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길산에서 찾은 존재의 뿌리와 불꽃
『장길산』은 역사 소설이 아니라, 혁명의 철학을 예언한 문학적 사유이다. 혁명은 흔히 제도나 정권의 교체, 정치적 구호와 폭력의 충돌로 이해되지만, 황석영은 그보다 깊은 지점을 서사화했다.
그는 혁명을 존재의 방식에서 다시 쓰려했다.
그리고 그 질문은, 이 책이 정식으로 다루게 될 이론적 분석틀의 출발점이 된다.
길산은 실패했다.
그러나 그 실패는 정치의 실패가 아니라,
공유되지 않은 윤리의 실패, 존재 전환의 고립이었다.
그는 구조(G)도 감정(E)도 없는 상태에서 존재(O)만 먼저 변했다.
이것이 바로 이 글이 말하는 G·E·O 구조의 이론적 기초다.
이 책은 『장길산』의 서사에서 출발하여, 역사 속 혁명들을 다음 "세 가지 기둥-혁명의 축-"과
"세 가지 숨결-혁명의 결-"로 분석한다:
1. G – Governance(제도적 구조-줄기-무기):
제도적 전환, 구조 개혁, 권력 장악의 변화
2. E – Everyday Power(감정과 일상권력-흙-손발):
감정 구조, 언어와 규범, 공론장의 질감
3. O – Ontology(존재방식-뿌리-마음):
존재 방식의 전환, 자기 감응 능력, 윤리적 감정 훈련
4. Q – Quality of Breath(질):
어느 축이 빠졌는가? 어떤 결여가 가장 위험한가? 어디에 숨이 막혔는가?
5. C – Chronology(시대):
어느 시대의 호흡인가? 어떤 시대 조건(C₁)에서, 어떤 속도(C₂)로 전개되었는가?
6. D – Directionality(방향성):
혁명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가? 위로부터인가, 아래로부터 인가?
※ 특히 C 축은 이중 구조로 작동한다. 단지 어느 시대에 일어났는가(C₁)뿐 아니라, 그 혁명이 점진적으로 이루어졌는가, 급진적으로 폭발했는가(C₂)를 함께 살핀다.
『장길산』은 이 모든 분석이 하나의 서사 안에서 조밀하게 엮인 문학이다.
철학은 이 소설을 따라가야 하고,
혁명의 이론은 이 소설에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장길산』은 혁명이 무엇인지에 대한 가장 깊고 가장 슬픈 정의를 내린 작품이며,
이 책은 그 정의를 분석적으로, 그리고 존재론적으로 풀어가는 하나의 시도다.
장길산이 보여준 GEO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G (Governance): 길산의 ‘입국’ 선언은 새로운 제도적 질서를 상상했으나, 구체적 설계로 나아가지 못했다. 제도는 존재하지 않았고, 정치적 상상력의 구조만 있었다.
- E (Everyday Power): 고달근, 마감동, 운부 등 다양한 인물들은 감정 구조와 욕망의 방식이 제각기 다르다. 이들은 민중이라는 이름으로 묶이지 않고, 일상 권력의 분열과 조율 실패를 보여준다.
- O (Ontology): 길산은 존재 방식의 전환을 가장 먼저 실천한 인물이다. 그는 분노를 절제하고 윤리적 병졸이 되기를 선택한다. 이 전환은 내면적 감응 능력의 정치적 실험이었다.
『장길산』은 이처럼 세 축이 동시에 시도되었지만, 그 불균형 속에서 존재의 고립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다.
G는 시도되었으나 제도로 구체화되지 않았고,
E는 감정이 제각기 엇갈리며 조율에 실패했으며,
O는 오직 길산 개인의 몫으로만 남았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이 책의 이론은 출발한다.
G·E·O라는 기둥이 균형을 이루지 못하면 숨은 끊긴다.
