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길산은 실패했는가: 혁명의 지형도(1/2)

장길산에서 찾은 존재의 뿌리와 불꽃

by 감각의 풍경

제1장. 뿌리를 묻다:

혁명의 씨앗이 발아하지 못한 이유


1.1 허상의 불꽃:

영웅 서사 너머의 혁명 담론


황석영의 『장길산』은 흔히 ‘민중 영웅의 서사’로 분류되지만, 그것은 표면적 독해에 불과하다. 이 소설은 오히려 혁명의 실패에 대한 문학적 진단서다.


혁명이란 무엇인가? 억압을 뒤집는 것인가? 왕을 죽이고 민중이 정권을 잡는 것인가?

『장길산』은 그것이 충분하지 않다고 말한다.


길산은 구조를 설계하려 했다.

그는 무장봉기를 넘어, “입국(立國)“을 선언했다.

그러나 실제로 제도는 존재하지 않았다.


거국적 공동체를 위한 실질적 법, 질서, 행정 체계는 구성되지 않았다. 그것은 정치적 선언이자 상징적 언어였지만, 실천적 기획은 아니었다.


그 안에는 G(Governance)가 없었다.


길산은 감정을 통합하려 했다.

도적들, 무당들, 농민들, 광대들까지—다양한 민중을 규합하고, 불교와 무속의 감정 에너지를 포괄하려 했다. 그러나 이질적인 감정 구조는 서로 충돌했다.


고달근은 돈과 지위를 원했고,

마감동은 감정에 사로잡혔으며,

종교와 무속은 탈정치화된 종교의 언어에 갇혔다.

이것은

E(Everyday Power)의 부재,
일상 권력의 감정적 해체다.


1.2 외로운 등불:

어둠을 밝히지 못한 빛


그럼에도 길산은 단 한 사람으로서 바뀌었다.

그는 윤리적 전환을 감행했다. 복수를 절제했고, 공동체를 위한 도적이 되었으며, ‘백성의 병졸’로 자신을 낮췄다. 그는 존재의 방향을 바꾼 유일한 주체였다.


금강산에서 하산하던 길산에게 스승 운부 대사는 이렇게 말한다:


너는 팔도 천민들의 중심이요,
그들을 위해서 배운 것이다.

언제라도 교만하고
잘난 자들과 같은 느낌이 들 적엔
차라리 자진하든지,

너와 같은 자들의 토멸을 받아야 한다.

우리는 거름이요,
너희는 씨앗이며 뿌리와 같으니라.

– 『장길산』 5권, 2004. 창비. 272면.

이 이미지는 휘각(揮珏)에 의해 제작되었으며, AI 도구를 사용하여 생성되었습니다. CC BY 4.0 라이선스에 따라 출처표시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길산의 내면에 ‘존재를 바꾸지 않고 세상을 바꾸려 해서는 안 된다’는 철학을 심는다.

그는 이후 개인적 복수나 생존의 분투가 아닌, 존재의 윤리를 감당하는 혁명 주체로 거듭난다.


그러나 이 존재의 혁명은 고립되었다.

고달근은 포상을 선택했고,

마감동은 감정에 사로잡혔으며,

무속과 민중 감정은 분열되었다.

누구도 길산의 윤리를 감내하지 못했다.


길산은 바뀌었다.
그러나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


『장길산』은 단지 조선 후기의 허구적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오늘날 우리가 다시 겪는 혁명의 고질병

—감정의 동원, 구조 없는 분노, 존재의 고립—을 예견한 철학적 사유의 서사다.


우리는 길산의 실패에서 출발해야 한다.

진정으로 바뀌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세상’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방식이다.



1.3 ‘입국’은 왜 제도화되지 못했는가


『장길산』의 핵심 장면 중 하나는 길산이 봉기의 명분을 넘어선 국가의 비전을 제시하는 장면이다.


그는 단지 양반을 무너뜨리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았다. 그것은 보다 근본적인 정치 질서의 재편,

즉 새로운 나라—‘입국(立國)’—을 꿈꾸는 선언이었다.


길산은 구월산 회합에서 다시 입국의 명분을 천명하며 말한다:


“좌우간에 이제 우리가 결의한 지도 어언 네 해가 지나갔소이다. 오늘 이렇게 만난 뜻은 그날을 잊지 않고 앞으로도 더욱 결속하여 큰 일을 하고자 함이오.


첫째로는 우리가 활빈당이요.
둘째로는 백성들의 병졸이며,

셋째로는 어지러운 나라를 평정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자는 것이오.

우리는 첫 번째의 일조차 제대로 해오지 못했소이다. 백성의 병졸이 되려면 이런 식으로 도적질에 그쳐서는 아니 될 줄 아오.”


- 장길산 6권, 창비, 2014, 18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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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선언은 공동체가 그간 실패해 온 윤리의 부재를 자각한 발언이다. 그리고 단지 정권 탈취가 아니라, 존재 기반이 달라진 정치 질서,

곧 ‘백성의 병졸’이 주인이 되는 국가 구상을 뜻한다.


