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온 지 1주일 됐다.
오랜만에 애들 모두 출근하고 막내까지 아르바이트를 가서 조용히 집에 혼자 있다.
몇 시간 전 동네 미용실에서 파마를 하고 왔다.
혼자 있으니 어제 둘째와 함께 보낸 시간들이 떠올랐다.
어제 둘째가 미용실에 내 파마 예약을 해주었다.
나는 어제 둘째와 데이트를 했다. 얼마 전에 취업한 둘째가 쉬는 날이라서 내 옷을 사주겠다고 쇼핑을 했다. 옷을 쇼핑하기 전에는 둘째가 병원에 갈 일이 있어서 함께 가주었다. 병원에서 시간이 지체되어서 내 옷 쇼핑 시간은 자연스레 줄어들었다.
그래도 아들이랑 데이트하는 것 자체가 즐거웠다.
우리는 을지로 롯데 백화점 여성 패션매장을 구경했다.
아들 말이 백화점에서는 구경만 하고 핏이나 스타일을 참고하고 온라인으로 구매하자고 했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그렇게 하는 게 더 합리적으로 생각되었다.
아들이 진료를 받던 병원은 강남이었는데 옷은 성수동이나 백화점에서 사주고 싶다고 해서 지하철로 을지로 롯데 백화점을 가기로 했다. 생각보다 이동시간도 오래 걸렸고 백화점 마감시간 1시간 30분 전에 도착해서 구경할 시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았다.
쇼핑 후에 집으로의 이동 시간을 줄이기 위해 을지로 롯데백화점으로 정했다. 나름 재밌게 구경했고 지하 식당가도 구경했다.
집에 가기 위해 버스를 탔다. 그런데 방향을 반대로 타서 우리는 남산 터널을 지나 이태원 쪽에서 내렸다.
다시 반대편에서 내려 종로 방향으로 버스를 타다가 둘째가 간단히 한잔만 하자고 해서 종로 1가에서 다시 내렸다. 저녁 8시가 지난 시간이라서 주변에는 포장마차와 술집들에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술 생각은 없었는데 둘째가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아 길가 중앙에 노천에 있는 빨간 천막의 포장마차에 들어갔다.
우리는 오징어 숙회에 소주 1병을 시켰다. 처음엔 말없이 소주잔을 기울이다가 둘째가 갑자기 말을 꺼냈다. 군대 전역하고 대학교 2학년 1학기때 너무너무 힘들었다고. 적성에도 맞지 않는 공부에 학교친구도 없어서 엄마에게 자주 전화했었다고. 나도 기억이 났다.
평소 말이 별로 없는 둘째가 자주 전화를 걸어왔다.
학교를 휴학하겠다고. 공부가 잘 맞지 않는다고.
그 이후 둘째는 휴학을 하고 계속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그러다가 우리나라 5성급 호텔에서 근무도 했었다.
하지만 휴학생이라서 정규직으로의 전환이 어려웠고
근로 환경이 좋지 못해 결국 몇 달 만에 그만두었다.
그때가 내가 서울에 들어왔던 기간이었고 내가 출국하면서 다시 백수가 되었다.
그러고 나서 몇 개월을 폐인처럼 사람도 안 만나고 친구들과도 연락을 끊고 3-4개월을 지냈단다. 잠시 안 좋은 생각도 했었다고 고백을 했다. 당시 친한 친구가 그런 둘째 모습이 안타까워서 친누나 직장에 아르바이트로 둘째를 취업시켰다.
소주를 마시면서 그때 그 친구가 자기를 구해줬다고 말했다. 얘기를 듣던 나는 안타까움을 숨길 수 없었다.
혹여 앞으로 있어선 안 되겠지만 어려운 일이 생기면 반드시 엄마한테 말하라고. 어떤 얘기도 상관없다고
안심시켜 주었다.
친구가 소개한 아르바이트 일은 거의 1년 가까이 다니게 되었고 나는 다른 학교라도 편입하길 원했지만 둘째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나는 지난 4월에 서울에 왔을 때 둘째에게 조심스럽게
아르바이트가 아닌 취업을 알아보라고 했었다.
아들은 내 말대로 ’ 사람인‘에 이력서를 올렸고 지금의
글로벌 명품브랜드에서 이력서를 보고 연락이 왔다.
1차 본사 면접, 2차 지점 면접을 넘어 최종 합격을 했다.
아들은 지금 새 직장을 다닌 지 3개월 차다.
곧 워크숍을 간다고 했다. 나랑 한잔 하자고 말한 것도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얘기하고 싶었었나 보다.
항상 둘째를 보면 많이 안타까웠고 힘들어 보였다.
하지만 어떠한 위로의 말도 조언도 할 수 없었다.
둘째에게 상처가 될까 봐 기다리고 또 기다려 주었다.
호텔 면접을 봤을 때도, 지금의 직장 면접을 봤을 때도 나는 둘째를 항상 응원했다.
“ 잘할 거야, 걱정 마.
너 원래 하던 대로 해 “
둘째는 결국 해냈다.
본인도 지금의 직장을 만족스러워하고 감사히 생각한다.
고마웠다.
그동안 힘들었던 거 잘 버텨주어서.
우리는 간단히 소주 1병을 먹고 바로 일어났다.
둘째와의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래도 엄마에게 가감 없이 얘기해 주니 고마웠다.
버스를 타고 집에 오니 밤 10시가 넘었다.
아들이 집에 도착하면서 말했다.
“오늘 알차게 잘 보냈네.
엄마랑 술 한잔도 하고. ㅎㅎㅎ“
나도 미소가 절로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