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6 통역 에피소드 1
전에 농업 관련 산업 박람회를 나간 적이 있었다. 내가 통역한 업체는 과일이나 채소 건조기를 생산 유통하는 업체였다. 박람회도 처음 참여한 분이셨고 태국에도 처음 오셨다고 하셨다. 그분은 행사 기간 내내 마음에 안 드는 점이 많았는지 계속 불만을 토로하셨다.
일단 ‘한국관’이라고 정해진 박람회 위치부터 마음에 안 든다고 하셨고 (전시회 부스 위치가 입구 구석 쪽 제일 뒤에 위치해 있었다.) 그래서인지 담당 통역인 내가 처음 인사를 드릴 때도 시큰둥해 있었다.
그래도 나는 일하러 나온 만큼 지나가는 바이어들이 관심을 가지고 제품을 보면 성심성의껏 태국어나 영어로 설명을 했다.
행사는 3일 동안 진행되었고 행사 첫날 오후쯤 한 태국 직원이 우리 제품에 관심을 보여서 이것저것을 질문했다. 당시 시연한 건조기는 기계가 작동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대표님이 한국에서 대추를 가져와 시연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 태국 직원은 내 설명을 자세히 듣더니 잘 알겠다고 하면서 자기 회사 대표에게 잘 말해보겠다고 하고 자리를 떠났다.
다음날 오후쯤 또 다른 태국 바이어가 와서 제품에 대하여 설명해 달라고 하였고 난 성심성의껏 설명해 드렸다. 전시회 부스 위치가 뒤쪽이라 제품에 대하여 물어보는 바이어들도 많지 않아서 더 열심히 설명을 했었다. 한참 설명을 하는데 바이어분이 어제 자기 회사 직원이 와서 한국의 좋은 제품을 보고 왔었다는 얘기를 듣고 방문한 거라고 하면서 본인의 명함을 줬는데 대표였다. 그는 건조기에 놓인 과일 이름이 뭔지 물어보았다. 나는 태국어로 ‘대추’라고 소개를 했고 잘 알겠다면서 그 바이어는 자리를 떠났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일이면 일이 끝나겠구나 하면서 불만 많으신 업체 대표님과 잘 마무리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행사 3일째 마지막 날에 어제 오셨던 바이어 대표분이 검은 슈트를 입은 어느 태국분과 같이 우리 부스를 또 방문해 주셨다. 알고 보니 검은색 슈트를 입은 분은 관세청 소속(수입통관 관련) 고위 공무원이었다. 태국 바이어 대표는 연신 자세를 낮추며 내가 어제 설명한 내용을 그대로 그 공무원에게 설명하고 있었다.
결국 내용을 다 듣고 나서 공무원분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난 바로 이해가 되었다. 아무리 제품이 마음에 들어도 수입통관이 되지 않으면 유통을 할 수 없어서 그 공무원의 허가가 필요했던 것이었다. 잠시 뒤 바이어 대표는 건조기를 구매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한국 업체 대표님은 갑자기 환하게 웃으셨다. 결국 전시용 샘플 가격으로 그 자리에서 결제가 이뤄졌고 바이어 대표는 바로 전화해서 직원을 불러 제품을 싣고 떠났다.
행사 종료 2시간 전쯤이었던 거 같다. 업체 대표는 잠시 어디 좀 다녀오겠다 하면서 행사 밖에서 팔던 태국 과일, 사탕 등을 사 오더니 나를 부르면서 같이 먹자고 하셨다. 그러면서 태국 과일이 참 맛있다고 정말 환하게 웃으면서 행사를 마쳤던 기억이 있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어떤 환경 속에서도 성실히 임하면 진실은 통한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그날 참 운이 좋았고 사실 산업 박람회에서 샘플 구매를 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제품에 대하여 어떻게 설명하느냐도 참 중요하다고 느꼈다. 그 이후에 다른 포장 전시회에서도 샘플을 판매한 적이 있었고 나름 보람을 느끼면서 즐겁게 일했다.
운은 어디서 터질지 모른다. 하지만 항상 그 자리에서 꾸준히 하다 보면 이런 일들도 종종 생기는 거 같았다.
그 후로 다른 대표님들이 소개해주시고 그것이 연결이 되어 많은 대표님들과 다양한 업종에서 함께 일을 하게 되었다.
이제까지 일하면서 가장 뿌듯한 때는 내가 통역했던 제품을 일반 소비자로서 태국 마트나 백화점 같은 매대에서 만났을 때이다. 그럼 왠지 반갑고 기분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