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근데, 도시락 싸 오지 않아도 밖에서 사 먹을 수 있었다니까요..
아~진짜다~~
글쎄, 도시락 싸 오지 않아도 밖에서 점심을 사 먹을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지 않은가? 그 당시 중국에서는 중고등학생들 전부 점심에 교문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점심은 밖에서 사 먹고 수업시간 전에만 착석하면 됐었다.
처음으로 그런 교칙을 들은 순간, 유레카!!
그때부터 신 나서 꼬마들의 코 흘리게 돈으로 시작한 소소한 주변 맛집탐방! 두, 세 명씩 무리를 지어 여러 식당들을 다니며 점심시간에 2~3위안 예산 안에서 고심에 고심을 거듭해서 사 먹었던 점심 메뉴 중에 계란 볶음밥이 가장 맛있었다.
흐음~~ 혹시 중국요리 만화 요리왕 비룡을 기억하는가? 거기에 나오는 황금 볶음밥이 생각나는 비주얼이었다. 나에겐 바로 그 황금볶음밥이었다. 그야말로 미미(美味)! 거기에 고춧가루 살짝 넣고 미원을 살짝 뿌려준 무한리필 달래 무침을 한 입 와그작-베어 먹으면 그 행복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콧노래를 흥얼대며 어깨까지 들썩대곤 했다. 왜냐면 달래 알이 엄청 크고 향이 정말 일품이었기 때문에 그 달래를 먹고 오면 한 동안 감기가 들지 않는 느낌이었으니, 나에겐 보약 같은 사이드 디쉬였다. 고마운 식당 주인장님, 정말 잘 먹었어요~
그리고 나가는 것도 귀찮아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럴 때면 호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같이 교문 앞에 찾아온 헐 판盒饭이라고 부르는 도시락 파는 아줌마, 아저씨를 찾아가면 된다. 자전거 뒷자리에 수산물 택배 시키면 딸려오는 스티로폼 박스를 세팅해 오셔서 매일 정해진 개수만 파는 한정판이었다. 키야~찐 중국분이 집에서 만든 현지인 도시락! 근데 왜 그렇게 맛있는 거야~그냥 봤을 때는 채소랑 고기가 전분물에 섞여 있는 모습이라 별로 맛있어 보이지 않았었다. 그런데 한 입 먹는 순간! 어린 마음에 급 레시피가 탐났다. 채소랑 고기의 배합이 절묘했고 먹고 나면 정말 든든했다. 흰 밥에 볶음 반찬 2~3가지 정도 들어있는데 정말 순식간에 해치웠다.
도시락을 사 갖고 들어가면 밥을 집에서 싸 온 친구들이 우리를 기다리거나 이미 한창 밥을 먹고 있었다. 처음 친구들이 싸 온 도시락통을 보고 어디선가 사진에서만 봤던 양은 도시락통을 실제로 처음 보게 되어 조금은 당황스럽고 놀랐던 기억이 있다. 60, 70 년대 국민학교 다닐 때, 난로 위에 쌓아두었다가 따끈하게 벤또를 드셨다고 어르신들이 추억하는 바로 그 옛날 도시락과 똑같은 모양이었다. 친구들은 도시락통에 밥 가득, 반찬 1/3 정도 비율로 싸 오고는 했다. 밥에 반찬 한 가지가 대부분이었다. 그 시절 한국에서는 김치를 싸왔다고 한다.
한국과 다른 점은 반 별로 주번이 모든 도시락을 한데 모아서 따뜻하게 보관하는 곳에 가져다 놓았다가 점심시간 종이 울리면 보관처에서 가져왔다는 점이다. 석탄으로 난방을 하고 있었고, 연료를 추가하는 곳과 멀지 않은 곳에 보관장소가 있었다. 도시락이 오면 우리는 삼삼오오 모여 앉아 즐겁게 대화를 하며 반찬도 나눠먹고 이야기 꽃을 피웠었다.
한 번은 엄마가 소풍 갈 때나 싸주시던 김밥 도시락을 싸주셨다. 모든 반 아이들의 주목을 받으며 나도 한 입만 먹어봤으면 하는 표정이 대부분이었다. 장난꾸러기 남자아이들이 자기들 먼저 먹겠다고 몇 명이 한꺼번에 달려들다가 그만 도시락이 바닥에 툭-하고 떨어져 버렸다. 다들 눈으로만 감상하고 실제로는 아무도 먹지 못한 상황이 되었다. 그날 얼마나 앙앙 울었던지... 착한 반 친구들이 도시락을 한 입씩 나눠준 덕분에 마음이 풀렸다. 나는 밖에 나가 그날 점심을 때웠다. 그때는 얼마나 화가 났는지 모르겠다. 지금은 미소 지으며 아련하지만 즐거운 추억으로 회상하곤 한다.
그렇게 후다다닥 도시락을 까먹고 나면 자유시간이었다. 우리는 희희낙락 장난도 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남은 점심시간을 보내곤 했었다. 물론 그 와중에 공부하는 아이도 있었고, 아예 밥만 먹고 땡떙이 치는 아이도 한 둘 있었다.
요즘은 급식이 제공돼서 엄마가 도시락을 싸주는 경우는 정말 드물다고 들었다. 아직 아이가 어리다 보니 나도 급식을 먹는다고만 들어서 실제로는 어떤지 모르겠다. 그래서 그런지 그 시절 엄마가 새벽같이 일어나 싸주시던 그 정성 어린 도시락이 찐한 추억이 되었다. 엄마의 도시락, 너무나 소중하고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