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5 통역의 허와 실
통역은 참 어렵다.
남들은 그저 멋지다고 말하지만 보이는 것과는 다르게 많은 것을 신경 쓰고 준비해야 하는 힘든 직업이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예상치도 못한 상황이 생기는 경우도 있고 통역하는 대상이나 분위기에 따라 눈치껏 대처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통역은 집중력, 순발력, 정확성, 통찰력이 필요하다.
화자(말하는 사람)의 내용을 놓치지 않고 듣고 중요한 단어는 기억하거나 메모해야 한다. 집중하지 않으면 흐름을 놓치게 되고 그러면 불상사가 생길 수 있다.
계속 집중하고 긴장을 놓치면 안 되기 때문에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래서 통역이 끝나면 아무런 말도 하고 싶지 않고 한동안 뇌를 릴랙스 할 휴식 시간이 필요하다.(다른 사람은 어땠는지 몰라도 내 경우는 그랬다.)
그래서 두서없이 장황하게 설명하는 화자의 통역을 가장 극혐 한다. 통역사의 생각은 어디에도 없고 그저 화자의 의견을 그대로 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내용을 들으면 확실히 이해하고 이해를 완전히 못했을 때는 화자(말하는 사람)에게 내용을 확인한 후 통역을 이어가는 게 올바른 방법이다. 왜냐하면 잘못 이해한 것을 그대로 통역하면 내용이 산으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확하게 전달해야 한다.
전체적인 내용의 흐름을 파악하고 어떤 식으로 매끄럽게 통역할 수 있는지 파악하는 통찰력이 필요하다.
예전에 현지에서 대학을 졸업한 친구가 통역사로 나온 적이 있었다. 영어, 태국어가 완벽하다고 들었다.
그런데 코트라 무역 사절단 행사였는데 행사가 다 끝났는데도 미팅 테이블에 앉아 뭔가 계속 끄적이고 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번역앱으로 본인의 적은 통역 내용(영문으로 작성된)을 한글로 번역하여 적는 중이었다.
(코트라 무역사절단 행사는 항상 통역사가 통역 내용을 리포트로 제출해야 한다.)
간혹 현지에서 대학을 나오고 어릴 때부터 현지 학교나 국제학교를 나온 사람들은 한국어가 서툰 경우가 있다.
한국어는 한자를 기반으로 한 단어가 많아서 요즘 친구들처럼 한자를 학교에서 따로 배우지 않은 친구들은 한글의 어려운 단어들을 모르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통역 내용을 리포트로 작성할 때 애를 먹는다.
통역은 한국어도 잘 이해하고 전달해야 한다.
통역은 화자(말하는 사람)와 청자(듣는 사람)의 소통이다. 화자의 뜻, 의도, 내용을 빨리 파악하고 바로 전달해야 하는 어려운 작업이다. 다양한 경험과 여러 가지 상황을 접해야만 실수하지 않는다. 긴장하는 순간 아는 단어도 생각이 안 나고 멘붕에 빠질 수 있다. 그래서 준비가 충분해야 실수하지 않고 원활하게 통역할 수 있다.
나는 주로 무역 통역을 한다. 식품, 화장품, 기계, 설비, 화학, IT 분야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기업 대표님들과 일한다. 통역으로 섭외가 되면 섭외한 수행사 측에서 행사 일정 및 담당 업체 자료를 보내준다.
그럼 행사 당일 전까지 제품에 대한 내용을 모두 숙지해야 한다.
화장품이나 식품업체인 경우는 크게 어려운 단어가 없지만 기계나 화학 전문 분야 등 제조 업체인 경우 제품에 대하여 충분히 이해해야 통역할 때 실수가 없다.
예를 들면 펌프나 밸브 관련 제조업체인 경우 비즈니스 미팅을 할 때 바이어는 현지 유통사인 경우가 많아서 그쪽 분야 관련 용어를 영어나 태국어로 쉽게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통역을 하는 내가 그 단어를 모르면 전혀 통역을 할 수 없기 때문에 통역하려는 업체의 전반적인 내용을 자세하게 다 공부하고 미팅에 참여해야 한다.
특히 자료가 적을 경우는 실수할 확률이 높기 때문에 더더욱 다양한 자료들을 충분히 확보하는 것이 통역의 가장 기본이다. 왜냐하면 그들은(담당업체와 바이어) 관련 분야 업무를 적어도 4-5년 이상 해온 사람들로 대화를 알아들으려면 충분히 숙지하고 공부해야 한다.
간혹 자료가 준비되지 않는 경우도 있고 자료가 충분치 않을 정도로 아주 영세한 소기업이 수출을 목적으로 나오는 경우도 있는데 그럴 때는 참 난감하다. 국내에서 매출에 성공해도 해외로 수출하기가 정말 어려운데 일단 수출에 도전하려는 취지는 좋지만 너무도 사전 준비 없이 나오는 기업 대표분들도 더러 있었다.(물론 극히 일부 기업에만 해당된다.)
혹시 해외로 수출을 꿈꾸는 분들이 계시다면 시장조사 및 사전에 충분한 준비를 해주시길 부탁드린다.
사실 한국은 천연자원이 그리 풍부하지 않아 수출을 해야만 하는 무역 국가이다. 중국이나 인도처럼 내수시장이 경제를 살릴 수 있을 정도로 큰 경제 규모를 가진 것도 아니기 때문에 무역에 더 중점을 둬야 한다. 동남아시장을 쉽게 보고 접근한다면 큰 낭패를 볼 수도 있다는 점을 꼭 알려드리고 싶다. 그들의 문화, 언어를 먼저 이해하고 좀 더 유연한 사고로 태국 사회를 바라본다면 비즈니스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