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쏨땀 같은 나의 방콕 생활

EP. 4 갑자기 찾아온 통역사의 삶

by sommeil

언제였던가… 너무 오래전이라 잠자던 기억을 조심스레 끄집어내 본다.

내가 둘째 아들을 임신 중이던 때였던 걸로 기억된다. 대략 7-8개월쯤..


당시 시아버님은 태국 방콕에 오래 거주하셨고 한인회 일도 오래 하셔서 아는 지인들이 많으셔서 갑작스럽게 통역 부탁을 받게 되셨다.

그것은 FAO(Food and Agriculture Organization)라는 유엔 식량 농업 기구에 관련되어 한국 담당자분이 태국 지방에 있는 농촌을 방문하는 일이었다. 당시 그분은 아버님의 며느리였던 내가 태국대사관에 근무했다는 내용을 아시고 아버님을 통해 통역 부탁을 하신 거였다.




아시다시피 통역은 그 분야 관련의 사전 지식이 없으면 대화하기가 굉장히 어려운 분야이다. 하지만 그때 나로서는 시아버님의 첫 부탁(?!)을 거절할 수 없는 며느리의 첫 미션이었다.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은 나는 예상대로 거의 말을 못 하고 한국 담당자분이 영어로 태국 담당자와 대화를 해서 방문 업무는 어떻게 해서 마무리는 되었다.


나는 매우 상기된 얼굴로 그 자리를 얼른 뜨고 싶었고 제 역할을 못 해냈다는 자괴감이 너무 컸었다. 하지만 한국 담당자분은 내게는 첫 통역 업무이고 아버님과의 관계 때문인지 별말씀을 안 하셨던 걸로 기억한다.

그 이후로도 아버님 학교 은사님이 인삼사업을 하신다고 태국어 번역 부탁을 하신 경우도 있었고 고맙다는 표시로 인삼을 선물 받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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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식으로 몇 차례 번역이나 통역을 시작으로 어느덧 20년 이상된 통역사가 되었고 당시 내 나이 32살이었다.

주로 코트라((KOTRA:대한무역진흥공사)의 시장개척단으로 현지 태국에 진출하려는 많은 중소기업체들의 수출 관련 통역이 나의 주요 업무였다. 대개 도 단위나 시 단위로(예:인천, 대구, 경북 등) 10여 개 중소기업 대표나 담당자들과 하루 또는 이틀을 태국 바이어를 현지 호텔로 초청하여 수출 관련 제품을 소개하고 홍보하는 일종의 1일 해외 영업사원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아이템(제품)은 다양했다. 식품, 화장품, 기계, 시스템, IT 관련 등등.


통역이 들어오면 담당업체 자료를 통역하기 몇 주전 혹은 며칠 전에 메일을 통해 받는다. 그러면 그것을 영어, 태국어로 미리 관련 용어를 숙지하고 행사 당일 호텔에서 업체 대표를 만나면 제품에 대한 내용을 다시 확인하고 대표가 하고자 하는 말을 태국어로 통역하여 바이어에게 제품에 대한 소개, 가격, 주문 시 최소 수량 등을 협의하는 무역 통역을 하는 것이다.

종종 정부 부처 공무원들의 수행 통역 및 회의 통역을 한 적이 있었는데 의전이 항상 수반되다 보니 신경 쓸 것도 많고 의뢰하는 담당자로부터 나 자신까지 공무원 같은 역할을 기대하다 보니 공무원 관련 통역은 40대 초반까지만 했었다. 정부 부처 관련 통역은 예정에 없던 일들도 많이 생겨나고 회의에 들어가면 그들이 준비한 프레젠테이션도 통역을 해야 하기 때문에 몇 배 더 어렵고 힘든 작업이었다.




이제는 50대 중반이라서 나에게 맞는 업무 라던지 통역사를 섭외하는 수행사 대표분, 코트라와 같은 수출 관련 기업, 지방 자치단체 기관 등 관련 관계자분들 과의 친분이나 관계 때문에 업무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다.


사람 일은 정말 모를 일이다.


사실 남편과 결혼해서 태국에 온 것도 비서업무, 외국인들 과의 소통이 어려워서 이렇게 멀리 시집을 왔건만 다시 일을 하게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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