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64세. 17평 아파트

말라버린 이름 1. 윤

by 차혜원


17평짜리 작은 아파트 안은 물 한 방울조차 허락되지 않은 듯, 모든 것이 메말라 있다. 이 공간에 흐르는 것은 윤의 말라버린 눈물 자국뿐이다. 방 한 칸과 좁은 거실 겸 주방이 이 집의 전부다. 바로 그 좁은 거실 한가운데 노년의 윤이 쓰러져있다.


언제부터 쓰러진 건지 윤조차 알 수 없다. 그의 의식이 점점 희미해져 간다. 어쩌다 벌레와 한 몸이 되어 찾는 이 없는 고독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인지…. 윤은 지워져 가는 기억으로 들어간다. 이 기억을 따라가다 보면 자신도 곧 사라질 것만 같다.



***



불과 2년 전. 윤의 친구 관식의 생일이었다. 관식과 윤은 자주 가던 오래된 점포에서 민물새우 매운탕 하나에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식당에는 가족 단위의 사람들도 있었고, 동창 모임도 겹쳐서 평소보다 더 떠들썩했다. 관식과 윤은 서로의 생일에 매년 만나 술잔을 부딪치지만, 선물하거나, 생일 축하의 말을 하지는 않았다. 그저 밥을 먹고 술을 마실 뿐이었다. 관식의 잔에 소주를 따라주며 윤이 톤을 높여 말했다.

"관식이 너 이 자식, 성공했다! 아따, 자식새끼 잘 크는 게 성공이제."

관식도 윤의 잔을 채우고 이내 술잔을 부딪쳤다. 관식이 사람 좋은 웃음소리를 내며 윤에게 답했다.

"허허허. 뭘 성공 까지냐. 느그 딸도 잘 컸지. 느그 아들도. 인생 다 똑같다."

서로 기운을 한 것 북돋웠지만, 그들의 대화와는 다르게 잔을 넘기는 윤과 관식의 표정이 씁쓸했다. 윤은 잔에 남은 방울까지 탈탈 털어 목구멍에 털어내고, 한껏 목청을 높이며 웃었다.

"껄껄껄. 그래! 자식아! 너도나도 성공했네. 먹어라!"

"그래, 우리가 어쩌다 고향 떠나 여까정 와서 이러고 있다. 마셔라!"

옆 테이블의 소란함에 지지 않겠다는 듯. 그렇게 둘은 한참 동안 잔을 채우고 비우고를 반복했다.


관식과 헤어지고 집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눈물이 나는 것을 꾹 참아냈다. 윤의 나이가 62세다. 친구 생일날 술 한잔 기울이고 택시 안에서 엉엉 울기에는 나이가 너무 들었다. 이 나이에 우는 인간은 인생 망한 인간들뿐이다. 윤은 아직 활동적으로 사회생활과 경제생활을 하고 있기에 그렇게 눈물을 흘리기에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



윤의 옆에는 항상 사람으로 넘쳐났다. 문화관광해설사로 크진 않지만, 이 나이에도 월에 250 정도는 받고 있다. 혼자 살기 때문에 그 돈이 부족하지는 않다. 또, 연극 활동을 겸하고 있기에 주기적으로 극단에서 사람들을 만나 연습을 하고 공연을 올린다. 공연이 끝나면 윤의 직장 동료들과 고향 친구들이 찾아와 늘 항상 북적였다.


오직 한 공간. 바로 윤의 집을 제외하고는 윤은 항상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윤의 집에 마지막으로 찾아온 손님은 석 달 전 윤의 막냇동생이다. 윤의 동생을 제외하고는 그 집에 오는 사람의 발길이 끊긴 것이 언제인지는 윤조차 알지 못했다.


점점 더 의식이 희미해져만 간다. 이것이 주마등인가…. 아마 이것은 딸과의 기억이다. 윤에게는 딸과 아들이 있다. 이미 그들과는 연락이 끊긴 지 5년이 지났지만, 분명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이었는데…. 아닌가…. 아…. 이미 성인이 되어 결혼했구나…. 잠이 온다. 이미 감겨있는 윤의 눈이 다시 감기는 기분이 든다. 분명 눈을 감고 있는데, 눈을 뜬 것도 같고. 그 눈이 다시 감긴 것도 같고. 의식이 혼미하다. 무엇이 현재이고 과거인지 구분되지 않는다. 졸음이 쏟아지는데 자면 안 될 것 같다. 윤에게 마지막으로 허락된 것이 잠인가. 그조차 허락되지 않는가. 어느 것 하나 알 수 없다. 뜨거운 눈물이 흐르는 것 같다. 하지만 그의 눈에는 아무런 액체도 흐르지 않았다. 그저 눈물자국만 허옇게 돋보일 뿐이다.



***



딸이 활짝 웃고 있다. 어머니 댁의 마당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며 아이가 붕붕카를 타고 있다. 연신 굴러대더니 넘어지고 말았다. 아이를 향해 윤이 달려간다. 번쩍 아이를 안아 들어 토닥인다. 툇마루에 앉았다. 기다란 라디오 옆에서 아이가 새우깡을 먹고 있다. 윤은 아이의 입가에 묻은 과자 가루를 털어 준다. 아이가 윤을 향해 씩 웃어 보이더니 제 손에 있던 새우깡을 윤의 입에 밀어 넣는다. 윤의 마음이 뜨거운 무언가로 가득 차오른다. 이 아이를 끝까지 내가 지키리라. 이제 내 삶은 이 아이가 전부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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