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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 페티시? 그게 먼데ㅠㅜㅠ

페티시? 사랑이라는 이름의 조미료

by 찡따맨


연인과 내밀한 대화를 할 때, 페티시를 꺼내는 건 편치 않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상대방의 눈이 반쯤 뒤집히며 "어머, 얘 간첩이잖아!?" 같은 표정을 지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음흉한 표정을 지으며 페티시 이야기를 하면, 다음 날 아침까지 "난 단지 발목에 관심이 있었을 뿐이야!" 라며 결백을 주장하게 될 것입니다. 다만 여기서 말하고 싶은 페티시는 때리고 맞는 그런 것도 아닙니다.


페티시란, 사랑이라는 만화경을 들여다봤을 때, 반짝이는 조각 하나 정도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페티시는 상당히 특이하지만 익숙한 것이기도 합니다. 마치 어렸을 때 본 동화책 속 한 장면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스트리아의 정신분석학자 리하르트 폰 크라프트에빙이라는 변태 선배님은 무려 230종의 페티시를 분류했습니다. 누군가는 "저 새키는 최소 230명의 변태를 만났구나.." 정도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페티시를 품고 있는 내가 우주 변태 사이코가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할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조금 더 풀어가자면, 제가 생각하는 페티시는 성적 성향에 색다른 풍미를 불어넣어 주는 조미료에 가깝습니다. 고추냉이처럼 콧속을 훅 찌르기도 하고, 어떤 사람에겐 "이건 비누맛이야 ㅠㅠ" 같은 반응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이외에도 고수, 유자 묘하게 갈리면서도 묘하게 빠져듭니다. 물론 조미료가 없어도 누구나 맛있게 식사를 할 수 있듯, 페티시 없어도 섹스는 가능합니다. 다만, 페티시가 있다면 그 섹스가 미쉐린 3 스타짜리 풀코스처럼 느껴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강조하자면 페티시는 고추장이 아닙니다. 다 때려 넣는다고 맛있어지는 게 아닙니다. 그냥 은은하게, 딱 그 사람만의 스타일로 살짝 뿌려주는 것입니다. "오 저 사람은 이런 취향이 있구나."라는 깨달음이 서로에 대한 이해와 사랑을 더 깊고 입체적으로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고로 페티시란 부끄러움이 아닌, 서로를 진정으로 이해해보려고 하는 작은 시발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게 없으면 섹스는 점점 지루해질 것입니다. 텔레비전 채널도 수백 개나 되는데, 섹스 또한 단일 채널일 필요가 없습니다.




그녀의 존재는 뭐랄까. 한겨울 밤, 입김 사이로 스쳐 지나가는 별빛 같았다. 다시 말해, 숨만 쉬어도 존재감이 드러나는 그런 존재. 눈길을 끄는 것은 단순 미모만이 아니었다. 세련된 칼날처럼 정제된 아름다움 속에 누군가의 마음을 쿡! 찌르는 묘한 여운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전생에 여우 또는 구미호였을지도..


그녀가 오늘 입은 짧은 검은 원피스는 벨벳 커튼처럼 우아했고, 그 사이로 드러난 어깨 라인은 섬세한 조각처럼 매끈하고 우아했다. 어깨에서 흐르듯 떨어지는 천은 바람이 스치면 살짝 흔들려, 그녀의 움직임 하나하나에 감정이 실린 것 같았다. 어쩌면 이 옷을 디자인한 사람이 그녀의 모습을 본다면 참으로 뿌듯해하겠지. 그리고 발목을 감싼 앵클부츠.


그녀는 조용히 고개를 기울이며 망상에 빠진 나를 바라보았다.

말 한마디 없이도 공간의 온도를 바꿔버리는 사람.


"뭐 해?"

그녀의 목소리는 바람이 얇은 커튼을 스치듯 낮고 부드러웠다. 끝음이 살짝 올라간 걸 보니 장난기와 다정함이 섞인 듯하면서도 어딘가 탐색하듯 조심스러웠다. 그녀는 나를 향해 몸을 살짝 기울이며 물었고, 그 움직임에는 군더더기 없이 자연스러웠다. 이런 자연스러움을 연출하려면 거울보고 표정 연습을 얼마나 해야 할까?


나는 말없이 그녀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 무심한 듯 답했다.

"아.. 너 오늘 정말 예쁘거든. 그래서 너의 자취방은 어떨까 망상해 봤지."


