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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보는 여자끼리 섹스는?

레즈비언 섹스가 남성에게 주는 묘한 감성

by 찡따맨


수많은 포르노, 야동, 성인 영화에서 그려지는 야한 장면은 거품을 뱉고 있던 맥주마저도 숨을 멈출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 장면들은 늘 무언가에 젖어 있고, 흔들리고, 속도를 높이며, 아주 확실한 결말을 향해 달려가기 때문입니다. 이는 기계적으로 예측 가능한, 계약서처럼 진행됩니다. 시작 - 삽입 - 사정- 끝.


하지만 여성들끼리 하는 레즈비언 섹스는 추리, 스릴러 영화를 보는 듯한 기분입니다. 모든 여성들의 손길이 하나의 상징처럼 다가올 뿐만 아니라, "저 여성의 손끝이 닿는 위치는,, 저게 어쩌면 여성의 숨겨진 성감대인가!!?!?!?" 같은 추측과 함께 보기 때문입니다.


남성들이 레즈비언 섹스에 몰입하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여성은 남성보다 여성의 신체를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 자신의 몸과 함께 살아왔고, 그 안에서 변화와 감각을 누구보다 가까이 느끼며 살아왔습니다. 여기서 그려지는 레즈비언 섹스는 두 명의 피아니스트가 한 대의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처럼 정교하게 다가옵니다.


물론 여기서 중요한 건 여성들 사이에도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모든 성감대가 동일한 곳에 있지 않기에, 그들은 끊임없이 탐색을 하고 질문하고 반응을 읽어내며 서로를 마주합니다. 이 장면은 단순 섹스가 아니라 감각과 감정, 신체와 언어 없는 대화가 얽힌 하나의 정교한 문학처럼 다가옵니다. 남성과 여성이 나누는 섹스와 조금 다르게 다가오는 이유입니다.



카페에서 쓰리섬과 갱뱅에 대한 이야기를 모두 나눌 때 즈음,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얼음이 서로 부딪히며 내는 소리만이 간헐적으로 흐르게 되었다. 브루잉 머신이 열일한 덕분에 우리는 주변을 신경 쓰지 않고 자유롭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나누는 대화와 다르게 그녀의 모습은 우아하고 아름다웠다. 대략 0.3초 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스콘을 반쯤 잘라 잼을 바르고 있었다. 조명은 그녀의 손등을 더욱 투명하게 비추었고, 그녀는 그걸 알고 있었는지 손가락으로 부드러운 조명을 매만졌다. 혼자 브이로그 찍는 상상을 하고 있는 건지, 고개는 살짝 기울어져 있었고 목덜미 아래로 흐르던 머리카락 한 가닥이 테이블을 부드럽게 스쳤다.


그러던 중 나는 호기심이 튀어나왔다. 이를 최대한 중립적이고 조심스럽고 우아하려 애썼다. 마치 성당에서 기침을 하려는 사람이 내는 '에헴'소리처럼.

"갑자기 든 생각인데, 남자 두 명을 섭외하는 게 아니라, 여자 한 명을 섭외해서 하는 건 어떻게 생각해?"


그녀의 눈썹이 아주 미세하게 위로 들렸다. 이건 당황하거나, 내 멍청한 말을 곱씹는 중일 때 나오는 표정이다. 한 마디로 ㅈ 된 것 같은. 입술은 살짝 벌어졌고, 입꼬리에서 아래턱까지 그려진 곡선에는 분명 '그래.. 오늘 맞짱 떠보자'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야.. 아깐 쓰리섬 싫다며?"


그녀의 목소리는 정돈된 분노의 초입에 가까웠다. 그녀의 손끝은 더 이상 커피잔을 감싸고 있지 않았다. 대신 팔짱을 살짝 꼈다. 방어적인 자세. 첫 번째 공격 사인. 그것보다 왜 오빠에게 또 반말을 하는 걸까..? 이번 기회에 그냥 편하게 이름 부르면서 친구처럼 지내자고 할까?


"아니.. 나는 쓰리섬을 하자는 게 아니라... 여자 한 명을 불러서 둘이 즐기면 어떨까 궁금해서.."

내 말을 듣는 그녀의 눈동자 속에는 정적이 있었다.. 그 정적 안에는 '한 번만 실수해 봐라.'라는 작은 메시지가 숨겨져 있었다. 나는 눈치 백 단 찡따력을 발휘하여 조금 더 정제된 말로 이어나갔다.

"그.. 그러니까, 너는 낯선 남자 두 명을 불러도 침대에서 잘 어울릴 수 있을 것처럼 말했잖아? 그러면 낯선 여자 한 명 정도는 침대에서 잘 어울릴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녀는 내 말을 들으며 한 손으로 천천히 턱을 짚었다. 손끝이 뺨을 따라 부드럽게 닿았고, 그 움직임은 마치 어떤 무거운 감정을 얼굴에 조용히 얹는 것 같았다.


