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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했던 중국음식

탕후루, 마라탕 그리고 사실은 너무나 많다...

by 크엘 Feb 05. 2025

나란 사람은 먹는 거라면 어디 가서 빠지지 않는 대식가다. 최근 몇 년 사이 중국대륙 음식이 한국을 관통했다. 많은 사람들 특히, 초등학생부터 청년층이 탕후루와 마라탕을 찾고, 마라 맛 과자나 견과류, 음식에 열광한다.

나는 맨날 먹던 것이라 그런지 왜 그렇게까지 인기가 있는지 조금은 동떨어진 곳에서 관망하며 지켜볼 뿐이다.


탕후루

탕후루는 중국에서 빙탕후루라는 정식 명칭을 갖고 있고, 이 단어를 바이두에서 원어인 冰糖葫芦로 검색하면 아래와 같은 내용이 나온다.

참고로, 산자(山楂, 산사나무 열매)라는 열매로 만들었고, 개인적으로 산사나무로 만든 것 외에 과일 같은 재료를 만든 탕후루는 당시에 먹어볼 기회가 없었다.


탕후루, 출처: 바이두탕후루, 출처: 바이두

(출처: https://baike.baidu.com/item/%E5%86%B0%E7%B3%96%E8%91%AB%E8%8A%A6/5696)


기원 (*가독성을 위해 훈독으로 표기)

남송(南宋) 광종황제(光宗皇帝)의 이름은 조돈(趙惇), 연호는 소희(绍熙)다. 소희 연간에 광종이 가장 총애하는 황귀비(黄贵妃)가 병에 걸렸다. 그녀는 얼굴이 누렇게 변했고 나날이 여위어 갔으며 식욕이 전혀 없었다. 어의가 여러 귀한 약을 썼음에도 전혀 차도가 없었다. 황제는 애첩이 나날이 초췌해져만 가는 것을 보며 하루 종일 미간에 주름을 펼 수가 없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의원을 구하는 방을 붙였다. 한 강호랑 중(江湖郞中)이 방을 보고는 입궁하여 진맥 한 뒤 이렇게 말했다.

"설탕과 홍과(红果, 산사나무 열매)를 달여 매 끼니 식전에 5~10알씩 잡수신다면 보름 안에 병이 나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모두가 반신반의했지만, 다행히도 의원의 처방으로 만든 음식이 귀비의 입맛에 맞았다. 귀비는 그렇게 계속해서 처방대로 산사나무 열매를 복용하였고 정말 보름 만에 병이 나았다. 황제는 대단히 기뻐하며 미간의 주름도 순식간에 펴졌다. 나중에 이 방식이 민간에 전해져 내려왔으며 백성들은 산사나무 열매를 꿰어 팔기 시작하면서 빙탕후루가 된 것이다.


성행

베이징의 빙탕후루는 민국(民国) 시기에 가장 성행하였다. 구경(旧京)이라 불리던 옛 베이징에는 동네별로 탕후루의 굵기와 다양한 판매 방식이 존재했다. 탕후루는 식료품점, 공원의 다과점, 극장에서 항상 유리 덮개로 덮여있는 백자 접시에 진열되어 판매되었는데 그 조리 방식이 정교하였을 뿐만 아니라 종류가 다양했다. 산사나무 열매, 용화수 열매, 올방개 뿌리, 토란, 귤을 사용하기도 했고 팥소, 해바라기씨, 참깨 소를 넣은 각종 탕후루가 있었다.

 

거리에서 소리치며 팔던 탕후루

옛날에는 또 다른 종류의 탕후루가 있었다. 멜대를 메거나 나무함, 대나무 바구니를 들고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며 팔던 탕후루다.

"여기 좀 보시오. 빙탕후루요. 갓 만든 겁니다."


판매하는 노점상이 지고 있는 멜대에는 나무 막대기 양쪽에 짐을 실을 수 있는 구조였다. 한쪽에 놓인 나무 쟁반 위에는 대나무 편을 구부려 만든 반원형 선반이 있었고 그 위에는 구멍이 뚫려 있었는데, 바로 그 구멍에 탕후루가 꽂혀 있었다. 다른 한쪽 끝에는 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화로, 솥, 도마, 칼 등의 조리도구, 설탕, 산사나무 열매, 토란 등의 원료가 놓여 있었다.