뜬금없는 내 말에 그녀는 눈썹을 살짝 추켜올렸고 입꼬리는 휘었다.

그 표정은 마치 '너도 여느 남자와 다를 게 없구나?'라고 속삭이는 듯한 표정이었다.

"내 자취방 가고 싶구나?"


그녀는 어깨를 가볍게 움질이며 되물었다. 시크한듯하면서도 입가엔 묘한 기대가 숨겨져 있는, 말은 차분한데 눈빛은 그보다 훨씬 앞서간. 마치 미래를 보고 온 사람처럼.


"응.. 너의 진짜 삶을 엿볼 수 있으니까?"


내 말이 끝나자, 그녀는 순간 눈을 가늘게 뜨며 가만히 노려봤다.

그 시선은 얼핏 무표정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장난기가 감춰져 있었다.

그녀의 눈썹이 조금 더 위로 올라가고, 입술은 말없이 움직였다가 멈췄다.


"그게 전부야?"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낮고 유연했지만, 어딘가 시험하는 기색이 있었다. 혹시 이 친구 아버님이나 어머님 중 한 분이 인사담당 임원이신가?

입술 끝은 지그시 다문 듯 미소 지었고, 한 손은 팔짱을 낀 채 팔뚝 위에서 느릿하게 손가락을 튕기고 있었다.


"음.. 꼭 그게 전부라고는 말할 수 없지."


내가 말을 더듬자, 그녀는 작은 숨을 들이마시고 고개를 돌렸다.

한쪽 입꼬리만 슬며시 올라가는 그 표정은 귀엽다는 말로는 부족했고,

딱 사람 마음 흔드는 표정에 가깝겠다.


"오늘 집이 많이 엉망인데.."

툭 던지듯 내뱉은 말 뒤로, 그녀는 가볍게 머리를 넘겼다.

찐따의 촉에 의하면 거절인 것처럼 보이지만, 눈빛은 ‘그래도 올 거지?’에 가까웠다.


"괜찮아. 내가 청소해 줄게."


그렇게 10분 정도 떠들었을까? 우리는 자취방으로 향했다. 자취방으로 향하는 골목은 좁고 조용했다.


"여기서 조금만 기다려. 집이 많이 어질러져있어서."

그녀는 복도가 울릴까 봐 목소리를 낮췄다.

귓가에 살짝 걸쳐놓은 속삭임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는 문을 열고 재빨리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문 앞에 남겨진 채, 복도의 센서등이 꺼질 대마다 조심스럽게 몸을 움직였다. 괜히 기척이라도 크게 내면 그녀가 민망해할 것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문을 활짝 열고 고개를 내밀더니 조용히 손짓했다.

"미안~ 오래 기다렸지?"


말끝엔 장난기 어린 미소가 얹혀 있었고,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보는 나에게로 작은 빛이 스며드는 느낌이었다


"아니, 망상이 재미있어서 지루하지 않았어."


"진짜 바보 같아, 너"


내가 현관에 들어서며 신발을 벗을 때 즈음,

그녀는 욕실로 향하던 걸음을 멈추고

몸을 살짝 틀어 나를 바라보았다.

어깨너머로 고개를 돌린 그 모습은 무심한 듯하지만,

나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럼 나 먼저 씻을게? 기다려."

그녀는 조용히 말하고는, 다시 욕실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지만 어디선가 튀어나온 작은 떨림이 살짝 걸려있었다.


"갑자기? 그래그래. 나는 1시간도 기다릴 수 있어."


내 말에 그녀는 멈칫, 아주 미세하게 미소 지었다.

그 미소는 입꼬리가 아니라 눈에서부터 번져 나오는 것이었고,

욕실로 향하는 걸음에는 가볍지만 확실한 안심이 섞여 있었다.


욕실 문이 닫히고, 샤워기의 물소리가 시작되자 방 안엔 정적이 찾아왔다. 나는 그녀가 편히 씻도록 하기 위해 음악을 크게 틀어놓은 상태로 그녀의 집안을 조용히 살피기 시작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그녀에게 선물하기 위해서는 그녀의 신체 사이즈부터 취향 그리고 무엇이 없는지 정도는 알아야 했기 때문이다. 일단 옷장에서 그녀의 상의, 하의 사이즈를 모두 뒤적이며 메모하기 시작했다. 묘하게 재미있네.. 나 전생에 도둑놈이었을지도? 나쁜 도둑놈은 아니고 착한 도둑 홍길동이나 임꺽정 정도?