그녀의 모습은 마치, '저 새키 말을 다 들었는데, 이제 어떻게 조질까?' 하는 사람처럼 나를 지긋이 바라봤다. 눈썹이 서서히 내려갔고 입꼬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숨은 길어졌다. 그 숨은 참 묘했다. 단지 공기를 들이쉬는 게 아니라, 내 말을 한 문장씩 되새김질한 뒤 그걸 천천히 들어마시는 듯한 호흡이었다.


"그러니까~ 니 말은 '난 낯선 남자 두 명이랑 어울릴 수 있는 걸레니까. 내 남자친구가 다른 년이랑 침대에서 뒹굴어도 신경 쓰지 않고, 사이좋게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뭐 그런 거잖아? 그런데 나 원나잇 같은 거 한 번도 안 해봤어. 클럽에서 남자들한테 번호도 안 주고. 오늘도 지하철 역에서 누가 번호 물어봤는데 그냥 무시하고 왔어."

그녀는 단어 하나하나를 꾹 꾹 눌러 담았다. 눈썹은 미세하게 올라갔고, 눈동자는 조용히 내 감정을 스캔하고 있었다.


나는 잠시 생각했다.. 내가 오늘 아침에.. 신발끈을 꽉 메고 나왔던가?

지금 전속력으로 달려도 신발이 벗겨지지 않겠지?

스마트폰 바닥에 떨어트린 다음, 그걸 줍는 척하면서 신발끈 좀 묶어놓을까?

아.. 그러기 전에 뒤질 수 있으니, 일단 뭐라도 말해야겠다.


"너 원나잇 안 하고, 존나 잘생겨도 아무에게나 번호 안 주는 거 알지. 너는 정말 건전하고 바른 사람이라는 거 알고 있어. 너는 너만의 원칙을 지키면서 살고 있잖아. 내가 너보다 나이가 많지만 네가 너를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해. 그런데 오해하지 마. 내 말은 여자 둘이서만 하는 거야. 나는 절대 참여하지 않아. 내가 여자를 초대하고 싶은 생각이 든 이유가 뭐냐면, 모든 섹스는 여성의 오르가슴과 관계없이 남성의 사정과 함께 끝이 나잖아? 그런데 여자 둘이서 하면 둘 중 한 명이 진짜 오르가슴을 느낄 때까지 해야 해. 나는 여자 둘이서 하면 진짜 오르가슴을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랬어. 여자 불러도 나는 조용히 앉아서 구경만 할 거야. 물론 중간중간 보면서 느낀 점은 메모장에다 따로 적으면서 보겠지."


그녀는 말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눈동자에는 이해와 의심, 피로와 연민이 뒤섞인 복합적인 감정이 그녀의 시선을 타고 내게 닿았다.

그녀는 회계장부를 면밀히 검토하는 노련한 국세청 직원처럼, 내가 한 모든 단어와 쉼표, 맥락, 숨의 길이까지 하나하나 되짚으며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마침내 굳어 있던 그녀의 표정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눈가에서부터였다.

살짝 굳어 있던 눈꼬리가 아주 조심스럽게 내려앉았다.

그다음은 입술이었다. 팽팽히 다물려 있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가더니, 숨처럼 얇은 웃음을 토해냈다.

거봐!

난 쓰리섬 하기 싫다니까!? 난 탈세범이 아니라고!

그녀는 살짝 고개를 떨구며 웃었다. 웃음은 짧고 깊었고, 그녀 스스로도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

눈을 다시 들었을 땐, 전보다 부드러워진 시선이 나를 감싸고 있었다.


"오빠는 진짜..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해? 진짜 특이해."

마치 굳게 닫혀 있던 창고 문을 연 것처럼 시원한 말투였다.


그렇게 나는 신발끈 묶을 걱정을 내려놓고 마음 편하게 레즈비언 섹스에 대한 생각을 그녀에게 털어놓았다.





섹스의 역학을 뒤엎다


두 여성이 서로를 더듬더듬 탐닉하고 있는 장면은 성적인 흥분보다 묘한 호기심을 증폭시킵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섹스는 남자와 여성이 함께 하는 것인데, 남자 없이 두 여성이서 흥겹게 즐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레즈비언 섹스는 남성들에게 묘한 충격과 호기심을 안겨줍니다. "내가 없음에도 저렇게 잘 굴러라고 있다니."에 가깝습니다. 두 여성이 키스를 나누고, 서로의 신체를 탐색하며 더 나아가 묶고 때리는 성적인 표현들을 보고 있자면, 상당히 과감한 예술 작품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이 장면이 남성들에게 충격적이면서도 매혹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금지된 환상이 가장 클 것입니다. 여성은 늘 남성의 시선 안에서 욕망을 중심으로 존재해 왔습니다. 하지만 레즈비언 섹스는 두 여성이 남성 없이 스스로를 만족시키며, 대단히 자유롭고 뻔뻔하게 욕망을 드러내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마치 회식 때 상사가 빠졌는데 오히려 분위기가 더 좋아지는 걸 목격하게 된, 묘한 해방감에 가깝습니다.