무엇이 빠졌는지를 보여주는 질(Q),
어떤 시대의 한계 속에서 시도되었는지를 묻는 시대(C₁)와 속도(C₂),
그리고 그 혁명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를 지시하는 방향(D)이 함께 고려되어야만,
우리는 혁명이 왜 실패했는지를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의 이론은 문학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이 문학은, 철학보다 먼저 혁명의 구조와 윤리, 그리고 존재의 외로움을 기록했다.
힌두 철학의 핵심 개념 중 하나인 로타 칼파냐(Lotā Kalpaṇā, 또는 라타 비유: Ratha Kalpanā)는 인간 존재를 하나의 마차로 보는 상징적 사유이다.
이 고대적 은유는 우리가 제시한 G·E·O 혁명 이론과 여섯 축(Q·C·D)을 유기적, 역동적으로 연결하는 데 탁월한 틀을 제공한다.
이 비유를 혁명론에 적용하면 다음과 같은 대응 구조를 그릴 수 있다.
주인 = 국민
마차 = 국가, 국민을 담는 그릇
마부(O) = 혁명을 이끄는 실천적 주체, 즉 감정과 제도, 존재를 조율하는 혁명세력
말(E) = 일상 권력과 감정(E) – 민중의 감정, 여론, 정서, 광장, 미디어, 혐오와 공감 등 혁명의 추진력
고삐(G) = 사회 시스템과 헌정 구조(Governance) – 제도적 설계와 통제 메커니즘
길(C, D) = 시대와 속도(Chronology), 방향(Directionality) – 어떤 시대, 어떤 속도로, 어디로부터 일어난 혁명인가?
힌두 철학의 마차 비유는 혁명 구조를 감각적으로 사유하게 만든다. 이 구조는 하나의 진리를 말한다:
마차는 단지 주인의 의지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말이 미쳐 날뛰거나,
고삐가 끊어졌거나,
길이 갈라졌거나,
마부가 방향을 읽지 못하면,
주인이 아무리 고결해도 마차는 전복된다.
프랑스혁명처럼 감정과 감각의 말이 폭주한 경우,
혁명은 단두대로 귀결되었고,
나치 독일처럼 고삐는 단단했으나 말과 마부가 삐뚤어진 경우, 그것은 전체주의로 향했다.
반대로 마부(혁명 주체)가 다소 불완전하더라도, 시대의 길이 열려 있고 감정과 제도가 조율될 수 있다면 혁명은 점진적 전환을 이룰 수 있다.
명예혁명은 고삐와 마부가 귀족적 합의에 의해 조용히 방향을 튼 예였고, 메이지 유신은 강력한 위로부터의 통제가 감정을 억제하면서도 제도 전환에 성공한 경우다.
결국 이 비유는 존재, 감정, 제도, 시대, 방향이 서로 어긋났을 때, 어떤 경우에는 혁명이 실패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성공하는지를 설명해 준다.
혁명이란, 단순한 기세가 아니라
모든 조건이 함께 숨을 쉬는 유기적 조율이다.
* 로타 칼파냐(Lotā Kalpaṇā, 또는 라타 비유: Ratha Kalpanā)
힌두 철학, 특히 『카타 우파니샤드』에 나오는 마차 비유는 인간 존재를 하나의 마차로 상징한다.
이 구성에서 마차는 신체, 말은 감각기관(indriya), 고삐는 마음(manas), 마부는 이성(buddhi), 마차 안의 주인공은 진정한 자아, 즉 아트만(ātman)이다.
말이 아무리 빠르고 강해도 고삐가 헐겁거나 마부가 길을 읽지 못하면 마차는 제어를 잃고 파멸로 달린다. 감각과 감정은 생명력을 주지만, 그것이 잘 조율되지 않으면 주인을 목적지로 이끌지 못한다.
이 비유는 인간 존재의 내면적 통제 구조를 드러낸다. 진정한 자아는 감각에 휘둘려서는 안 되며, 마음은 감정을 제어하고, 이성은 바른 방향을 정해야 한다.
