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앞에 있는 그는 미소를 짓고 있다. 하지만 그 웃음 속에는 내가 없다. 나를 향한 듯 보였던 온기가, 사실은 어디에도 머무르지 않았다는 것을 나는 그의 침묵에서 알아버렸다. 상처는 소리를 내야 생기는 줄 알았는데, 말없이 미끄러지는 거리감이 더 오래 남았다. 다정했던 기억들을 다시 더듬으며, 진심이어서 아팠던 부분만 또렷해졌다.
마음은 아프다고 말하지 못할 때 더 깊게 다친다. 평온한 척 접어둔 하루의 틈에서 감정은 조용히 새고 있었다. 혼자 마음을 오래 쥐고 있었던 것 같아, 어느 순간 나는 뒤처진 사람이 된 기분이 들었다. 말하지 않아도 전해질 줄 알았던 감정은, 결국 말하지 않으면 전해지지 않는다는 사실만 남겼다. 그렇게 괜찮다고 넘긴 마음들은 천천히 부풀었고, 예민해 보이기 싫어 눌러두었던 감정은 아무렇지 않은 표정 안에서 조금씩 굳어갔다.
그러다 불쑥, 말끝처럼 서운함이 튀어나온다. 나는 마음을 건넸고, 그 마음이 아무 말 없이도 닿기를 바랐다. 손 내밀지 않은 사람에게 알아서 다가오길 기대하는 마음은, 돌아보면 바람이 아니라 통제였다. 애정보다도, 누군가를 통해 내 존재를 확인받고 싶은 마음. 그래서 실망은 그 사람 때문이 아니라, 내 안에서 만들어둔 기대가 무너진 데서 시작되었다.
나는 바라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바라고 있었다. 괜찮다고 했지만, 실망했다. 그 사람이 나빴던 게 아니라, 나는 나를 잘 몰랐던 것뿐이었다. 감정을 쏟으면서도, 나는 어떤 마음으로 그 관계 안에 있었는지 모르고 있었다. 서운함은 때로 상대를 멀어지게 하지만, 그보다 더 자주 나를 나에게서 멀어지게 한다. 내가 내 감정을 감당하지 못할 때, 나는 가장 먼저 나를 뒤로 미뤘다.
감정이 오르는 대로 말하고, 서운한 대로 움직이면 가장 괴로운 건 그 마음을 품은 나 자신이다. 그리고 서운함이 상대가 준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낸 마음이라는 것을 서서히 알게 된다. 그래서 나에게 묻는다. 관계를 지키고 싶은 건지, 단지 외롭지 않으려는 건지. 묻고 나면 마음은 느려지고, 그 느린 마음이 나를 덜 다치게 한다. 다정함이 돌아오지 않아도 내가 틀린 것은 아니며, 돌아오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무너질 이유도 없다.
무언가를 말하기 직전, 아주 잠깐 멈추는 습관이 생겼다. 감정에 기대어 누군가를 성급히 단정하지 않기 위해서, 나 자신에게 너무 빠르게 실망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결국 나를 가장 아프게 한 것은 그의 무심함이 아니라, 그 안에서조차 나를 돌보지 못한 나의 무심함이었기 때문이다. 서운함 뒤에 숨은 진짜 마음은 종종 나 자신을 향한 실망이었다. 그렇게 한 걸음 늦춘 마음이 나를 덜 상하게 한다.
손바닥에 식은 휴대폰을 들어 올린다. 검은 화면 속 내 얼굴이 잠깐 비쳤다가, 알림 하나 없는 빛이 번진다. 별일 아니라고 넘기지만, 마음은 이미 두 번의 기대와 두 번의 낙차를 겪었다. 혹시 너도 그런 적 있을까, 알림이 올 것 같은 기분에 화면을 켜는 순간. 짧은 설렘이 금세 허탈로 뒤집힐 때, 아무 일도 없었는데 마음이 이렇게 출렁인다는 게 여전히 신기하다.
오래전, 인간이 자연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내일을 미리 짐작해야 했다. 비가 올지, 사냥감이 어디로 갈지, 덤불 속 발소리가 짐승인지 바람인지, 모든 걸 미리 그려야 목숨을 지킬 수 있었다. 뇌는 ‘예측하는 능력’을 발달시켰고, 지금도 무언가를 바라볼 때 그다음 장면을 자동으로 완성한다. 그러나 그림이 어긋나는 순간, 작은 흔들림도 ‘위험 신호’처럼 받아들인다. 단순한 일정 변경이 의도적인 거리감처럼 느껴지고, 바람 소리조차 더 차갑게 스친다.
뇌는 단순한 변화를 ‘거절’로 꾸며내고, 나는 그 속에서 혼자 서운해진다. 모든 감정이 진실은 아니고, 모든 진실이 감정처럼 선명하지도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마음이 만든 허구와 현실의 신호를 한 번 더 구분할 때, 허구를 조용히 내려놓을 수 있다.
그 사실을 알아도 마음은 여전히 움직인다. 기대는 습관처럼 따라오고, 알 수 없는 하루 앞에서 불안은 여전히 찾아온다. 그래서 나는 요즘 ‘기대하지 말자’가 아니라, ‘예상은 하되, 기대는 느슨하게’ 연습한다. 마음이 먼저 결론을 내린 순간을 알아채고, 4초 들이마시고 6초 내쉬며 잠시 숨을 고른다. 같은 상황에도 말을 조금 바꾸고, 결과보다 지금 할 수 있는 일로 하루를 채운다.
살다 보면 계획은 어김없이 틀어진다. 틀어짐이 꼭 나쁜 것은 아니다. 내가 그린 그림과 다른 길이 때로는 선물이 된다. 문제는 그 길을 마주하기 전에 이미 실망할 준비부터 해버린다는 점이다. 화면을 켤 때마다 비치는 내 얼굴처럼, 오늘의 해석도 내 마음이 비춘 빛이었다. 연락이 늦으면 “오늘은 피곤했구나.”, 계획이 바뀌면 “이 길도 길이구나.” 하고 생각한다. 예측은 내일을 준비시키지만, 집착은 오늘을 흔든다. 그래서 나는 기대를 조금 놓고, 숨을 조금 더 쉬며, 살아가려 한다. 생존에서 비롯한 예측의 기술을, 이제는 삶을 누그러뜨리는 기술로 바꾸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