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 주 금요일, 오랜만에 외할머니께서
병원 외박을 나오시게 됐다.
몇 달만의 외박인지라 할머니께서는
매우 좋아하시고 기대하셨었다.
할머니께서 집에 오시는 날이면
이모, 삼촌, 사촌 동생들 까지
오랜만에 볼 수 있는 기회라 반가웠다.
나는 금요일에 할머니를 뵈러 가지 못하고
토요일 이른 아침부터 오후까지 봉사 활동을 한 후
택시를 타고 할머니 집으로 향했다.
“오메, 왔는가?” 하며
반기는 포근한 목소리.
할머니는 나를 보고 무척 반가워하셨었다.
요양 병원에 방문을 하려면
미리 예약을 해야 하고
더군다나 이번 여름 방학에는 사회복지 기관에서
실습을 하고 있었기에 따로 찾아 뵐 시간이 되지 않았다.
“할머니, 못 본 사이에 저번 보다 살이 더 빠졌어.”
너무나 놀랄 정도로 앙상하게 변해버린 얼굴.
미리 와있는 동생과 사촌들
그리고 이모도 계셨었다.
함께 밥을 먹으며 바라본 할머니의 얼굴은
지금 돌이켜 보아도 예전 모습을 찾기 힘들어졌다.
7년 전, 중학교 2학년 시절
학교 가는 아침, 현관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릴 때
할머니께서 아침 식사를 하시러 자주 오셨었다.
문뜩 엄마께서 할머니를 보시고는
“엄마는 참 머리랑 얼굴에서 광이 나네잉.” (사투리)
그런 할머니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백발의 머리와, 깊게 파인 얼굴 주름만 남았다.
나에게는 8살 터울의 남동생이 있다.
이제 중학교 1학년이 되어 사춘기로 무뚝뚝한데
할머니께서는 아직까지도 동생을 애기처럼 생각하신다.
주고받는 전화에서도 잘 알 수가 있는데
“OO, 사랑해~“
동생은 부끄럽고 창피한 마음에
”할머니, 나는 이런 거 잘못한다니까. “
”아따, 좀 한번 해주소.“
”사랑해. “
이번에도 그랬다.
할머니께서는 동생에게 전화도 잘 안 받고
서운한 마음을 이야기하셨다.
나 또한 전화를 잘 받아야 하지만 그러지 못해
죄송스럽기도 하다.
인간이 참 간사하고 이기적인 것이
심화되는 걱정의 그래프가 꺾일 때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
“할머니, 나도 학원 다니느라 바빠.”
나지막이 내뱉은 동생의 한마디.
그런 할머니께서는
어찌, 사람들이 나를 마다 하는지 모르겠다라며
이번 외박에서 서운함을 많이 토로하셨었다.
그 말을 듣고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6년이라는 시간 동안 가장 깊게 느껴진 건
외할머니께서 나와 동생에게
더 많은 정과 사랑을 주신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가끔, 이뤄질 수 없는 허망한 꿈을 꾼다.
할머니가 건강한 모습으로 날 반기는 꿈을.
그러다 깨어나면
두 눈에선 멈출 수 없는 눈물이 흐른다.
엄마께서 그러셨다.
할머니의 이번 외박은 생각하기에도
가장 외로운 시간이었다고.
할머니 집을 가도
각자 할 일을 하고 있으니
누구 하나, 관심 있게 보는 것이 아니기에
그리 느껴지지도 않는다.
어느 날, 보고픈 할머니의 얼굴을
볼 수 있는 날이 사라진다면
그땐 얼마나, 더 많은 눈물을 흘릴지
상상 조차 되지 않는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아 끙끙 앓는다 생각하지 말고
나 또한 다른 이에게 아픔을 주고 있는 것은 아닐지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