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한 청춘이지만

야구치 시노부 <스윙걸즈>, 2006

by 수련


모든 인간은 두 종류로 나뉜다. 스윙을 하는 자와 스윙을 하지 않는 자다.

우연히 시작하게 된 밴드부 활동을 사랑하게 된 낙제 여고생들의 '되어가는 과정'을 담은 영화 <스윙걸즈>. 영화를 다 보고 나서도 그들이 무엇이 되었다고는 말하지 못한다. 결과, 성과, 등수. 영화가 의도적으로 생략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에 '그게 그리 중요한 건 아니지.' 감독의 의도를 절로 긍정하게 된다.


아이들은 새로운 계절 겨울과 함께 '고교 음악제'라는 과제를 맞이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마지막 음악제 장면을 위해서라도 2시간을 내달릴 이유가 충분하다. 대사 한 줄 오가지 않는 긴 연주이지만, 그래서 더욱이 학생들의 눈빛과 표정에 흠뻑 빠져들 수 있다. 합주 장면 내내 괜스레 찡한 느낌이 얼굴을 감쌌다. 듣기 좋은 연주를 만들어 내기까지 어설픈 순간들을 가까이에서 공유한 친구인 것처럼.



마음에 들었던 연출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영화를 이미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작중에서 생쥐가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밴드의 주축인 다섯은 돈을 모으러 다니던 중 뜻하지 않은 포상금으로 중고 악기를 구하게 된다. 나오미가 산 낡은 드럼 탐탐 속에서 생쥐가 나오게 되니, 그게 작품에서 생쥐의 첫 등장. 예기치 못한 생명체의 등장에 다들 질겁하고 도망 다녔고, 나카무라는 “그러게 새 악기를 샀어야지”라며 핀잔을 주기도 했다.

뭇 생쥐는 문학 작품의 역사 속에서 더럽고 축축하고 어두운 이미지를 갖는다. 중세 이솝우화 <시골 쥐와 도시 쥐>를 비롯한 여러 작품은 쥐를 겁 많고 교활하거나, 약소한 존재로 그렸다. 르네상스 후기 셰익스피어의 <햄릿>에서는 햄릿이 “A rat!”이라 외치며 커튼 뒤 폴로니우스를 찌르는데, 이 또한 쥐를 비열하고 숨은 존재로 은유하여 나타낸 예이다. 근대 러시아 문학으로 넘어와 옙스키의 <지하생활자의 수기>에서는 화자가 자신을 쥐에 비유하며 비굴하고 자기 파괴적인 인간을 묘사했다.


그러나 말하자면 <스윙걸즈>는 배우로서 생쥐의 이미지 변신인 셈. 후반부로 갈수록 생쥐가 이들에게 의도지 않게 중요한 조력자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생쥐가 요시에의 트럼펫에서 나와 애를 먹던 고음 파트를 성공시키는 장면, 생쥐를 행운의 상징으로 여겨 음악제에서 쓸 오마모리로 만드는 장면이 필자에게 꼽히는 가장 사랑스러운 장면이기도 하다.



낡고 때 딴 악기만이 보여주는 것이 있으니 바로 청춘들의 순수한 열정과 패기이다. 감독은 생쥐와 요시에를 엉뚱하지만 보고 있으면 사랑스러운 관계로 그리면서, 아무리 낡고 하찮은 것도 낭만으로 치환할 수 있는 것이 청춘이라고 말한다.


영화는 토모코 양의 얼굴로 끝이 난다. 으레 고교 음악제라면 ‘그래서 몇 등 했을까?’라는 순수한 물음이 따라오게 마련이지만, 이 영화는 그런 결말에는 저편에 둔다. 대신에 밴드 동아리에서 쫓겨나게 된 날엔 울음이 터졌고, 중고 악기를 사기 위해 두 발로 달렸고,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합주 연습을 했던 순수한 열정에 박수를 보낸다. 그런 장면 장면을 함께해서인지 다소 극적인 설정과 전개에도 모든 일이 더 좋은 쪽으로 흘러가길 내심 소망하게 되는 걸지도 모르겠다.


네 줄 남짓의 아주 작은 독립영화관에서 이 영활 보았는데, 유쾌한 연출과 배우들의 발랄함 덕분에 소박한 공간이 내내 훈훈했다. 시간이 지나도 혼자 몇 번 꺼내어 볼 듯한 작품이지만 첫 상영을 극장에서 함께하길 참 잘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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