정도 자극이면 괜찮아.' 라는 동의와 안전장치가 존재할 때에만 허용될 수 있는 영ㅇ역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의 ㅁ폭력이란 단순한 가해 행위가 아닌, 억눌린 공격성과 분노를 표출할 수 있는 일종의 통로가 됩니다. 상대를 무작정 다치게 하려는 게 아니라, 가장 깊이 숨겨진 욕망과 공포까지 끄집어내어 서로 맞닿게 하려는 시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서로를 밀치고 때리고, 흔들며 긴장의 끝으로 몰아넣는 과정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이 과정이 끝난 뒤에는 더욱 부드럽고 농밀한 친밀감이 따라올 것입니다. "싸우면서 친해진다." 라는 말이 있듯이 인간의 본능은 때로는 격렬해야 더 깊어지며, 폭풍 뒤에 고요함이야 말로 가장 강렬할 포옹에 가까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디즘과 마조히즘은 사랑의 지평을 넓히는 것.


사디즘과 마조히즘은 전통적인 사랑 그리고 섹스라는 개념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민 것입니다. 흔히들 사랑은 따뜻하고 다정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오히려 사랑이 고통을 동반할 수 있으며, 구속과 지배, 복종과 항복을 통하여 더 깊은 유대가 형성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이란 부드러운 포옹과 속삭임 정도로만 이해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채찍질과 속박이 사랑의 표현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들이 상호 동의 하에, 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둘 만의 색다른 사랑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이런 사랑이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저처럼 순수한 사람에게는 여전히 낯설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영여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손과 발이 또 부븓르부들 떨리고 있스며, 타자를 치는 도중ㅇ에도 온갖 오타가 범람ㅁ하고 있는 참사가 벌어짖고 있습니ㄷ. 하지만 이 세계를 단순히 변태적이거나 비정상적인 것으로 치부하기 앞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내면에는 얼마나 다양한 욕망들이 드글거리고 있는가? 그리고 그것을 단순한 '비정상'으로 치부할 자격이 있는가?


고통이 만들어내는 쾌락의 밀도는 때때로 상상을 초월할 수 있습니다. 단순 육체적 반응이 아닌, 심리적 해방의 한 형태로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정산인이라는 탈을 쓴 사람들은 이렇게 물을 수 있습니다. "그거 위험하지 않아?" 하지만 사랑이란 본디 금기를 넘어서는 감정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이 사람이 나를 지배하도록 또는 나에게 완전히 복종하도록 내버려 두어도 괜찮다." 라는 인식이야 말로 사랑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깊은 신뢰의 형태일 수도 있습니다.


사랑이란 오직 한 가지의 방식으로만 존재하는 게 아닙니다. 쾌락과 고통 그릭 그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욕망을 단순화할 수도 없습니다. 고로, 사디즘과 마조히즘이라는 이름 아래에 엮이있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들여다 보면, 결국 인간과 사랑이 얼마나 다층적이고 복합적인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거울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그 거울을 들여다보려는 순간 새로운 나를 마주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인간은 한편으로는 참 원시적이고 야만적이면서도 한 편으로는 놀라울 정도로 지적이고 섬세합니다.

저는 사랑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고로, 이 세계를 이애할 용기가 없다면, 적어도 경멸할 자격도 없습니다.





지금 화나는 이유

내일 화요일이라서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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