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자살'연재중입니다._"신김치과 소주병을 벗 삼아 잠이 들었다."
회의실에 입장하자 여기저기 질서 없는 인사들이 쏟아졌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십니까? 대표님"
"좋은 아침입니다"
"안녕하십니까?"....
한 달에 한번 있는 전체 회의시간 그리 큰 규모의 회사는 아니지만 한달에 한번에야 전직원을 마주 할 수 있는 시간. 누구에게는 별 의미 없는 시간 일 수 도 있지만, 전체 회의는 반드시 필요한 형식임은 분명하다.
"광주에 윤차장은 부재중입니다."
김전무님이 사전에 협의 된 사항을 직원들 앞에서 다시 한번 언지해주었다, 직원들에게 확실한 보고 체계가 유지 되고 있다는 암묵적인 권위였으리라
"네 그럼 진행하시지요"
나의 말한마디에 기다렸다는 듯이 박부장이 서두를 열었다.
"지난 주에 H사 PT 결과 말씀 드리겠습니다. PT 결과 우리 회사가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되어 명일부터 미팅 진행 할 예정입니다."
"네 수고 많으셨습니다. 박부장님을 중심으로 모두 고생한 1팀에게 박수 한번 보내주시지요"
내가 박수를 치자 직원들도 하나 둘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난 직원들을 둘러보았다. 누군는 작지만 진심을 담은 표정으로 치는 가하면, 누구는 나와 상관 없는 듯이 무심한 박수를 치는 직원, 박수소리는 크지만 왠지모를 고까움이 담긴 박수.
내색은 하지 않지만, 작은 행동에도 경영자들은 직원들은 판단한다. 나뿐이 아니라 김전무님도 김상무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오픈은 한달 반정도에 진행 될 예정이며, 세부 사항은 별도 보고 드리겠습니다." 보고를 하는 박부장의 말에는 약간의 힘이 들어가 있었다.
난 이미 금요일에 H사 정이사에게 연락을 받은 상태였지만 따로 내색은 하지 않았다.
이어서 최차장이 말을 이었다.
"D사 사전 미팅은 참석하여 기본 자료 전달 받았습니다. 10일 후에 경쟁 PT 예정이며, 우리 회사말고도 약 4개사가 참여 예정입니다. 차질 없도록 잘 준비하겠습니다." 서둘지 않으면서 당당한 최자장의 말투는 믿음이 갔다.
"보고서 쓰느라 바쁘시겠지만 2팀도 힘내주시기 바랍니다. 이번 D사 현장은 컨디션도 좋고, 하반기에 우리의 먹거리중 중요한 시작이 될 것입니다."
"네"
2팀원들의 대답에 왠지 신뢰가 갔다.
"네 이어서 회계팀 보고 드리겠습니다."
이렇게 각 부서별 보고가 끝나고 난 직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다들 건강 유의하시고, 이번 달도 화이팅입니다."
"네"
직원들의 대답이 끝나고
"전무님 직원들에게 전달하실 말씀 있으실가요?"
"없습니다"
"상무님은?"
"없습니다."
"그럼 여기까지 하시고 전무님과 상무님은 여기서 저랑 얘기 좀 하시지요"
직원들이 하나둘 일어나 나가느라 작은 소란이 회의실을 채웠다.
"이 대리 여기 커피 세잔만 부탁할께"
직원들이 모두 빠지자 내가 입을 열었다.
"상무님 광주 시행사는 그래서 뭐라는 거예요? 하자는 거예요 말자는 거예요? 아니면 여기서 그만 핮고 해요!"
"네 얘네들이 두고 보자면 시간만 끌로 있는데, 제가 보기엔 여기서 타절하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그 때 김전무님이 말을 받았다.
"여기서 무자르듯이 자르기 보다는 번거로우시겠지만 대표님께서 저랑 직접 한 번 만나보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역시 김 전무다. 그는 손해 여부보다 인연의 소중함을 먼저 아는 사람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현장을 수주하기 위해 6개월 넘게 공들인 나로서는 이렇게 끝내기가 아쉬웠다. 내 마음을 김 전무는 읽고 있었던 것이다. 그 마음을 김전무님은 헤아리고 있었던 것이고. 그렇다고 김 상무의 판단이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 또한 그의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결정을 내린 것이다.
"그럼 일정을 보고 전무님과 제가 한번 내려가 보도록 하죠."
"네, 일정 확인 후 연락드리겠습니다."
나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이걸 어떻게 풀지...'
Time-2
잠이 오지 않았다.
소주 2병을 맥주잔에 들이키고 쉬어 꼬브라진 신김치를 빈속에 우겨 넣는대도 잠이 오지 않았다. 취기에 빗대어 잠이 들어 보려 했지만 알콜조차 나를 수면으로 이끌지 못했다. 아내와 아이는 친정으로 떠난지 일주일이 되어 가지만 연락조차 없었다. 하긴 폐인이 아닌 폐인 처럼 무기력한 모습을 보고 속이 안터지는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 거기게 '가장' 이라는 넘이 감당치 못할 빚까지 지었으니... 나 같아도 욕이라도 실컷 퍼주고 싶었겠지만, 아내는 자신의 외도를 합리화 하는 방법으로 나의 실패를 기다리고 있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아닌 것은 알고 있지만, 지금은 누구를 부정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다. 지난 시간을 몇번을 복기 하고, 결정에 대한 후회와 자책이 차오를 때쯤 누구에게라도 원망을 돌리지 않고서는 내 심장이 터져 버릴 것 같았다. 열심히 일 한 죄밖에 없다고 합리화를 시켜봐도. 원망과 합리화는 현실을 바꿀 수 없다. 죽고 싶다는 이유가 너무 많아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찾는데 하루를 모두 써야 하는 '패배자'. 패배자의 오명을 쓰느니 '죽음'이라는 탈출구를 택하고 싶지만, 그 놈의 '생존 본능'이 원망스럽다.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의 눈망울이 나의 '생존 본능'을 깨운다. '살아야 한다. 살아야 한다. 그런데 이제 어떻게? 뭘하면서 살지? 어디서 부터 시작하지?' 비틀거리며 냉장고속 소주한병을 더 꺼내어 온다. '술을 미친듯이 먹으면 '라스베가스를 떠나며'의 리콜라스 케이지 처럼 알콜 중독자로 죽을 수 있을까? 근데 이정도로는 어림도 없을 거 같은데...술을 사려면 돈이 필요하고, 돈을 벌려면 방법이 필요한데 방법을 모르겠다. 이제는 모르겠다. 젠장 그냥 잠이라도 잤으면 좋겠다. 내일은 내일이고 잠이라도 잤으면 좋겠는데 잠은 왜 안오는 거야. 아내의 그놈은 어떻게 할까? 확 죽여버리고 나도 죽을까? 그래 죽을때 죽더라도 한넘은 데리고 가야지. 근데 그러면 살인자가 되는 거잖아? 우리 가족도 우리 엄마도 아빠도, 누나도 형도 '살인자'가족이 되는 거잖아. 그러면 안되는 거...잖...아'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평소가 아니라도 아무리 취해도 불을 키고 맨바닥에서 잠든적이 한번 도 없던 내가 불이 황하게 켜진 방에서 맨바닥에 신김치과 소주병을 벗 삼아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