그러나 실제로 ‘나라’를 구성할 법, 제도, 행정 체계, 거버넌스 설계는 등장하지 않는다.

즉, Governance(G)가 결여된 선언이었다.


그는 더 이상 도적이기를 거부한다. 백성의 병졸이 되기 위해서는 감정의 재편이 필요하며, 그 감정을 담을 구조적 기획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담겨 있다.


그러나 그 인식은 여전히 설계의 언어로 구체화되지 않는다. '입국'이라는 언어는 상징적이며 윤리적 열망으로는 충만하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할 행정, 법, 제도, 통치 체계에 대한 구조적 상상력이 결여되어 있다.


푸코의 말처럼, 제도란 “몸 위에 각인되는 통치 기술”이어야 하는데, 『장길산』의 혁명은 몸으로 내장될 법적 체계도, 교육적 전이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입국은 언어로 존재했지만, 법과 제도와 감정의 언어로는 실현되지 못했다.

혁명이 실패한 이유는,

그것이 국가를 해체할 감정은 있었지만,

재구성할 기술은 없었기 때문이다.


길산은 ‘백성의 병졸’이 되려 했으나, 그 병졸들은 각자의 분노만을 품은 채 구조 밖으로 흩어졌다.

입국은 무산된 것이 아니라, 애초에 사회적 구조로 기획되지 않은 허상의 설계도였던 것이다.



1.4 고달근, 마감동

– 내부로부터 무너지는 혁명


혁명은 외부의 억압에 의해서만 실패하지 않는다.

더 자주, 더 깊이, 혁명은 내부로부터 무너진다.

『장길산』은 그 무너짐의 내적 구조를 누구보다 정교하게 서사화했다.


길산은 공동체 전체의 윤리와 감정 구조를 바꾸려 했지만, 그 공동체의 내부는 이미 분열되어 있었다.


고달근은 길산과 함께 했었다.

그러나 그에게 혁명은 정의가 아니라 거래였다.

그는 최형기의 협박과 그에 이은 포상금, 신분상승을 위한 공명첩 유혹에 길산을 배신한다.


그리고 포상금 대신 검계와 살주계의 재물 절반 내놓으라고 요구하며 한수 더 뜬다. 거기에다가 자신처럼 최형기도 배신할 수 있으니 자신의 요구사항을 증서로 달라고 하는 꼼꼼함까지 보인다.


길산의 존재 윤리는 고달근에게는 감정의 언어로 전달되지 않았다. 감정 구조의 미조율, 즉 Everyday Power(E)의 실패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마감동은 또 다른 유형의 실패를 보여준다.


그는 누구보다 불타는 분노와 신념을 지녔지만, 그 분노는 감정의 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는 ‘입국’이나 윤리, 제도라는 언어보다 감정적 언어였고, 존재 방식의 전환(O) 없이 감정을 정치화한 인물이었다.


고달근과 마감동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길산의 혁명을 내부에서 무너뜨린다.


하나는 생존을 위해 윤리를 배반하고,

다른 하나는 분노의 윤리로 공동체 윤리를 거부한다.

길산의 존재는 윤리적으로 진화했지만, 그를 둘러싼 감정 구조와 제도 설계는 내적으로 붕괴되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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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의 미시 권력 개념으로 보자면,


고달근은 기존 질서 내의 보상 체계에 순응하는 전형적인 ‘몸의 훈육된 주체’였고,

마감동은 그와 반대로 권력의 전복은 꿈꾸되, 자기 존재의 윤리적 통제에는 실패한 감정의 정치 주체였다.


결국 혁명의 실패는 적이 강해서가 아니라,

내부가 제각기 다른 리듬으로 분열되었기 때문이다.

길산은 하나의 ‘리듬’을 가지려 했지만, 공동체는 다른 ‘박자’로 반응했다.


윤리는 공유되지 않았고, 감정은 조율되지 않았으며, 구조는 무너지기 시작했다.


『장길산』은 말한다.

혁명은 적과 싸우기 전에, 감정과 윤리와 구조를 안에서 조율하지 않으면 절대 성공할 수 없다.


내부의 파열이야말로 모든 혁명의 가장 깊은 균열이다.



1.5 길산의 윤리적 전환:

존재 방식의 전환이란 무엇인가


길산은 단지 체제에 저항한 반역자가 아니었다. 그는 저항의 논리를 넘어, 존재 방식 자체를 바꾸려 한 혁명가였다. 『장길산』의 깊은 울림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가 추구한 것은 권력의 장악이 아니라 존재의 윤리적 방향 전환이었다.


우리가 ‘존재 방식의 전환(Ontology)’이라 부르는 것은, 단순히 새로운 삶의 태도나 개인적 각성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기의 감정 구조를 성찰하고,

타자의 고통에 감응하며, 욕망을 재조율할 수 있는 윤리적 감응 능력을 갖추는 것을 말한다.