옛 베이징 황투(黄土, 황토) 거리는 바람이 불지 않는데도 먼지가 날리는 곳이었다. 이런 연유로 바람과 모래를 막기 위해 바구니와 가방을 든 노점상은 먼지를 막으려고 깨끗한 흰 천을 사용해 바구니를 덮곤 했다. 이런 종류의 탕후루는 종류가 다양하지는 않으나 가격이 합리적이라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해외여행 다녀온 친구의 현지 음식 맛 설명을 누구나 한두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나: 있잖아~더운 동남아에서 먹으니까 별것 아닌 과일에 소금과 설탕을 살짝 쳤을 뿐인데! 우와~~ 과일 어쩜 그렇게 맛있을 수가 있어??!!

친구: 너도??

나: 응!! 근데 돌아와서 다시 먹었는데 그 맛이 아니야... 실망했잖아... 그건 현지에서만 먹을 수 있는 거더라고. 그 기후, 공기, 습도, 그리고 당시 내 체온과 공복감이 얼마나 절실했는지가 다 함께 작용하는 것 같았어.

친구: 나도 저번에 동남아 XX 다녀왔는데 한국에서 너무 먹고 싶어서 사 먹었는데 그 맛이 아니더라고!

나: 어머 정말?


아무튼 내겐 저 탕후루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지금 파는 건, 그리고 내가 처음 중국에서 먹었던 그 탕후루는 정말이지 시큼하다 못해 혀가 떨어져 나갈 것만 같은 시큼함에 싸구려 설탕... 왠지 모르게 저렴한 맛이었다...으로 만든 크리스피 한 겉껍질이 치아 사이로 스르륵 부서지면서 달큰하게 녹아드는 맛과 절묘하게 섞어 시큼털터름 사이에 달큼함이 섞여들어서 침을 엄청 고이게 만드는 마법 같은 간식이었다.


브런치 글 이미지 2


추운 날 밖에서 한참 돌아다니다 보면 코끝이 얼어붙고 손도 얼어붙어서 덜덜 떨렸고, 그 와중에 탕후루를 한입 베어 물면, 입김이 폴폴 나왔다. 실내에서 먹는 것과 영하 20도에 가까운 길거리에서 먹는 것은 정말 다른 맛이었다. 단맛이 더 강렬하게, 감칠맛 나게 느껴졌으니 말이다. 당시 위안화 환율 비율 100~110 정도였을 때 탕후루 한 꼬치는 1위안도 채 하지 않았을 때였으니 100원도 안 되는 거였다. 그때 사 먹었던 탕후루 맛은 정말 쇼킹했더랬다. 그리고 지금도 그 맛을 다시는 느낄 수 없다. 그때만 느낄 수 있는 그런 게 있다... 경험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때 그 시절 말이다.




마라탕

마라탕은 정말이지 서민 음식이 아닐 수 없다. 시장에서 약간 출출할 때 후루룩 말아서 한 그릇 먹고 가는 잔치국수처럼 말이다. 이건 내가 있을 때 이야기이고 요즘은 브랜드가 출시되어 치열한 경쟁을 벌이며 건강에 좋은 조합을 출시하는 시대로 변화하였다.

마라탕, 출처: 바이두마라탕, 출처: 바이두

(출처: https://baike.baidu.com/item/%E9%BA%BB%E8%BE%A3%E7%83%AB/959248)


마라탕은 쓰촨(四川, 사천) 러산(乐山, 악산)에서 유래한 음식이다. 둥베이(东北, 동북) 지역에서 맛과 방식을 개선해 중국 각지에서 유행하게 된 한족 간식이다.


기원

마라탕은 민장(岷江, 민장, 쓰촨성에 있는 양쯔강 지류)강변의 쓰촨성 러산시 우퉁차오구(五通桥区, 오통교구) 뉴화진(牛华镇, 우화진)에서 유래했다. 초기에는 뱃사공과 배를 끄는 인부가 마라탕이라는 간편하면서도 독특한 조리법을 만들어 냈다.


청두(成都, 성두)에서 싼샤(三峡, 삼사)에 이르는 쓰촨강 유역에서는 물살이 거세서 배를 끄는 인부가 없어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들은 여분의 밧줄로 돌을 쌓아 그 위에 질그릇을 지지해 둔 뒤 나뭇가지를 주워 불을 피워 추위를 쫓고 습기를 없앴다.


강물을 떠오고 나면 나머지 식재료는 현지에서 조달했다. 채소가 보이면 채소를 넣고 야생초가 보이면 그것도 넣어 먹었다. 고추, 화쟈오(花椒, 얼얼한 맛을 내는 조미료) 등으로 맛을 내고 끓는 물에 헹궈내듯 조리하여 즉석에서 섭취했다. 이런 조리법은 배부르게 먹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한기와 습기도 없애줬다. 또한, 조리법이 간단하고 간편했기 때문에 강을 따라 빠르게 퍼졌다.