이런 장면은 남성에게 일종의 신선한 판타지를 안겨줍니다. 남성 중심의 섹슈얼리티 세계가 그 순간만큼은 뒤집히는 것입니다. 마치 누군가가 세계지도의 납북을 바꿔놓은 것처럼 그 안에서는 규칙도 예상도 역할도 전부 새롭게 재정립됩니다.



심리적 해방감과 안도감


남성이 레즈비언 섹스를 보며 느끼는 감정은 단순 흥분에 그치지 않습니다. 이 안에는 안도감도 자리할 것입니다. 이 안도감은 매우 어릴 적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남성이 만나는 최초의 여성은 어머니입니다. 따뜻하고 친절한 모습을 넘어, 섹스는 절대 할 것 같지 않은 그런 이미지입니다. 이 무성적이고 숭고한 여성상은 남성의 마음속에 깊은 뿌리를 내리며 자라납니다. 그렇게 남성에게 여성이라는 존재는 순결하고 조심스러우며, 늘 뺨을 붉히며 웃어야 한다는 이상적인 도식이 생깁니다. (물론 때로는 얼굴을 붉히며 몽둥이를 휘두르기도 하지만.)


하지만 여기서 사춘기와 함께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몸은 갑자기 폭풍처럼 반응하기 시작하고, 텔레비전에서 바나나만 보아도 묘하게 긴장되고 떨립니다. 그럼에도 순수한 사춘기 청년은 "여성에게는 그런 욕망이 없을 거야."라는 생각을 품고 있습니다. 그 순간 마음속 깊은 곳에는 죄책감이 피어나기 시작합니다. 이 죄책감은 "왜 나만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걸까? 나 .. 어쩌면 .. 변태 싸이코패스일지도..?" 같은 자기 비하의 늪으로 인도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레즈비언 섹스를 보는 순간 자기비하의 늪은 한순간에 따스한 온천탕으로 바뀝니다. 왕성한 성욕은 남성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걸 몸소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레즈비언 섹스를 즐기는 여성들은 망설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누가 더 적극적인가 내기를 한 것처럼 묘한 생기발랄함. 남성의 존재 없이도 아니 어쩌면 남성 없이 더 잘 되는듯한 그 에너지를 뿜어냅니다. 여담이지만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의 비하인드 스토리도 이와 비슷할 것입니다. 선녀탕에서 목욕하는 선녀들은 서로의 등을 밀어주는 레즈비언 섹스를 즐기다, 한 명의 선녀는 나무꾼이 날개옷을 감춰놓은 탓에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고 잡히게 되는 것입니다.



무엇이 에로틱함을 구축하는가?


남성에게 레즈비언 섹스가 주는 매력은 무엇일까요? 이는 남성의 입장에서 여성이라는 신비로운 존재끼리 섹스하는 것 정도로만 보기 어렵습니다. 가장 큰 지점은 남성의 요구나 시선이 아닌, 그들끼리의 쾌락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내적 동기가 가장 큰 동력이라 볼 수 있습니다. 여성은 여성의 신체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남성보다 여성의 신체를 더 능숙하게 다루고 컨트롤할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더 나아가 남성이 참여하지 않음으로써 더욱 자유롭게 욕망을 펼쳐놓은 모습은 일종의 관음증적인 쾌감을 자극합니다. 내 손길이 닿지 않아도 오롯이 완성되는 섹스라는 점에 묘한 흥분의 원천이 되는 것입니다.


사실 남성이 레즈비언 섹스를 지켜보며 느끼는 흥분과 매혹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여성이 게이 섹스를 지켜보며 느끼는 흥분과 매혹과 유사할 수도 있습니다. 이는 단순 흥분되고 짜릿하기 때문에 소비되어야 한다는 걸 넘어, 다양한 욕망과 관계를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으로도 이어지게 됩니다.


아름다운 섹스가 되려면 궁극적으로 나와 타인을 존중하는 것부터 시작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게이 섹스는 보냐고요?

안 봐요.........;;;;;;;;;;;;;;;;;;;;;;;;;;;;;;;;;;;;;;;;;;;;;;;;;;;;;;;

이번 주 운동 했냐고요?

바뻐서 못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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