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을 뛰어넘는 열정적 끈기의 힘
재능을 이기는 그릿의 힘
‘도파밍(Dopa-ming)’이라는 단어가 최근 신조어로 등장했다. 즐거움을 담당하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Dopamine)'과 게임 속 아이템을 반복적으로 수집하는 행위인 '파밍(Farming)'의 합성어로, 짧고 자극적인 만족과 보상을 지속적으로 추구하는 젊은 세대의 경향을 설명한다. 빠른 영상 콘텐츠, 짧은 자극으로 채워진 SNS 피드, 간단히 보상을 얻을 수 있는 게임 등이 바로 도파밍 현상의 전형적 사례다. 문제는 도파민이 과도하게 분비되면 뇌가 지속적으로 강한 자극을 찾게 되어, 장기적으로 의미 있는 목표를 추구하는 능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결국, 반복적인 즉각적 보상이 가져오는 내성 효과는 우리 사회 전반에서 장기적이고 깊이 있는 ‘노력’이라는 가치를 손상시킬 수 있다.
사실 노력이라는 개념에 대한 이런 혼란은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다. 2015년 즈음 등장한 ‘수저론’이나, 2016년의 ‘노오력’ 담론은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삶을 바꾸기 어렵다는 냉소적인 인식을 사회 전반에 확산시켰다. 이런 상황에서 젊은 세대는 점차 노력 자체를 불신하거나, 아니면 즉각적인 보상만을 찾는 왜곡된 노력에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릿(Grit)'의 저자인 더크워스는 작금의 현상에 정면으로 반박한다. 그녀는 성공과 성취가 단순히 재능이나 환경 같은 선천적 조건에 달려있지 않다고 강조하면서, 성취에 대해 다음과 같은 공식으로 정의했다.
재능 × 노력 = 기술
기술 × 노력 = 성취
성취 = 재능 × 노력^2
여기에서 재능이나 환경적 요소는 출발선일 뿐이다. 실제 성과는 꾸준하고 반복적인 노력의 누적인 그릿에서 나온다. 그릿은 즉각적인 만족 대신, 장기적인 목표와 의미를 향해 오랜 기간 지속하는 열정과 끈기의 힘이다.
도파밍과 같은 자극적 보상만 추구하는 문화 속에서 우리가 진정으로 되살려야 할 가치는 바로 이 그릿이다. 재능이나 조건의 한계를 뛰어넘어 성취를 만드는 힘은 바로 짧은 순간이 아닌 긴 시간에 걸쳐 반복되는 끈기와 열정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놓치고 있는 노력의 진정한 의미는, 재능이나 태어난 환경이라는 한계를 넘어서는 열정적인 끈기, 바로 그릿에 있다.
그릿은 타고나는가, 만들어지는가
흔히 사람들은 성격이나 끈기 같은 특성이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심리학자들은 이러한 특성들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하고 성장한다고 설명한다. 이 현상을 심리학에서는 ‘성숙의 원리(Maturity Principle)’ 라고 부른다. 성숙의 원리란, 나이가 들수록 책임감, 인내심, 성실성과 같은 성격 특성들이 점진적으로 발달한다는 과학적 이론이다. 캘리포니아 대학의 심리학자 브렌트 로버츠(Brent Roberts)는 성격 특성에 대한 광범위한 연구를 통해 사람의 성격이 20대 초반부터 점진적으로 성숙해져 30대 이후 안정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특히 그 중에서도 책임감, 성실성, 자기 통제력과 같은 ‘그릿’의 핵심 특성이 성인이 되면서 지속적으로 증가했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더크워스는 인성 발달이 20대와 40대 사이에 주로 찾아오지만 인생에서 인성 발달이 멈추는 시기는 없다고 덧붙였다. 생물학적인 성장보다 더욱 주목할 것은 이러한 성격 발달이 인생 경험에 더욱 영향을 받는다는 점이다. 우리는 청소년기에 학교에서 집단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타인과 협력하는 법을 배우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책임감 있는 행동과 자기통제력을 습득하고 있다. 이처럼 사회적 역할과 책임이 많아질수록 우리의 성격은 더 성숙해지며, 결국 그릿이라는 장기적인 목표를 위한 끈기와 인내도 자연스럽게 강화된다.