그녀의 신발장은 의외로 소박했다. 운동화 두 켤레, 굽이 닳은 로퍼, 계절이 지나 먼지가 앉은 부츠 그리고 그 사이로 유난히 눈에 띄는 하나, 새빨간 스틸레토 하이힐이 발견됐다.

내가 하이힐을 조심스럽게 집어 들며 사이즈를 살필 때 즈음, 욕실 문이 스르륵 열렸다.


"어!? 도둑이다!!"

그녀는 문틈 사이로 나를 발견하고는 장난스럽게 외쳤다. 눈은 웃고 있었고, 입꼬리는 금세 올라갔다.


"아. 응. 신발장 구경 중이었어. 근데... 구두가 이거 하나뿐이네?"


그녀는 몸만 가볍게 씻었는지, 화장도 머리도 변함이 없었다.

촉촉한 피부 위로 얇은 티셔츠가 부드럽게 감겨 있었고, 살짝 내려 입은 트레이닝팬츠는 무심한 듯 편안해 보였다. 그녀는 수건 한 장을 들고 팔뚝을 조심스럽게 문지르며 내 쪽으로 다가왔다.


"옛날에 기분 내고 싶을 때 샀던 거야. 근데 잘 안 신게 되더라."


"응. 근데 이거 너랑 어울릴 거 같아. 한 번 신어봐."


"갑자기?"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지만, 나의 진지한 표정에 결국 피식 웃으며 구두를 받아 신었다.

새빨간 하이힐을 신고 중심을 잡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연극 무대 위 막간에 올라선 배우처럼 낯설고도 눈부셨다. 티셔츠 아래로 뻗은 다리는 자연스럽게 곧아졌고, 균형을 잡기 위해 들린 어깨와 손끝은 평소보다 더 섬세하고 아름다웠다.


"미쳤네??"

나는 조심스럽게 말한 다음, 말을 이어나갔다.

"나 해보고 싶은 거 생겼어."


"뭔데?"

그녀는 구두 굽 소리와 함께 자세를 바로 잡은 뒤 나를 바라봤다.


"아까 그 원피스 다시 입어줄 수 있어?"


내 말에 그녀는 두 눈을 가늘게 뜨며 나를 바라봤다.


"왜??"


"지금 이 장면을 오래 담고 싶어서. 지금 이 순간이 뭔가 영화 같거든."


그녀는 아무 말 없이, 하이힐을 벗은 뒤, 방으로 들어가 벗어두었던 원피스를 갈아입고 다시 돌아와 하이힐을 신었다.


"됐어?"


"아니, 우리는 지금 여기에 있으면 안 될 것 같아."


나는 찐따답지 진중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또 뭔 소리야?"


"모텔로 가야 해."


"굳이? 여기서 하면 되잖아."

그녀는 당황보다 웃음이 앞선 반응을 보였다.


"아냐. 구두 신은 상태로 하면 층간소음이 발생해. 나는 네가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좋은 시선을 받았으면 좋겠어."


그녀는 한동안 말이 없더니, 눈매가 접히도록 웃었다.

그 미소에는 말 없는 동의가 섞여 있었다.

이번 멘트.. 괜찮았나???


아~ 이제 모텔로 가면 뭘 하지?

아니 뭘 하든 일단 하나는 확실하다.

하이힐은 벗기지 말아야 한다는 것!!


나는 조심스럽게 그녀의 손등을 잡고 문 밖을 나섰다.

그녀가 움찔할 줄 알았는데, 손을 빼지 않았다.

따뜻한 온기에 묘한 긴장감이 퍼졌다.


내가 앞장서 모텔 간판들을 두리번거릴 때,

그녀는 한두 걸음 뒤에서 떨어져 팔짱을 낀 채 천천히 따라오고 있었다.

그 발걸음엔 조급함이 없었고, 오히려 내가 뭘 그리 열심히 찾나 보겠다는 여유가 묻어 있었다.


순간, 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나에게 다가오더니 작게 한숨을 내쉰 뒤 툭 내뱉었다.


"넌 평소에는 진짜 따뜻하고 착한데, 가끔은 사이코 같아."


나는 그녀를 돌아보며 흐뭇하게 웃으며 답했다.


"뭐?? 가끔은 사윗감으로 최고라고?"


