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레시피」 쓸데없지만 쓸모 있는 - 18
전, 한국 야쿠르트만 먹어요.
나에겐 유행어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PPL이 있을 리가 만무하고, 그저 나의 취향에 대한 이야기다.
한 번에 먹는 양이 그리 많지 않은 편인 나는, 맛없게 배부른 상황을 좋아하지 않는다.
많이 먹지도 않는데 기왕이면 맛있는 걸 먹자는 주의다.
물론 조금씩 자주 먹으니 총량이 작은 건 아니다. 3X3=6이나 1X6=6이나 결괏값은 같으니까.
게다가 유감스럽게도 못 먹는 음식, 안 먹는 음식이 많은 편이다.
그래서 정중하게 나의 취향을 고백하며 음식을 거절하는 일이 좀 있다.
그런 마인드가 의외였는지, 오래 전의 나의 발언은 아직도 동네에서 가끔씩 회자되곤 한다.
"전, 한국 야쿠르트만 먹어요."
재미있는 건, 나의 이 발언 이후로 자신의 취향을 공개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전, OOO만 먹어요."
더불어 사는 세상에서 일일이 개인적인 취향을 다 드러낼 수는 없지만,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상황이 아니라면 편안하게 자신을 오픈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이런 나만의 취향이 모여 결국 나의 이야기가 된다.
우리는 매일매일 나만의 이야기를 써내려 가고 있는 것이다.
니체의 말처럼 우리는 하나의 섬이 아니라 각자가 하나의 섬입니다.
섬들마다 다른 풍경으로 아름답고
그 환경에서 잘 자라는 꽃과 새들이 있듯이
우리의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방식도 다양하고 저마다 고유합니다.
<문학, 내 마음의 무늬 읽기> 중에서
나는 까다로운 나를 인정한다. 나는 편식하는 나를 존중한다. 나는 예민한 나의 모습이 좋다.
둥글둥글한 나였어도 좋았을 것이고, 네모네모한 나였어도 사랑했을 것이다.
하지만 세모세모한 나로 태어났으니, 지금 이 모습이 가장 매력 있고 가장 나다운 것이라 생각한다.
이게 나의 이야기다.
그리고
다들 자신이 자신에게 '특별한 사람'이기를 나는 바란다.
그런 삶을 응원한다. 그런 의미로 내가 좋아하는 소설의 한 구절을 전하고 싶다.
상당히 평범한 이 구절이 나는 너무나 매력적으로 읽힌다.
지금은 잃어버린 내 초상화를 기억한다.
A4 스케치북에 연필로 그린 그림이었다.
나는 칠 년 동안 끼고 다닌 내 치아 교정기를 좋아한 적이 안 한 번도 없었지만
그 그림 속에서
앞니를 드러내고 웃고 있는 나는 싫지 않았다.
서빈은 내 교정기를 없애지도 간략화하지도 않았다.
내 주근깨도, 다듬지 않은 눈썹도, 구불거리는 긴 머리도 있는 그대로 똑바로 그려 넣었다.
그 그림 속의 나는, 영민해 보이거나 아름다워 보이지는 않았으나 특별해 보였다.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는 사람, 언제나 쓰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윤이형 <작은마음동호회> 중에서
나는 화한 느낌의 사탕을 좋아한다.
어쩌다 보니 요즘 즐겨 먹고 있는 사탕의 케이스가 제법 쌓였다.
문득, 이걸로도 나만의 이야기가 되겠다 싶어 재활용 쓰레기통으로 보내기 전 기념촬영을 해봤다.
H-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