나중에 부두의 상인들은 장사에 적합하다고 판단해 채소 조합과 솥, 난로 등을 개선하였다. 그들은 멜대를 메고 다니면서 외쳐댔고 강변이나 다리 어귀에서 노동하는 사람들이 장사꾼을 둘러싸고 한 끼 식사를 해결했으며 단골까지 되었다. 오늘날 마라탕도 점차 강가에서 내륙 지역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마라탕의 변천사

중국 사회가 발전하고 생활 수준이 향상됨에 따라 건강, 유행을 추구하며 삶의 질을 끌어올리려는 사람들의 구가 점점 더 강해져 사람들은 더 이상 음식을 배부르게 먹고 잘 먹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식품이 건강에 도움이 되는지 건강을 지키는 데 어떤 작용을 하는지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기존 마라탕의 운영 방식과 섭취 방식에서 여러 가지 단점이 여실히 드러났다. 조리 과정이 열악하고 종류가 제한적이며 식사 환경이 좋지 않았다. 건더기만 먹을 수 있고 국물을 맛볼 수 없다는 점과 심지어 식품 위생과 식생활 안전까지도 큰 문제가 되었다.


그래서 좋은 환경에서 통일된 맛과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새로운 마라탕 점포가 생겨나게 되었다.

중국 내에서는 국물을 먹을 수 있는 마라탕, 사골국물을 베이스로 하는 마라탕이 가장 큰 인기를 끌게 된 종류 중 하나이다. 고객의 개별적인 소비 수요에 따라 5가지 타입이 성행했다. 재료 무게를 는 마라탕, 훠궈(火锅, 중국식 샤브샤브) 마라탕, 뚝배기 마라탕, 꼬치 마라탕이다. 특히 뚝배기 마라탕은 1인 식사하는 손님을 겨냥했고 꼬치 마라탕은 바로 먹을 수 있으며 훠궈 마라탕은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떠들썩하게 한 끼 식사를 하기에 좋았다.




그 시절 그 동네 기준으로 나는 용돈을 두둑이 받는 편이었기 때문에 고기랑 야채며 여러 가지 재료를 팍팍 넣으면, 마라탕 아줌마는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쪼꼬만 아이가 왜 이렇게 돈을 많이 써?라는 표정으로 주춤거리며, 정말 더 넣어줘?라고 몇 번을 더 물어보셨었다. 아마도 다른 아이들은 나처럼 여러 가지 재료를 골라서 먹지 않았던 게 아닐까? 아이가 혼자 와서 너무 많이 시키는 이 상황이, 혹시라도 셈을 못 하는 데다 사실은 주머니에 돈도 충분치 않아서 돈을 못 받을까 봐 그러셨나? 이제서야 그런 생각이 든다.


그렇게 잔뜩 몇 가지 재료를 넣어 달라고 하면 벌겋게 타오르고 있는 화로 위에 놓인 길쭉한 솥에다가 끓고 있는 시뻘건 마라탕 국물에 투하시킨다. 끓여 내고 건지면서 국물은 정말 코딱지만큼 덜어준다. 아마 그 마라탕 국물이 씨국물이 아닌가 싶다. 그렇게 진할 수가 없었다. 단언컨데 사골 국물 맛은 아니고 진한 고기국물이었다. 그렇게 내가 어렸을 때 먹어본 마라탕은 국물을 먹는 게 아니라 건더기를 먹으려고 먹는 느낌이었다. 시장에서 내가 사 먹어봤던 건 그런 스타일이었는데, 역시 추운 날 매콤한 국물에 적셔진 뭉근하게 익은 야채와 부들부들한 고기는 추위를 물리쳐주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지금도 그 추위에 떨며 먹었던 마라탕 맛을 추억하며 찾곤 하는데, 역시 손발이 꽁꽁 얼어붙었던 그날의 그 맛은 다시 맛볼 수 없다. 요즘 스타일의 마라탕은 또 새로운 느낌이라 가끔 집에서 해먹고는 하는데 여전히 맛있다~




누군가에게는 생소한 외국 음식, 나에게는 가끔씩 생각나는 어렸을 때 먹었던 음식...

근데 난 그 나라 사람이 아니다? 요즘은 해외여행에 제약이 없는 시대이니, 나 같은 경험을 갖고 있는 사람이 점점 더 많아질 것 같다.

아프면 엄마가 해주던 닭죽, 소고기죽을 찾는 것처럼 누구에게는 낯선 이국 타향의 음식을 아플 때 찾게 되는...


(커버 이미지에 적용한 탕후루 사진 출처: https://sghimages.shobserver.com/img/catch/2023/01/22/7056465c-788d-4341-994f-9f13820e3987.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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