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돌아온) 싱글 라이프를 시작한 지 어언 반년이 되었다. 혼자 지내는 게 뭐 그렇게 대수라고 그 시간이 버티기 힘들어서 별안간 질질 짜기도 했고, 지나가는 사람이라도 붙들고 답답한 마음을 털어놓고 싶은 충동이 들곤 하였다. 그 덕분에 내 몇몇 지인들은 영양가 없는 나의 근황과 하소연을 종종 들어 주어야 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해도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이혼남의 청승맞은 이야기를 시도 때도 없이 늘어놓는 것은 역시나 적잖이 민폐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결국엔 그 지랄 맞은 감정을 내 혼자 해결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어느 순간 미친 듯이 운동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그나마 혼자 지내는 동안 여러시도를 한 끝에 내가 알아낸 것은, 이런 잡생각이나 부정적인 감정으로부터 벗어나는 데는 운동만 한 게 없다는 것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갓생러 따위가 되고 싶었던 것이 아니다. 단지 이 지독한 외로움이 나를 괴롭히는 것이 싫었을 뿐이다. 나는 자존심이 강한 편은 아니지만, 적어도 외롭다는 감정 (어쩌면 욕구) 때문에 나 자신이 이성을 잃고 휘둘리는 상태가 되는 것을 절대로 용납할 수가 없었다. 이것은 적어도 나에겐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외로움이라는 감정에 통제권을 뺏기고 싶지 않았고, 그건 곧 나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마지노선이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나 자신과 싸워 이기기 위해 숨이 차도록 달리고, 땀을 흘리고, 쇠질을 했다. 그렇게 미친놈마냥 들고뛴 다음 기진맥진하게 되면, 더 이상 외로움이고 나발이고 상관이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는데 그때 나는 이 빌어먹을 외로움과 싸워 이겼다는 묘한 성취감을 느꼈다.
그렇게 지낸 지가 이제 대충 3개월 정도가 흐른 것 같다. 이 짓을 앞으로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 스스로 외로움에 휘둘리지 않는다고 느끼게 될 때까지는 별다른 도리가 없다.
나는 본디 마음이 착하고 낙천적인 천성을 타고났다. 지난날을 되돌아보니, 그다지 아름답지 않은 여인도 어느 순간 정이 들면 이쁘게 보이기 시작했고 왠지 모르게 썩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이 있어도 좋게 좋게 넘어갈 수가 있었다. 이런 내가 외로움이라는 감정에 휘둘리기 시작하면, 아무나 붙잡고 사랑을 주겠다고 할지도 모르는 일이니 나로서는 상당히 위태로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나 외롭거든 그냥 일단은 누구라도 만나서 일단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할지 말지는 나중에 생각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누군가는 조언을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섣부른 연애가 곧 결혼이 될 수도 있는 사내, 그것이 바로 나다.
가만히 보면 나는 꽤 로멘티스트다. 확실히 나에게는 현실적인 조건보다도 낭만적인 사랑이 많이 중요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첫눈에 반한 여인과 결혼을 결심할 수 있었던 거다.
그 결혼이 영원히 아름다웠다면 내 사랑도 끝까지 순애보로 남았겠지만, 결국 이혼을 했기에 결과론적으로 내가 어리숙하고 순진했다고 봐야 한다. 노력하면 사랑하는 그 마음을 지킬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어쩌면 그 생각은 틀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은 언제나 그 어려운 숙제를 포기하고 싶은 욕구를 느끼는 존재라는 점에서 결국 그것은 불가능한 명제다. 죽는 순간까지 변함없이 노력할 수 있는 사람은 없으니까. 애초에 안 되는 것을 갖다가 해보겠다고 덤빈 내 잘못이 크다.
대체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 둘 사이에 태어난 자녀는 부부라는 관계를 이어주는 강력한 매개체이자 이유가 된다. 그러면 그때는 더 이상 낭만적인 사랑이 아니라 책임과 의무가 중요해진다. 보험을 가입하면 좋든 싫든 중간에 해지하면 손해를 보기에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 먹기로 만기까지 보험료 납입을 하게 되듯, 어쩌면 대부분의 부부생활이라는 것이 자녀라는 강력한 속박으로 인해 끌려가는 게 아닐까 싶다.
그것이 나쁘다거나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그냥 인간의 삶이 그렇다는 말이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이미 태어난 삶을 되돌릴 수 없듯이, 아이를 낳고 기르는 그 과정에서 가족의 의미나 부모로 사는 행복 따위를 찾게 되는 게 아닐까. 차라리 내가 딩크니 뭐니 하면서 유난을 떨지 않고 결혼하자마자 애를 낳았다면, 지금도 어찌어찌 그냥 가정을 지키며 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게 더 행복했을지 아닐지는 알 수 없는 일이고, 역사에 가정은 의미가 없는 것이지만 반성은 필요하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나도 마찬가지고. 중요한 것은 부족한 것을 인정하고 실패의 경험에서 배우는 것이다. 지난 결혼생활 중 하나의 실수는 내가 너무 이상을 좇았다는 점이다. 내 결혼생활 좌우명은 'Happy Wife, Happy life'였다. 한 마디로 아내가 행복해야 내 삶이 행복해진다는 말인데, 나는 이 문구를 자랑스럽게 카톡 상태메시지에 걸어놓고 살았다. 그리고 주변에 결혼을 한다는 친구들이 있으면 반드시 이런 마인드로 살아야 한다고 조언을 해주곤 했다. 그랬던 내가 이제는 아내의 외도로 혼자 살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우스운 꼴인가. 상대를 위해서 기꺼이 희생하겠다는 마음가짐은 연인사이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이제는 이런 조언을 해주었던 것을 후회한다. 우리는 신이 아니기에 상대의 행복만으로는 행복할 수 없다. 내 행복도 중요하다. 만약 내가 불행하다면 상대가 행복한 들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좀 더 냉정하게 결정하고 현실적으로 판단하기로 했다. 그것이 이제부터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첫 번째 레슨이다. 그리고 매일 혼자 폐관수련하는 도사마냥 해나가는 이 고독한 고군분투는 지난 결혼생활을 돌이켜 보면서 얻은 반성에 대한 진실된 대답이기도 하다. 무릇 변화에는 고통이 따르는 법이다. 생명체가 허물을 벗어내고 탈피를 하면 더 큰 성체로 자랄 수 있지만, 허물을 벗어내는 그 과정은 지독한 투쟁과 같아서 결코 아릅답지 않다. 내가 때때로 힘들어 죽겠다고 느끼는 까닭은 아마도 지금 허물을 잘 벗겨내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
'하..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