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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똥을 맞은날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다.

by 박요한 Feb 01.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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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똥 맞은 날,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가 되었다


겨울의 끝자락이었다. 길 위로 얇게 얼어붙은 이슬은 마치 깨지기 쉬운 유리처럼 빛났다. 땅은 촉촉한 흙냄새를 머금고 있었고, 차가운 공기는 사람들의 뺨을 날카롭게 스쳐 지나갔다. 도시의 아침은 언제나 그랬듯 바쁘고 무심했지만, 내 발끝은 그보다 더 급했다.

나는 달리고 있었다. 공원의 가느다란 길 위로 모래가 튀며 사라지고, 아침 안개는 내 뒤에서 서서히 흩어졌다. 모든 것이 예상 가능한 범위 안에 있었다. 그렇다, 적어도 그 순간까지는.

그것은 갑작스러운 타격이었다.

퍽!

이마 위로 따뜻하면서도 묘하게 끈적한 감촉이 내려앉았다. 나는 본능적으로 멈춰 섰고, 손끝으로 천천히 그 정체를 확인했다. 그리고 눈앞이 잠시 멍해졌다.

“새똥?”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회색빛 구름 사이로 날아가는 비둘기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그 새는 그 어떤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 듯, 유유히 날갯짓을 하고 있었다. 어쩐지 태연한 그 모습이 날 더 기막히게 했다.

나는 한 손으로 이마를 닦아내며 생각했다.

왜 하필 나야?

머릿속은 복잡했다. 억울함이 밀려왔다. 세상에는 수천, 아니, 수만 명이 하늘 아래를 지나다니는데, 왜 그 비둘기는 내 이마를 겨냥한 걸까? 마치 우주가 나를 놀리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곧 나는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확률적으로 보면 이건 굉장한 일이야. 새똥을 맞을 확률이 540분의 1이라면, 뛰고 있는 상황에서는 1080분의 1 정도가 되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단순한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마 위로 떨어진 새똥은 우주의 농담이자 메시지였다.

그렇게 나름의 낙관을 유지하며 회사로 향했지만, 불운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신호등 앞에서는 발을 헛디뎌 넘어질 뻔했고, 구두 밑창이 찢어져 하루 종일 어딘가 비틀거렸다. 점심시간에는 일주일 전부터 먹고 싶어했던 메뉴가 잘못 나왔다.

점점 이상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이게 다 새똥 때문인가?”

하루 종일 나는 나를 둘러싼 작은 사건들에 신경이 곤두섰다. 회의에서 실수를 할까 봐,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멈추지 않을까, 심지어 커피를 쏟지 않을까 걱정하며 살얼음 위를 걷듯 움직였다.

누군가는 이런 나를 보고 “너무 과민 반응 아니냐”고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새똥을 맞은 날은 다르다. 뭔가 일어날 것 같은, 불길하면서도 묘한 긴장감이 공기 중에 떠돌고 있었다.


그렇게 종일 불편한 마음을 안고 퇴근길에 올랐다. 공원은 아침과는 다른 빛을 띠고 있었다. 붉게 물든 하늘 아래로 까마귀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나는 잠시 멈춰 섰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오늘 하루의 모든 일이 내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불운의 연속 속에서도 나는 점점 어떤 깨달음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행복은 뭘까?”

내 발걸음이 멈춘 그 자리에서, 나는 새똥을 맞았던 아침을 떠올렸다. 그 순간의 충격과 억울함, 그리고 그것이 가져다준 예상치 못한 변화들.

평소라면 지나쳤을 작은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발밑의 마른 잎사귀, 나뭇가지에 걸린 햇살, 그리고 저 멀리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불편함 속에서 나는 의외의 평온을 느끼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순간, 또 한 번의 타격이 내게 날아왔다.

퍽!

이번에는 왼쪽 어깨였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비둘기 한 마리가 이번에도 태연하게 날아가고 있었다.

그 장면이 어이없어서, 나는 한참을 웃었다.

사람들이 지나가며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지만 상관없었다. 나는 지금 우주와 대화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우주가 내게 말을 걸었고

그리고 나는 그 말을 이해했다.

“행복은 우연 속에 있다“

사람들은 종종 행복을 큰 사건이나 행운 속에서 찾으려 한다. 하지만 이제 나는 안다. 행복은 아주 작은 우연 속에 숨어 있다. 그것이 비록 새똥처럼 끔찍하고도 웃긴 사건일지라도.

우주는 우리에게 농담을 던진다.

그리고 그 농담을 웃으며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다.

나는 두 번이나 새똥을 맞은 세상에서가장 행복한 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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