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1평짜리 로맨스 연구소
세상에는 다양한 맛을 가진 수백 가지의 식재료들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런 식재료들을 더욱 맛있게 먹기 위한 수천 가지의 레시피들이 존재하죠. 아마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은 마음속에 '맛보장 필승 레시피' 하나쯤 품고 있으시리라 생각합니다.
이번에 저는 사랑보다 더 사랑 같은, 순정만화를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레시피를 연구해 보았습니다. 평소에 제가 자주 다뤄보던 식재료가 아닌 터라 약간 어색하더군요! 그래도 나름 제 마음속 '맛보장 필승 레시피'로 품어져 있으니 기대해 보셔도 좋을 듯합니다.
본격적인 레시피 연구는 다양한 순정만화들이 비치되어 있는 집 근처 만화카페에서 이루어졌습니다. 1시간당 1평 남짓한 동굴방을 빌리는 비용은 3600원. 이 정도면 나름 합리적인 가격의 연구실이라 생각합니다.
맛있는 요리의 8할은 신선한 식재료 선택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생각보다 더 다양한 순정만화들이 저를 고민에 빠지게 만들었지만, 저는 저만의 식재료 선택 기준에 따라 신중하게 오늘 읽을 순정만화를 선택했습니다.
순정만화를 고르는 방법은 꽤나 간단합니다. '두 가지' 기준에만 적합한다면 당장 이 귀여운 식재료들을 연구실로 데려와 깨물어 맛보아도 좋습니다.
1. 시리즈 완결이 난 순정만화인가?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순정만화 속 사랑은 1) 평범한 일상 -> 2) 사랑에 빠지는 WOW POINT -> 3) 달달한 일상 -> 4) 위기 -> 5) 극복 -> 6) 더욱 굳건해진 사랑. 이렇게 여섯 가지의 단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달콤한 듯싶으면 언제 그랬다는 듯이 짭짤해지고, 짭짤해진 듯싶으면 달콤해져서 정신을 못 차리게 만드는 것이 바로 순정만화 속 '사랑의 묘미'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이렇게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는 사랑의 전개에서 흐름이 끊긴다면? 다음 권을 기다려서 읽어야 한다면? 단짠매력인 '사랑의 묘미'를 느껴 정신을 못 차리는 것이 아니라, 궁금하고 화가 나서 정신을 못 차리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순정만화 맛있게 먹기의 대실패 레시피가 되는 것이죠.
그렇기에 명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시리즈 완결이 난 순정만화만이 진정한 '사랑의 묘미'를 선사한다는 진리를요.
2. 내가 선호하는 로맨스 장르인가?
좋은 식재료를 고르는 가장 빠른 방법은 영양 성분표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나에게 필요한 성분이 얼마나 들어있는 식재료인가를 판별할 수 있는 자, 영양가 있게 누려라!
순정만화도 동일한 개념이 적용된다고 볼 수 있죠. 보통 순정만화는 여러 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앞표지 혹은 뒷 표지에 해당 편의 내용을 3-4줄로 간략하게 정리해 둔 감질맛 나는 예고편이 적혀 있습니다. 우리는 그 예고편을 주의 깊게 보아야 합니다. 이를 참고하여 해당 만화가 어떠한 로맨스를 전개할 것인지, 어떤 서사를 가진 작품인지 대략적으로 확인해 볼 수 있죠.
나에게 지금 필요한 것이 나쁜 남자 로맨스인가, 첫사랑 로맨스인가, 금지된 사랑 로맨스인가, 소꿉친구 로맨스인가, 위험천만한 로맨스인가 등등 깊이 고민해 보신 뒤, 해당 영양소가 들어있는 순정만화를 고르시면 성공입니다.
저는 '소꿉친구 로맨스 80g'에 '나쁜 남자 로맨스 20g'이 들어있는 100점짜리 순정만화를 골라 연구실로 돌아왔습니다. 총 10권으로 이미 완결되어 있으며 1번과 2번 조건을 충족시키는 아주 완벽하고도 싱싱한 식재료임에 틀림이 없었습니다.
제가 고른 순정만화도 다른 보통의 순정만화들과 동일하게 1) 평범한 일상 -> 2) 사랑에 빠지는 WOW POINT -> 3) 달달한 일상 -> 4) 위기 -> 5) 극복 -> 6) 더욱 굳건해진 사랑. 이 여섯 가지의 순서에 따라 전개되며, 서서히 저를 매료시켰습니다.
'1) 평범한 일상'에서는 주인공들의 엉뚱한 매력에 킥킥거리며 웃기도 했고, '2) 사랑에 빠지는 WOW POINT'에서는 생각보다 더 오글거리고 뭔가 설레는 마음에 발을 동동 구르기도 했죠. 그리고 '3) 달달한 일상'을 읽을 즈음에는 슬슬 불안감이 엄습해 오더군요! 이렇게 달달하게 일상을 보내고 있는 주인공들 앞에는 '4) 위기'가 찾아오는 법이니까요.
'4) 위기'는 사랑의 한 면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4) 위기'를 잘 읽어내는 방법을 설명해 드리죠. 바로 만화카페 매점에서 '허니버터 감자튀김을 시키는 방법'입니다. 이때 중요한 점이 있다면, '3) 달달한 일상'이 끝나갈 때 즈음 '4) 위기'가 시작되기 전에 음식을 시켜야 한다는 점입니다. 사랑의 위기는 언제 우리를 덮칠지 모르는 것이니 이를 이겨낼 무기를 미리 준비해 두는 셈이지요.
이 약간 불건강한 감자로 '4) 위기'와 '5) 극복'과도 같은 보릿고개를 넘겨냈다면, 이제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6) 더욱 굳건해진 사랑' 뿐이겠지요.
감자튀김 부스러기들을 주워 먹으며 '6) 더욱 굳건해진 사랑'까지 읽고 나면 마음이과 배가 꽉 찬 기분이 듭니다. 주인공들의 벅찬 러브 스토리와, 든든한 식량이 나의 몸속으로 들어와서 일까요?
마지막 편의 책장을 덮으며, 나에게도 이런 사랑을 함께할 사람이 있긴 할까? 생각에 잠겨봅니다. 만나야 할 사람은 꼭 만나게 된다는 빨간 실 인연설을 되새겨보며, 아마 미래의 나의 인연인 사람이 나에게 달려오기 위해 부단이 노력하고 있겠노라 막연한 생각에 잠겨봅니다. 열심히 노력해서 꼭 나에게 오시길, 조금이라도 늦으면 응징하겠다는 다소 괴팍한 마음까지 먹으며 사용한 연구실을 정리했습니다.
저의 순정만화를 맛있게 먹는, '필승 맛보장 레시피'가 어떠셨나요?
좋은 레시피를 보면 '에이... 맛있는 것들만 잔뜩 때려 넣었는데 어떻게 안 맛있어. 이러면 정말 사기지~' 소리가 나오며 침을 꿀꺽 삼키게 되듯이, 제 레시피도 여러분들께 그렇게 다가갔으면 하는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