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 많이 받으세요. 그 무엇보다 평안하시길 바라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가 되면 누구나 건네는 인사다.
복은 어디서 오고,
왜 많이 받으라고 하는 것일까?
복을 많이 받으시라고 하는 걸 보면
누군가는 많이 받고 누구는 적게 받는 것인가 보다.
세상 어딘가에서 항공기 참사가 벌어지거나 전쟁을 겪는 지역의 소식을 접하다 보면 인생이란 참 불공평하지만 어른들 말씀처럼 그런 게 바로 인생이 아닌가 싶을 때가 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데 누가 돈복이 더 많으면 누구는 질투심에 배가 아프기도 한다. 시각을 조금만 달리 해보면 내 자식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에, 부모님이 건강하게 지내시길 바라는 마음에, 내가 아끼는 사람이 잘 지내길 바라는 사랑하는 마음에서 진정으로 우러나오는 덕담을 건네는 게 우리가 사는 동네의 미덕인 것이다.
유교에서는 오복(五福)이라 하여
수(壽, 오래 사는 것)
부(富, 돈이 많아지는 것)
강녕(康寧, 육체적 정신적으로 모두 건강한 것)
유호덕(攸好德, 덕이 높고 인망이 좋은 것)
고종명(考終命, 질병이나 고통 또는 사고 없이 제 명대로 살다가 편안하게 죽는 것)을 기원하기도 했다.
참고로 오복이란,
유교 경전인 서경의 홍범편에서 제시하는 인간이 삶에서 얻을 수 있는 다섯 가지 복을 일컫는 말이다.
(출처: 나무위키)
사람들이 살아가다 보면 이런저런 일을 겪으며 살아갈 때가 참 많다. 그래서 우리 조상님들은 다섯 가지 복을 많이 받으라며 새해에 덕담을 건네곤 했던 것이다.
중국에서는 福자를 거꾸로 붙인다.
福气已到 복이 이미 왔다는 뜻에서 도착했다는 마지막 到자와 거꾸로라는 뜻의 倒가 발음이 같아 거꾸로 붙여도 똑같이 복이 들어온다는 뜻으로 사용한다.
2009년 중국신문망(中国新闻网)에 소개된 복자를 거꾸로 붙이는 민간 설화에 대하여라는 칼럼 중에서 3번째 설화를 소개해본다.
세 번째: 주원장, 마황후설
세 번째 설은 복(福) 자를 붙인 유래설화에서 비롯된 것일 가능성이 크다. 명 태조 주원장은 남경을 점령한 후, 심복들에게 자신을 지지하고 도왔던 가문의 대문에 '복' 자를 조용히 붙여두고, 다음 날 문에 '복' 자가 없는 집안을 모두 원적과 암암리에 내통하였다는 이유로 죽이도록 명하였다. 마음씨 착한 마황후는 이 상황을 알게 되자 피바람을 피하기 위해 백성들에게 명하였다. 성에 사는 모든 어른과 아이는 아침이 되기 전까지 각자 대문에 '복' 자를 붙이라고 말이다. 그리하여 각 가정은 모두 마황후의 명을 따랐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류(랴오, 廖) 씨 집안은 글을 몰라 '복' 자를 거꾸로 붙였다.
다음 날, 주원장은 어림군(御林军) 즉, 친위대에게 '복' 자가 붙지 않은 가문의 사람들을 모두 참수하라고 명령했다. 이윽고 친위대장이 온 성안에 '복'자가 붙어 있다고 보고하였다. 주원장이 부아가 치밀어올라 어쩔 줄을 몰라하던 와중에 친위대장의 보고가 이어졌다. 한 대문에 '복' 자가 거꾸로 붙었다고 말이다. 주원장은 그 말을 듣고 크게 분노하여 즉시 친위대에게 그 일가족을 남김없이 죽이라고 명령했다.
마황후는 형국이 좋지 않음을 느끼고는 급히 주원장에게 "그 일가에서는 주원장이 오늘 오실 것을 알고 일부러 '복'자를 거꾸로 붙였으니, 이는 바로 '복이 왔다'라는 뜻이 아니겠습니까?"라며 임기응변을 발휘하였고, 주원장은 그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여 생각을 바꾼 덕분에 그 일가는 큰 화를 피할 수 있었다. 그 이후로 일부 사람들은 '복' 자를 거꾸로 붙이게 되었다.
(출처:https://www.chinanews.com.cn/hwjy/news/2009/11-03/1945058.shtml)
복자를 거꾸로 붙이면 안 된다는 저자의 가르침이 무색하게도 요즘도 거꾸로 붙인다. 잉어를 잡고 있는 아가도 세트로 붙였던 동네 아주머니가 이건 철칙이라고 했던 것도 기억난다.
요즘은 정부 홈페이지에서 어디에 바로 붙이고 어디에는 거꾸로 붙이라고 가이드라인도 제시된다.
내가 지내던 심양(선양)은 1990년대 당시, 요즘처럼 국가에서 많은 주목을 받던 지역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조용히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고, 가난과 겨울은 그들의 뼛속까지 꿰뚫었다.
겨울만 되면 영하 20도는 기본이었다. 그렇게 추우니 여름, 가을에는 겨울에 입을 마오쿠毛裤라는 뜨개속바지를 뜨는 아낙들을 단지 안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형편이 좋은 집은 나름 무늬를 내기도 하고 민무늬더라고 도톰하게 완성된 바지를 보며 가족들이 따뜻하게 지낼 생각에 뿌듯해하던 동네 아주머니의 얼굴도 떠오른다. 거리에는 소달구지를 끌고 다니는 할아버지도 많았고 자동차는커녕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전거에 몸을 싣고 학교에 가고 장을 봐 집으로 돌아갔다.
잠을 청하려 누우면 다른 날에는 오후 6시만 돼도 조용하고 한산했던 거리에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폭죽을 따닥따닥 터트렸다. 어르신은 연초마다 전쟁이라도 나는 거 같은 소리에 잠을 청할 수가 없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셨다. 한 번은 나도 불을 붙이면 따닥따다다닥 거리며 연속으로 터지는 폭죽에 불을 붙이는 모습을 구경하러 나갔던 적이 있었다. 누구보다 큰 목청으로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는 모습에 동네 사람들이 재미지다며 깔깔댔다. 모두 악한 것을 몰아내고 좋은 기운이 깃들길 바라는 염원에서 시작된 전통이었다.
물만두를 슥슥 빚어 끓여내 먹으며 춘절전야제(春节联欢晚会)를 보았다. 자오번산赵本山아저씨의 희극과 사대천왕, 나잉那英 언니가 나와서 노래 부르는 걸 보면 물만두가 언제 없어졌는지도 모르게 금방 없어졌다.
그때는 저녁에 즐길 것도 없었고 전야제 프로를 가족들과 보며 지내는 게 전부였고 행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