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기억의 파편

말라버린 이름 1. 윤

by 차혜원

***



딸은 임신 중이었다. 윤은 딸아이를 챙겨 주고 싶어 전화했다. 아닌가, 아들의 안부가 궁금해서 전화했던가…. 이유는 명확지 않지만, 윤이 연극 준비를 위해 연습실로 가는 길에 통화한 것은 분명했다.

“아빠가 아직도 호랑이처럼 무서운 줄 알아? 안 보면 그만이야. 이제 우리도 다 컸어.”

딸이 왜 이런 말을 쏟아내는지 윤은 알지 못하겠다. 그때 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래, 참 잘나셔서 잘 먹고 사세요.”

윤은 자신의 목소리를 분명히 들으며 혼돈이 온다. 뭐지. 우리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지?



아이들과 함께 살던 시절. 그 옛날 살던 어느 한 집안이다. 아내가 바닥에 넘어져 있다. 아이들은 어디에 있지? 방을 두리번 살피는데, 아이들은 보이지 않는다. 아내가 일어나서 주섬주섬 옷가지를 챙긴다. 그때 윤은 깜짝 놀랐다. 윤의 눈앞으로 주먹이 날아가 짐을 챙기는 아내의 뒤를 가격했다. 아…. 맞다. 잊고 살았는데, 정말 맞다. 이것은 윤의 기억이다. 윤은 술에 취해 아내를 종종 때리곤 했다. 이런 괴물의 모습이었나…. 내가 정말 이렇게 했구나….



장면은 또다시 변해 창과 커튼 너머로 아내와 아이들이 오들오들 떨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들이 자발적으로 나간 건지, 내가 쫓아낸 건지는 모르지만 그들은 밖에 있고 나는 안에 있다. 그들을 잠시 쳐다보다가 커튼을 휙 닫아버렸다. 안돼…. 어째서…. 지켜야 할 건 밖에 있는데…. 커튼을 닫고 돌아서는 윤의 앞에 소주가 있다. 다시 술을 따른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잡것.”

아내를 말하는 듯하다. 윤은 아내를 사랑하지 않는다. 결혼했지만 아내를 존중해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아내는 그저 밥하고 돈 벌고 아이들을 기르는 존재 그 이하였다. 아내는 항상 미간에 주름이 잡혀 있었다. 자신의 가게 손님에게만 한정적으로 미소를 보였지만, 윤이 보이는 순간 그 미소는 사라지곤 했다. 윤은 아내의 그런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부아가 치밀었다. 마치, 자신을 무시하는 것 같다. 가화만사성이라는데, 직장이 계속 바뀌면서 직급이 점점 낮아지는 윤의 처지가 다 아내의 그 얼굴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 얼굴을 뭉개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기도 했다.



***



“쾅쾅쾅!!!”

문 밖에서 요란한 소리가 울려댄다. 희미했던 기억의 일부가 요란한 소리와 함께 돌아오고 있다.

윤은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된 순간, 아니, 몸에 벌레가 생겨난 걸 안 순간부터 줄곧 이대로 잠들어 죽기를 바랐다. 윤의 몸에 알을 깐 파리를 쫓을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냥 죽는 것이 수순이라 생각했다.

“쾅쾅쾅!!! 윤아!! 있냐?”

관식의 목소리 같다. 윤은 여기 있다 대답해 보지만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관식의 목소리에 돌아온 의식이, 밖에서 몰아치는 장맛비의 소리를 듣게 했다.

‘장마구나…. 아직 살아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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