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우면 그전에 외운 걸 잊어버리더라고요.
선생님께서 교과서를 펼쳐 보여주신 초등학생 필수 한자 2000여 개...
어머나, 맙소사. 세상에... 언제 어떻게 저 많은 한자를 다 외운단 말인가!
학교를 다녀본 사람이라면 엄청나게 많은 양의 암기가 기다리고 있는 과목을 직면하고 나서 좌절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중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이 지난한 외우기 과정을 어떻게 감내하고 미션을 완수했단 말인가! 그리고 당시 같은 반 친구들도 다 이 과정을 겪었다는 말인데, 한글은 매번 새로운 글자를 외우는 언어가 아니다 보니 처음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했을 때 너무 불편하고 힘들었었다. 지금도 모르는 글자가 나오면 공부해야 한다.
솔직히 당시 필수 한자가 몇 개였는지 기억나지 않아서 검색해 보니 요즘은 2500 자라고 나온다. 이걸 6년 과정을 거치면서 다 익혀야 한단 말이지. 그리고 계속해서 새로운 글자를 외워야 한단 말이다. 엄청난 기억력의 소유자가 아니라면 정말 힘겨운 과정일 거다.
지난주에 잘 외워서 시험 볼 때 안 틀려서 룰루랄라 기분이 좋았었다. 그 상태로 이번 주 공부를 시작하면 지난주와 지지난 주에 공부했던 글자를 새까맣게 잊어버리곤 했다. 나는 기억력이 엄청 좋은 타입은 아니었기 때문에 매주마다 좌절의 연속이었다. 아... 정말 공부하기 싫어지는구나... 이거 자꾸 잊어버리는 데 꼭 해야 해?
귀에서 유래한 한자 부수가 있었는데 당연히 귀니까 왼쪽 오른쪽 두 종류가 있었다. 左耳旁(왼쪽에 있는 귀 모양)과 右耳旁(오른쪽에 있는 귀 모양)이라는 부수는 阝 이렇게 생겼고 왼쪽, 오른쪽에 붙어서 다른 글자의 조합으로 사용되는데 防막을 방, 郊들 교 같은 한문에 쓰여서 완전 다른 정반대 위치였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렇게 헷갈렸을까 싶다.
여기에 卩이렇게 생긴 单耳刀(귀 모양 하나처럼 생긴 칼, 병부절변)라는 게 추가되니 더 멘붕...印 도장 인에 해당 부수가 쓰인다. 다 그림 같아 보이고 하여간 어질어질했었다. 괄호 안에는 그 부수를 지칭하는 말을 그냥 직역해 넣어 봤다. 내가 느낀 설명의 뜻은 저런 식으로 받아들여졌으니 말이다. 그 당시에는 그런 표현이 다른 문화에서 살다 온 나에게는 더 혼동을 주지 않았을까 싶다.
불쌍한 중생이여...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다. 그래도 꾸역꾸역 하다 보니 2년 차 정도에는 잘 잊어버리지 않게 되었다. 실력이 좀 늘었기에 그간 매일 맛보던 좌절은 조금씩 줄어들고 칭찬도 꽤 받기 시작했다. 지금도 모르는 글자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때 열심히 했던 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며 종종 그 과정을 진지하게 임했던 나에게 칭찬을 해준다. 좌우지간, 지금도 암기 과목은 싫다.
그때는 너무 고생스러웠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기본 한자 정도만 알고 있어도 거의 모든 교과서가 쉽게 읽히고 정체불명의 처음 보는 한자로 구성된 것으로 유추되는 단어를 마주하게 되더라도 대략적인 뜻을 어림짐작해 볼 수도 있다. 든든한 뒷배? 가 생긴 느낌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우리 반에는 공부를 잘하는 친구가 여럿 있었다. 글짓기도 잘하고, 수학까지 잘하는데 체육도 어디 가서 뒤지지 않는 만능 엔터네이너들이 몇 있었다. 그 친구들은 수업이 다 끝나면 자습시간에 숙제를 누구보다 빠르게 후다닥 해치웠다. 당시에는 보습학원이 거의 전무했다고 한다. 그래서 학교가 수업만 하고 일찍 끝나면 부모님이 아이를 데리러 올 수가 없었다. 우리는 오후 자습시간에 숙제를 했었고, 모르는 게 있으면 중간에 아이들이 잘하고 있는지 체크하러 들어오신 선생님께 물어봐서 모든 숙제를 다 끝내고 집에 가는 게 국룰이었다. 그때 다 못 끝내는 아이들은 공부를 여간 하기 싫어하거나 정말 못해서 속도가 안 받쳐주는 아이들이었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은 남는 시간에 수학을 복습하거나 만년필로 글자 쓰기 연습을 꾸준히 했었다. 다들 어찌나 잘 쓰는지, 결과물을 보고 있으면 왠지 주눅이 들곤 했다. 조심스럽게 쓰는 걸 구경해도 되는지 물어보면 열성적으로 잘 쓰는 방법을 알려주곤 했던 친구들이었다. 고마웠어, 친구야.
국민학교를 다녔던지라 중국에서 초등학교를 소학교라고 부르는 게 그다지 낯설지는 않았다. 어찌 보면 투박한 표현이긴 하지만 소학교도 학교 교과과정의 특성과 아이들의 발달 상황에 잘 들어맞는 표현인 것 같기도 하다. 사진에서처럼 붉은 손수건을 목에 두르고 다녔는데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침에 혹시나 잊어버리고 미착용한 채로 교문을 들어가려고 하면 학급 점수가 깎인다. 결국 교문 앞에 있는 문방구에서 급히 하나 구매해 목에 두르고 들어가곤 했다.
정치적인 의미와 사상에 관련된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 정도만 알고 살았던 아이 시절이 참 좋았던 것 같다. 오랜만에 생각나서 찾아보니, 와우... 한국인인 내가 착용하고 다니기엔 전문용어로 내 사상체계와는 전혀 맞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그것도 나름 추억이고 그리움이다. 친구들과 다 같이 꽃처럼 붉은 홍웨이진红围巾을 착용하고 수업을 듣던 그때가 순수하고 미숙하지만 작고 어였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