그릿이 결코 타고나는 고정된 능력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얼마든지 키울 수 있는 능력이라는 사실은 누구든지 노력과 환경을 통해 그릿을 발전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선천적인 재능이나 성격의 한계에 갇혀 있을 이유가 없다. 다만, 모든 경험이 그릿을 키워주지는 않는다. 더크워스는 사람들이 어떤 일을 포기하면서 "지루해" 라든지 "나는 못 하겠으니 포기하는 게 좋겠어"같은 생각을 하는게 잘못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중요한 점은 인생에서 중요한 나침반이 되어주는 단 하나의 목표에서 만큼은 절대 타협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릿을 키우기 위해 어떤 경험을 해야할까? 더크워스는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다음의 네가지 가치를 제시한다.
관심: 당신이 하는 일을 진정으로 즐기는 마음
연습: 어제보다 잘하려고 매일 단련하는 종류의 끈기
목적: 자신의 일이 중요하다는 확신
희망: 위기에 대처하게 해주는 끈기
지금부터 이 속성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아보도록 하자.
열정과 의도적 연습
졸업식이나 시무식 같은 행사에서 흔히 듣는 말이 있다. 열정을 가지라는 말이다. 하지만 열정은 억지로 갖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열정은 자신이 하는 일에 흥미와 관심이 있을 때만 생겨난다. 흥미가 없는 일에는 열정이이 생겨날 수가 없다. 만약 목표에 열정이 생기지 않는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그 목표를 다시 설정하거나 새로운 관심사를 찾는 것이다. 현대 사회의 획일적인 커리큘럼 속에서 가장 필요한 건 자신이 진정으로 몰입할 수 있는 관심사를 발견할 수 있는 시간이 아닐까. 그렇다고 열정이 생겼다고 해서 성공까지 바로 이어질 수 있을까? 여기서 흔히 언급되는 '1만 시간의 법칙'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이 법칙은 ‘어떤 분야든 만 시간만 들이면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이론이다. 그러나 『1만 시간의 재발견』의 저자 안데르스 에릭슨과 로버트 풀은 이 법칙에 중요한 조건을 추가했다. 그들은 전문가가 되기 위해 중요한 건 단지 시간의 양이 아니라 연습의 질, 즉 ‘의식적인 연습(deliberate practice)’이라고 강조한다.
더크워스 역시 같은 견해를 제시한다. 의식적인 연습이란, 자신이 이미 잘하는 분야를 편하게 반복하는 게 아니라, 뚜렷한 약점을 발견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집중적이고 체계적인 노력을 의미한다. 의식적인 연습은 분명 쉽지 않다. 전문가들도 연습 과정에서 많은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는다. 하지만 더크워스는 다음의 네 가지 요소를 실천하면 누구나 의식적인 연습을 쉽게 시작할 수 있다고 제안한다.
명료하게 진술된 도전적 목표
완벽한 집중과 노력
즉각적이고 유용한 피드백
반성과 개선을 동반한 반복
이 네 가지에 더해 의시적인 연습에 의한 스트레스를 줄일 두 가지 방법도 있다. 하나는 연습을 '습관'으로 만드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연습 자체를 바라보는 태도를 바꾸는 것이다. 초보자부터 올림픽 메달리스트까지 가르친 세계적인 수영 코치 테리 로플린은, "자신의 부족함을 판단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스트레스와 부담 대신 성장의 순간을 있는 그대로 즐길 수 있다면, 의식적인 연습은 더 이상 고통이 아닌 삶의 일부가 될 것이다.
목적의식과 희망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말했다. 이 말은 인간의 행동이 본질적으로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의미와 목적을 찾는다는 뜻이다. 실제로 많은 심리학 연구가 우리가 자신보다 더 큰 목적을 위해 행동할 때, 즉 이타적인 목표를 설정할 때 더 강한 동기와 끈기를 갖게 된다고 밝혀냈다. 자신의 일이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믿음은 흔들리지 않는 목적의식을 만들어낸다. 예를 들어, 의사나 교사 같은 직업이 힘들어도 견딜 수 있는 이유는, 이 일이 세상을 더 좋게 만든다는 확신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목적의식이 분명할수록 우리는 더 강한 희망을 품을 수 있다. 희망이란 단순히 막연한 기대가 아니라, '내가 노력하면 상황을 바꿀 수 있다'는 자신감과 깊은 관련이 있다. 더크워스는 희망이 없다는 건 고통 자체가 아니라, 그 고통을 ‘내가 통제할 수 없다’고 느끼는 무력감이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계속되는 실패가 문제가 아니라, ‘아무리 노력해도 달라지는 건 없을 거야’라는 좌절이 진짜 위험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희망을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 더크워스는 '성장형 사고방식(Growth Mindset)'이라는 개념을 제안한다. 성장형 사고방식이란,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노력과 태도에 따라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다는 믿음을 뜻한다. 이는 시련과 실패를 경험할 때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실패가 무능력이나 한계가 아니라 ‘성장을 위한 기회’로 여겨질 때, 우리는 비로소 희망을 품을 수 있다.