그녀는 두 눈을 감고 고개를 푹 떨구더니,

"미친.... 야 됐어! 빨리 가자."

하고는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그제야 걸음을 멈추고 그녀 쪽으로 몸을 돌렸다.

"미안 미안. 나 뭐 할까 생각하느라. 제대로 못 들었다"


그녀는 입꼬리에 걸린 웃음을 애써 누르며,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도대체 뭘 그렇게 하고 싶은 거야?"


그렇게 나는 눈치라는 단어를 집에 두고 온 것처럼,

그녀가 신은 하이힐이 나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떠들며 모텔로 향했다.




하이힐이 왜 섹시하냐?


남성들이 은밀하게 품고 있는 수많은 패티시 중 하나를 꼽자면 하이힐이 단골손님입니다. 요즘 여성들은 편안한 운동화를 즐겨 신지만, 이상하게도 영화나 광고에서 섹시한 여성을 묘사할 땐 늘 뾰족한 하이힐을 신겨 놓습니다. 마치 제작진 전원이 각선미의 각도를 암묵적으로 동의한 것처럼 말입니다.


물론 하이힐은 여성운동이 일어나면서 구박받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분들은 하이힐을 남성의 관음적 취향을 만족시키기 위한 족쇄로 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의사들은 하이힐을 신으면 발 건강에 문제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하였습니다. 그렇게 하이힐은 점차 패션계의 유배지로 밀려나게 됩니다.


하지만 하이힐은 나르시시즘의 산물에 가깝습니다. 여성들은 남자의 시선보다 자기 자신의 눈, 정확히 말하면 거울 속 자신을 더 의식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보기에 여자들의 진정한 연애 상대는 남자가 아니라 거울일 지도 모릅니다. 거울을 보며 "오늘 너 좀 예쁘네?" 이는 어느 길거리의 칭찬보다 더 짜릿하게 다가옵니다. 여기서 하이힐은 엉덩이를 들썩이게 하고, 배를 집어넣고, 허리를 곧게 펴서 무의식적으로 '지금 내가 얼마나 잘났는지'를 온몸으로 증명하도록 이끌어줍니다. 발가락을 포기하고 자신을 뽐내는 길을 택한 것입니다. 어쩌면 하이힐은 인류가 자발적으로 받아들인 가장 세련되고 아름다운 고통일 지도 모릅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살이 있었다면, 모나리자에게 하이힐을 신겨놓고 무언가를 그렸을 게 뻔합니다.


하이힐이라는 물건을 들여다보면 고문 도구에 가깝습니다. 발바닥과 인대를 조금씩 긁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움을 위해 불편함을 감내합니다. 생각해 보면 아름다움의 기원은 모두 불편함과 맥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전족, 서구의 하이힐, 숨 쉴 틈이 없는 하이힐, 무거운 가발, 잘못 떨어뜨리면 발등이 박살 낼 수 있는 보석 장신구들까지 모두 동일하게 외칩니다. "불편해도 예쁘니까!"


이처럼 하이힐은 미학의 극단에 있는 물건 중 하나입니다. 완벽한 비례와 절묘한 각도, "내 발이 꺾여도 아름다울 수 있어."라는 불굴의 미적 정신이 깃들어 있습니다. 물론 그녀의 뼈와 인대는 비명을 지르고 있겠지만, 하이힐은 신은 모습만큼은 그 누구보다 빛나고 아름다울 수밖에 없습니다. 하이힐은 걷는 게 아니라, 연출하는 것이며 그냥 멋있는 게 아니라 움직이는 예술에 가깝습니다.



페티시란, 사랑이 묻는 질문


프로이트는 꿈을 무의식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페티시는 무의식이라는 방 안에서 고유한 향기를 풍기고 있는 무엇으로 볼 수 있습니다. 몇몇 사람들이 특정 이미지에 묘하게 끌리는 것도 이런 무의식의 흐름으로 이해해 볼 수 있습니다. 광고 속 다소 과장된 발목 곡선에 시선을 빼앗기는 이유, 유리로 만든 향수병 또는 너무 섬세하게 묘사된 리본 장식에 잠깐 멈칫하게 되는 이유는 뇌가 아직 특정 단어로 번역하지 못한 무언가로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페티시란 무의식 내에서 아주 은밀하면서도 세련된 형태로 개개인의 미학을 조율한 것입니다.