전체가 조화롭게 작동할 때에야 비로소 인간은 삶이라는 여정을 바로 나아갈 수 있다.
이 고대의 상징은 감정, 제도, 존재라는 현대 혁명 이론의 세 층위에도 놀랍도록 정합되며, 주체의 내적 질서와 윤리적 자율성을 근간으로 한 철학적 통찰을 제공한다.
길산은 실패했다.
그러나 그 실패는 칼과 불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 실패는 존재가 바뀌었지만, 감정이 따라오지 않았고, 제도가 따라오지 않았으며, 결국 윤리가 고립되었기 때문이었다. 혁명의 호흡은 끊겼다.
우리는 수많은 혁명을 경험했다.
왕조가 무너지고, 헌법이 개정되며, 광장이 촛불로 가득 찼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다시 절망이 반복된다. 왜 그럴까? 이 책은 그 질문에 단 하나의 대답을 내놓는다:
우리는 구조만 바꾸고,
존재는 바꾸지 않았기 때문이다.
존재 방식이란, 단지 삶의 태도가 아니라, 세계를 대하는 마음의 구조다.
그것은 타인의 고통을 감지하고, 나의 분노를 조율하며, 내가 속한 공동체의 리듬을 이해하는 능력이다.
길산은 그것을 바꾸었다.
그는 '병졸'이 되었고, 분노를 절제했으며, 자신을 낮추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를 따라오지 않았다.
현대 사회의 혁명들은 구조(G)와 감정(E)의 영역에서 많은 것을 이뤘지만, 존재(O)의 전환에는 거의 실패했다.
촛불혁명 이후 혐오와 분열의 정치는 오히려 심화되었고, 시민들의 분노는 윤리적 자기반성으로 이어지기보다는, 정파적 응징의 에너지로 흘러갔다.
‘마음의 구조’는 바뀌지 않았고, 그래서 세상도 바뀌지 않았다.
이 책은 존재 전환의 윤리를 혁명의 핵심 조건으로 다시 설정한다. 이는 박경리의 시에서 말하는 ‘마음 바름’으로부터 시작된다. 박경리는 그의 유고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중 ‘마음’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마음 바르게 서면, 세상이 다 보인다.
‘바른 마음’은 노자적 감응의 본질, 프롬적 전환의 실천, 레비나스적 책임의 관계로 구성된 삼중 구조다.
여기에 더해, 이 마음이 사회적으로 지속되려면 푸코적 실천과 순자적 제도화가 뒤따라야 한다.
바른 마음이 세 기둥(G·E·O)의 중심에 놓일 때,
혁명은 존재로부터 다시 숨을 쉬기 시작한다.
『장길산』은 존재의 전환이 먼저 일어나도,
감정과 제도가 따라오지 않으면 고립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실패는 단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시대의 조건(C₁)과 변화의 속도(C₂)와도 얽혀 있었다.
조선 후기라는 시대(C₁)는 유교적 위계와 질서가 무너지는 혼란기였으며, 길산의 존재 전환은 주변의 속도를 따르지 못한 급진적 실천(C₂)이었다.
혁명의 모든 숨결이 맞물려야만, 변화는 지속될 수 있다.
우리가 진정으로 바꿔야 할 것은 무엇인가?
구조가 아니다. 감정만도 아니다.
바로, 나의 존재 방식이다.
이 책은 이제 문학에서 출발하여,
혁명의 이론으로 나아가려 한다.
『장길산』은 한 사람의 고독한 존재 전환을 기록했고,
이 책은 그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이론적 지도'를 그리려 한다.
혁명은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
이번엔 칼도 아니고, 구호도 아니고, 광장의 열기만도 아니다. 이번엔 마음의 구조부터 바꿔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가장 깊은 혁명이며,
가장 오래 남는 변화다.
위 글은 시산과의 아래 대화에서 모티브를 얻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