길산은 이 존재 윤리를 실천한 거의 유일한 인물이다.


그는 금강산에서의 수행을 통해 복수심을 다스리는 법을 배운다.


그에게 혁명은 응징이 아니라 치유였고,

정권 교체가 아니라 공동체적 존재 전환이었다.

스승 운부 대사는 하산을 앞둔 길산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는 팔도 천민들의 중심이요,
그들을 위해서 배운 것이다.


– 『장길산』 5권, 창비, 2014, 272면


이 말은 길산의 내면에 '존재를 바꾸지 않고 세상을 바꾸려 해서는 안 된다'는 철학을 심는다.

그는 이후 개인적 복수나 생존의 분투가 아닌, 윤리적 감응의 주체로서의 혁명가로 자신을 전환시킨다.


그 윤리적 전환은 단지 내면의 수행으로 그치지 않았다. 그는 공동체를 향해 말한다:


“백성들의 병졸이며 … 새로운 세상을 만들자는 것이오. 우리는 첫 번째의 일조차 제대로 해오지 못했소이다. 백성의 병졸이 되려면 이런 식으로 도적질에 그쳐서는 아니 될 줄 아오.”


이 말에는 단지 정치적 전략이 아니라, 도적에서 시민으로, 복수자에서 윤리적 병졸로 바뀌어야 한다는 존재의 지향이 담겨 있다.


길산은 자신이 속한 세계가 여전히 도적질과 보복의 감정 구조 안에 갇혀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그것을 넘어서기 위해 공동체 전체의 감정과 존재 방식을 전환시키려는 윤리적 실천을 시도한 것이다.


이러한 자기 전환은 푸코가 말한 ‘자기의 테크놀로지’(technologies of the self)와 깊게 연결된다.


푸코에 따르면, 주체는 외부 권력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에게 행하는 ‘훈련과 통제’ 속에서 탄생한다.


길산은 바로 그런 자기 훈련의 주체였다.


또한, 프롬의 언어로 말하자면,

길산은 ‘소유 방식의 인간’에서 ‘존재 방식의 인간’으로 이행한 인물이다.


그는 욕망을 수집하고 확장하는 대신, 감정의 깊이와 관계의 윤리를 통해 자기 존재를 형성한다(철학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상세하게 살펴본다).


그러나 이 존재 방식의 전환은 개인에 머물렀다.

그는 공동체를 설계하려 했지만,

감정 구조는 조율되지 않았고,

제도는 뒷받침되지 않았다.


결국 그의 윤리는

고립된 윤리, 공동체로 확산되지 못한 윤리였다.


『장길산』은 존재의 윤리가 혁명의 중심이 되어야 함을 말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공유되지 않으면 얼마나 쉽게 무력 해지는가를 보여준다.


길산의 존재 전환은 위대했다.

그러나 혼자였기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존재의 방식은 혁명의 조건이자,

지속 가능성의 근간이다.


바꾸려는 자는 먼저 자기 존재의 방향부터 바꾸어야 한다. 길산은 그것을 실천했지만,


그와 함께 바뀐 자는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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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존재는 변했으나, 세계는 움직이지 않았다


길산은 변했다.

그는 분노를 절제했고, 복수를 멈추었으며,

공동체를 위해 자신을 낮추었고,

스스로를 ‘백성의 병졸’이라 칭했다.


그러나 그가 서 있는 세상은 단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장길산』은 한 인간의 존재 전환이 어떻게 공동체 안에서 고립되고, 어떻게 감정 구조와 제도적 응답 없이 무력화되는지를 보여준다.


길산은 윤리적으로 완성된 주체가 되었지만,

윤리를 함께 나눌 감정의 구조는 없었고,

그 감정을 담을 제도적 형식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가 말한 “백성의 병졸”이란 선언은,

노자의 말처럼 무위로 세상을 이끄는 존재의 비전이었고, 순자의 말처럼 ‘예’를 통해 욕망을 제어하려는 질서의 의지였다.


하지만 그런 존재는

세상에 너무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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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산의 전환은 구조(G)와 감정(E)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발생한 '존재(O)의 선취'였다.


그는 너무 혼자였다.


결국 존재는 고립되었고, 혁명은 내부에서 무너졌다.

이것은 한 사람의 실패가 아니라,

'공유되지 못한 윤리의 비극'이었다.


푸코라면 말했을 것이다. 자기의 테크놀로지는 존재를 형성하지만, 감시와 규율의 구조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존재는 제거된다.


프롬이라면 말했을 것이다. 존재 방식의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선, 사회 전체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장길산』은 그것을 보여준다.

존재는 움직였지만, 세계는 반응하지 않았다.

혁명이 실패한 것은,


가장 중요한 변화가
가장 외롭게 일어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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