누군가는 페티시를 묘한 취향 정도로 바라봅니다. 하지만 이는 사랑과 연결된 은밀한 기호로 볼 수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나는 이런 걸 좋아해."라고 말할 때, 알몸보다 더 깊은 나를 드러내게 됩니다. 이 고백은 표면보다 훨씬 더 깊고 복잡하며, 그 자체로 일종의 무의식적 자서전에 가깝습니다. 물론 그 자서전에는 내가 어떻게, 누구로부터 배웠는지, 어떤 형태의 감촉과 시선이 이런 사람으로 만들었는지 담겨있습니다. 물론 자서전의 각 페이지들은 번역할 수 없는 언어로 도배되어 있다는 게 함정이지만 말입니다.


다시 하이힐로 돌아가자면, 하이힐은 단순히 키를 높이고 다리를 길어 보이게 만드는 도구로만 볼 수 없습니다. 이는 정체된 상징에 가깝습니다. 한편으로는 절도 있는 권력의 기호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감당하고 버텨야 하는 피로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이힐을 신은 몸은 척추를 인위적으로 휘게 만들고, 시선을 특정 방향으로 유도합니다. 그렇게 사람들은 무심코 그 곡선에 끌리고, 어쩌면 자신조차 의식하지 못한 감정을 그 실루엣에 투사하게 됩니다. 실바도르 달리와 부뉴엘이 꿈의 상징을 미디어에 심어놓았듯이, 개개인 또한 도시의 풍경, 일상의 포즈, 페티시를 조용히 배치한 하고 있습니다.


페티시는 부끄러운 취향이 아닌, 내가 타인과 맺는 관계 속에서 자신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법을 배워가는 하나의 방식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어떤 일탈도 아니며, 나만의 고요한 진실에서 비롯된 감각에 가깝습니다. 어떤 인은 이를 숨기려 하지만, 페티시는 외로움을 견디는 하나의 언어이자, 공감이라는 불가능해 보이는 다리를 놓으려는 섬세하지만 불안정한 징검다리이기도 합니다.


페티시를 드러낸다는 건 단순 취향의 고백으로만 볼 수 없습니다. 가장 여린 조각,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욕망의 형상을 누군가 앞에 내어놓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해줄 수 있어!?!?!"라는 질문은 어떤 행동을 요청하는 문장이 아닙니다. "나를 이런 방식으로도 사랑해 줄 수 있어?"라는 본질적인 물음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을 던지는 순간은 알몸으로 드러낸 것보다 더 적나라하게, 벌거벗은 채로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됩니다. 이러한 진실됨은 두려움이 아닌, 사랑을 통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용기 있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누군가에게 나의 기묘하고도 소중한 취향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이 나의 표면이 아니라 심연을 마주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적 취향이나 페티시에 대해 죄의식을 갖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이는 육체의 욕망을 드러내는 게 아닌, 내면에 살아 숨 쉬고 있는 수많은 나를 드러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섹스를 통해 몸을 나누지만 동시에 말로는 도달할 수 없는 무언가를 나누기도 합니다. 오르가슴은 육체적 쾌락이란 정점으로 볼 수 있지만 어쩌면 그보다 더 깊은 내면에서 시작된 공명일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는 손가락 사이의 레이스, 누군가는 특정 향기, 누군가는 귓불의 체온에 심장이 두근거립니다. 이는 단순 자극이 아닌, 기억과 욕망 그리고 상상이 엉킨 복합적인 내면의 반응입니다. 이 감각을 변태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이는 오히려 사랑이 우리에게 허락한 가장 은유적인 어 어니면서, '나는 너를 조금 더 특별하게 보고 있어.'라고 말하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고로 페티시는 사랑의 가장 다정한 질문 정도로 봐야 합니다. "나에게 네 욕망을 맡겨도 될까?" 또는 "너에게 내 욕망을 맡겨도 될까?"라는 침묵 속에서 보내는 눈빛, 그리고 이 눈빛이 부끄럽지 않고 자유롭게, 경계 없이 오갈 수 있을 때에야, 섹스는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서로를 마주할 수 있는 아름다운 순간이 될 것입니다. 살과 살이 닿는 걸 넘어, 감춰졌던 자아의 무늬들이 서로의 체온에 스며드는 순간인 것입니다. 그때서야 비로소 사랑이란 무엇인지 섹스란 무엇인지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내일 목표

바람 많이 불어도 운동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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