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쏨땀 같은 나의 방콕 생활

EP. 8 통역 에피소드 3

by sommeil

예전에 숙취해소제를 생산하는 제약회사 대표님을 통역한 적이 있었다. 그분은 연세가 70이 넘으셨고 미국에서 박사학위까지 받으신 엘리트 이셨다. 처음에 나는 나이가 드신 분이라 부담이 됐었는데 의외로 오픈 마인드에 영어도 잘하시는 분이셨다. 나는 대표님과 얘기를 나누다가 어떻게 제품을 직접 연구 개발하셨는지 여쭤봤고 대표님은 제품에 대하여 자세하게 설명해 주셨다.





무역 통역 행사는 보통 아침 9시에서 저녁 6시까지 호텔 볼룸에서 8-10개 정도의 비즈니스 미팅을 하게 된다. (간혹 큰 바이어들은 직접 가서 회사를 방문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초대된 바이어들은 대부분 현지 유통업체들이고 간혹 수입도 겸하는 유통업체, 제조 유통업체, 소매 유통업체, 도매 유통업체, 원료 수입업체 등 다양하다. 바이어들은 태국인이 대부분이지만 간혹 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이나 한국인들도 있다. 태국인 바이어 중에서 주로 대표나 이사급들은 영어로 대화가 가능하기 때문에 통역사를 거치지 않고 직접 미팅을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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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도 제약회사 대표님과 바이어 미팅이 있었을 때 나는 바이어가 영어가 가능한지 물었고 대략 5-6개 바이어들은 대표님과 영어로 미팅이 진행되었고 나는 리포트만 작성하면 됐었다. 그래서 그날 나는 퇴근 후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이렇게 영어를 잘하는 대표님이나 바이어로 한국인이 오실 때는 잠시 쉬어갈 수 있었다.

그렇게 운 좋은 날들도 가끔씩 있었다.




간혹 대표님들 중에 영어로 대화가 가능하더라도 통역사를 통해 소통하기를 바라는 경우도 있고 본인이 직접 영어로 미팅에 참여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바이어들 중에서 영어가 가능한 경우는 대부분 현지 업체 대표나 이사급들이며 그런 경우에는 통역사는 미팅 내용을 듣고 리포트만 작성하면 된다. 일반적으로 통역사는 단순히 소통만 하는 것이 아니고 미팅한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리포트로 작성해야 한다. 관심 있는 제품이 뭔지, 어떤 방식으로 유통하는 중인지, 1년 거래량은 어떻게 되는지 등등 자세한 사항들을 기재하게 된다. 비록 직접 통역을 하지 않는 경우라도 대표와 바이어의 상담 내용을 듣고 정리해서 리포트를 작성해야 한다.

후에 바이어나 한국업체 대표들을 통해 그날의 통역사의 태도, 통역 능력 등을 평가받고 추후 다음 통역으로 섭외될 때 피드백으로 작용한다. 그래서 통역할 때는 모든 상황을 평가하므로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한 번은 대구에서 안경제조업체 대표님 통역을 하게 되었는데 대표님이 원하시는 스타일대로 리포트를 작성하고 성심성의껏 통역해 드린 적이 있었는데 미팅이 종료되고 귀국 후에 고맙다는 편지와 우리 가족 안경테를 방콕으로 보내주신 적도 있었다.

그 외에도 레토르트 즉석식품을 제조 유통하는 대표님 통역을 했었는데 재품이 모두 꼬리곰탕, 갈비탕 등 소고기 위주의 제품이었다. 나는 바이어와 미팅하기에 앞서 태국 식품시장 동향이 돼지고기, 닭고기 위주라서 소고기 제품은 시장성이 낮을 거라고 말씀드렸고 몇 개 큰 태국 식품 유통업체를 알려 드렸다. 그러자 대표님은 서울에 있는 친정, 시댁 주소를 물으셨고 바로 한국에 있는 직원에게 전화를 걸어 갈비탕 1 박스씩 보내주신 경우도 있었다. 그 밖에도 화장품 업체 통역을 했을 때는 대부분 샘플로 가져오신 제품들을 선물로 주시는 경우가 많았다.





다양한 산업에서 통역은 남들이 쉽게 접해보지 못하는 분야의 내용들을 가까이서 배울 수 있고 공부한 만큼 새로운 지식도 쌓을 수 있다. 그러므로 통역을 통해서 가격 협상하는 방법, 제품의 성분, 유통 채널 등도 많이 알게 되었고 태국에서 원하는 제품 스타일과 전반적인 태국 시장 동향도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었다.


통역은 디테일이 필요한 고도의 서비스 직업이다.

말하려는 사람의 의도, 방향성, 생각 등을 짧은 시간 안에 전달해야 하는 직업이다. 혹시 통역사가 되길 바라는 분이 계시다면 외국어보다 한국어 표현에 더 중점을 두고 공부하시길 부탁드린다.

통역은 항상 새로운 분야의 새로운 언어를 배워 계속 업데이트해 주어야만 한다. 통역은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길 희망하고 새로운 걸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적극 추천하고 싶은 직업이다.




이제는 중년이 되어 그동안 현장에서 느끼고 배워온 이 소중한 경험들을 ‘브런치’를 통해서 나의 이야기로 소개할 수 있게 되어 너무나 즐겁고 기쁘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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