성장형 사고방식을 갖게 되면, 우리는 목표 달성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어려움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마주하게 된다. 어려움 자체가 자신을 성장시키는 경험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결국, 목적의식과 희망을 가진 사람은 실패나 좌절 앞에서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그들은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과 함께 그릿을 키우며 앞으로 나아간다. 이제 마지막으로 그릿을 기르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경험: 지지와 요구
심리학에서는 양육 방식을 주로 '지지'와 '요구'라는 두 가지 기준으로 분류한다. 이 두 기준을 조합하면 네 가지 방식이 나타나는데, 더크워스는 지지와 요구가 모두 높은 ‘권위적 양육방식’을 가장 바람직하다고 제시한다. 얼핏 보면 지지와 요구는 서로 충돌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더크워스는 충분한 자유를 주면서 동시에 명확한 규칙과 한계를 설정하는 방식이 가능하며 매우 효과적이라고 강조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방식이 부모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는 살아가며 다양한 멘토와 교사, 동료들을 만나는데, 그들 역시 지지와 요구를 균형 있게 제시함으로써 우리의 성장을 촉진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지지와 요구를 동시에 경험할 수 있는 사례는 무엇일까? 학교나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특별활동'이 대표적이다. 더크워스는 특별활동이 그릿을 키운다는 명확한 과학적 증거는 아직 불충분하다고 인정하면서도, 특별활동의 환경 자체가 그릿 발달에 긍정적이라고 평가한다. 특별활동은 일반적인 수업보다 흥미롭고 즐거우며, 놀이보다는 훨씬 도전적이고 책임감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지 특별활동에 참여하는 것만으로 그릿이 자동으로 성장하는 것은 아니다. 경험을 통해 진정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2년 이상의 꾸준한 참여와 ‘과업 완수(follow-through)’ 경험이 필수적이다. 도중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성취해본 경험이야말로 그릿을 기르는 가장 결정적인 요인이기 때문이다.
뭐가 됐든 한 해 그리고 그 이듬해에 같은 특별활동 부서에 다시 등록하고 그동안 발전이 있었다는 점이 가장 중요했다
『그릿』 본문 中
그릿을 키우는 조직 문화
흔히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말한다. 이는 조직의 문화나 환경이 개인의 성장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잘 보여준다. 그릿 역시 예외가 아니다. 자신이 그릿이 부족하다고 느낀다면, 그릿을 키워줄 수 있는 문화를 가진 조직을 선택하는 것도 현명한 방법이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속한 집단의 기준과 문화를 자연스럽게 닮아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릿을 키우기에 적합한 조직문화는 어떤 특징을 갖고 있을까? 여러 조직심리학 연구들은 구성원의 끈기와 장기적 목표 달성을 촉진하는 조직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첫째, 명확하고 도전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구성원 모두와 공유하는 조직이다. 명확한 목표는 구성원의 에너지를 집중시키고 장기적인 성과를 달성하게 만드는 필수 조건이다. 둘째, 실패를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학습의 기회로 삼는 문화를 가진 조직이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없을 때 구성원들은 더 큰 도전과 실험을 지속할 수 있다. 셋째, 구성원 간에 진솔한 피드백과 정서적 지지가 활발히 이루어지는 조직이다.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는 환경에서 구성원들은 위기에도 쉽게 무너지지 않고 꾸준히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기억해야 할 점이 있다. 그릿은 분명 재능이나 IQ보다 성공에 더 중요한 요소지만, 그렇다고 그릿만이 성공의 유일한 열쇠는 아니라는 것이다. 때로는 한 걸음씩 꾸준히 나아가는 끈기보다, 언제 그만두고 돌아서야 할지를 판단하는 능력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그릿만큼이나 중요한 또 하나의 힘, ‘현명하게 그만두는 능력(퀴팅)’을 살펴볼 것이다.
참고도서 : 그릿, 지은이 : 앤절라 더크워스, 출판: 비즈니스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