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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피리 불던 소년 다니엘 2

by 연후 할아버지 Mar 31. 2025

2) 교우 다니엘


그때 갑자기, 월요일이라 대부분의 성당에서 새벽미사를 드리는 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까운 곳을 물었더니 읍내로 나가야 한단다. 통상적으로 미사를 시작하는 시간에 근접한 것 같아서 서둘러 차를 몰았다.


위치를 찾거나 확인해 볼 사이도 없어서 중심가로 여겨지는 곳을 향해 그냥 달려갔는데, 초행이었음에도 똑바로 가서 원하던 시간 안에 성당 앞에 도착한 게 신기했다.


그런데 성전에 불은 켜져 있지 않고, 마당에 건축자재들이 쌓여 있는 게 이상했다. 늙은 수녀 한 분이 나오시기에 미사가 없느냐고  물어봤더니, 성전을 수리 중이기 때문에 당분간은 쉰단다. 그렇다면 사제는 한가하겠다 싶어서 다시 물었다. 

“신부님께서는 성당에 계십니까?”

“계시긴 합니다만, 무슨 일이죠?”

그래서 내 친구가 암에 걸려 사경을 헤매는데, 병자성사를 받을 수 있는지 여쭤봤다. ‘조금만 기다려 보라’ 하신 후 수녀님께서는 사제관으로 들어가시더니 함흥차사가 되셨다.


한참을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아서 포기할까 하는 생각이 들 때쯤, 신부님과 수녀님께서 뭔가를 잔뜩 들고 나오시더니 앞장서라고 하셨다. 그래서 차에 태우고 친구 집을 향해 달렸다. 아직도 상당한 거리가 남았는데 신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읍내래서 따라나섰더니 여기서부터는 우리 관할 구역이 아닙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구획 정리는 제 소관업무가 아니지만, 지금 운전대는 제 손안에 있습니다.’  

그러다가 곧 목적지에 도착했다.

‘여기까지 오셨는데 설마 빈손으로 돌아가시지는 않으시겠죠? 아직도 차키는 내 손안에 있으니. 내키지 않으시면 걸어가 보시든가?’ 

역시 속으로만 말하며 집안으로 들어가니 예상대로 따라 들어오셨다. 그런데 또 의사전달에 혼선이 있었던 것 같다. 


병자성사와 대세를 주려고 준비하고 오셨는데, 금방 죽어간다던 환자가 너무 생생해 보였기 때문이다. 궁여지책으로 세례준비를 하라고 하셨는데 또 문제가 발견되었다.


세례를 받을 당사자가 교리를 아무것도 모르고 마음의 준비도 되지 않았던 것이다. 신부님께서는 혀를 차시면서 가방을 다시 싸셨다. 


사태를 알아차린 피리 불던 소년이 입을 연 것은 그때였다.

“신부님, 저의 수명은 오래전에 끝났는데, 지금도 이렇게 숨을 쉬고 있는 것은, 저 친구가 제게 준 우정의 선물입니다. 그가 원하면 저는 무조건 따릅니다.”

“지금 제가 상대하는 건 저분이 아니라, 형제님입니다. 세례를 주려 했더니 교리에 대한 지식이 너무 부족하군요.”

“맞습니다. 저는 성당에 가 본 적이 없으니 가톨릭에 대해 아는 게 없습니다, 그러나 역사에 대해서는 공부도 제법 했고, 성경도 전체는 아니지만 부분적으로 읽어 본 적은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중에서 기억나는 게 조금이라도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셨던 부분입니다. 그런데 참 이상합니다. 머리맡에 놓여 있는 십자가와 성모상에서 요즘에는 가끔 빛이 나고 제 가슴을 뛰게 만듭니다.”

내 아내가 그에게 선물한 성구들이었다. 그의 말을 듣고 성물들을 확인하신 신부님께서 다시 자리에 앉으시며 말씀하셨다.

“세례명을 먼저 지어야 합니다. 그리고 형제님은 대부가 되고 자매님은 증인을 설 마음의 준비를 하십시오. 다만, 영세를 받은 후에라도 교리공부는 많이 해야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으니, 그건 본인이 아니라 대부서는 분께서 약속해 주셔야겠습니다.”

그의 발언 중에서 어떤 부분이 마음을 움직였는지는 알 수가 없고,  옛날 내가 <나일론신자>로 견진을 받을 때와 비슷한 단서를 붙이긴 했지만 세례를 주시겠다고 결정하셨다.


다니엘이란 본명을 처음 제안했던 건 내 아내였다. 그녀는 고난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신앙의 힘으로 용맹하게 극복한 구약성서 속의 한 인물을 연상했겠지만, 그 이름에 찬성한 나는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와 <다니엘>이라는 <엘톤존>의 아름다운 발라드 선율을 떠올리고 있었다. 


사막에 불시착해 천진난만한 어린 왕자를 만나는 파일럿과 ‘저를 쏘지 마세요. 피아노 연주자일뿐예요.’라는 독백으로 시작되는 월남전 참전용사의 슬픔을 합치면 이 친구의 자유로운 영혼에 가까운 이미지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상념에 빠졌던 것이다. 


내 친구 피리 불던 소년이 교우 다니엘로 탈바꿈하던 엄숙한 순간에 이름의 유래 따위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어느 쪽의 염원이 받아들여지든 건강하게 오래만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세례식을 마치고 신부님과 수녀님을 출발했던 본당으로 다시 모셔다 드렸다.


영세를 받고 나서, 다니엘은 정신적으로만 안정이 된 게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건강을 되찾아 혈색도 돌아오고 살이 너무 쪄서 걱정할 정도로 풍채가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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