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스 베크만, 색소폰이 있는 정물화 (1926)
<여행지에서 만난 그림 한 점>
- 작품명 : 색소폰이 있는 정물화 (Still Life with Saxophones)
- 작가 : 막스 베크만 (Max Beckmann)
- 제작시기 : 1926년
- 전시장소 : 프랑크푸르트 슈테델 미술관
막스 베크만은 독일 어느 미술관을 가든 거의 빠짐없이 만나게 되는 화가다. 그런데 가는 곳마다 그의 화풍은 조금씩 변한다. 어느 곳에서는 매우 거칠고 검정색 선이 진하게 두드러지는 것이 마치 스테인드글라스를 보는 듯하고, 어느 곳에서는 팝아트를 보는 듯하며, 어느 곳에서는 에두아르 마네를 연상케하는 인상주의 화풍이 엿보이고, 어느 곳에서는 세잔을 연상케 하는 원근과 입체의 해체가 느껴지기도 하다.
마치 마음만 먹으면 뭐든 할 수 있다는 듯, 활동 시기 내내 다양한 변주로 독특한 걸작을 만들고 명성을 얻었으나, 나치 집권기에 "퇴폐화가"로 찍혀 탄압받다가 미국으로 망명한 파란만장한 일대기만큼 그의 작품은 다채롭다. 그리고 <색소폰이 있는 정물화>는 그의 전성기라 할 수 있는 1920년대의 밝고 유쾌한 에너지가 인상적인 작품이다.
먼저 고백한다. 내 취향이 이런 쪽이다. 콘에 깔린 채 "Hi~"하는 무언가에 꽂혔다. 나중에 알고보니 인형이란다. 여기서부터 시선을 주변으로 넓히다보니 악기와 갖가지 사물이 눈에 들어온다.
악기는 물론 (제목에서 알려주듯) 색소폰이다. 또한, 받침대 혹은 의자, 테이블, 화병 등 정물화에 으레 등장하는 기본적인 사물이 배치하고 있다. 이들은 딱 봐도 원근감이 해체된 것 같다. 악기에 비친 명암도 방향이 다르다. 마치 세잔이 그러했듯, 다른 시선에서 포착한 사물을 한 화면에 늘어뜨려 어색한 하모니를 추구하는 듯한 의도를 느낄 수 있다.
멀리서 보니 그림 속 사물은 "쌍"을 이룬다. 색소폰도 2개, 오보에(로 보이는 무엇)도 2개, 악보도 2묶음, 악기를 올려놓은 것도 2개, 세로 방향으로 세워진 사물도 2개, 거기에 깔리거나 바닥에 놓인 얼굴도 2개, 화병과 그늘 속 잎파리까지 모든 것이 한 쌍이다.
그런데 쌍을 이루지만 무엇 하나 통일성이 없다. 악기의 색상도 다르고, 놓여진 곳의 형태도 다르고, 깔린 것의 형태도 다르다. 마치 전혀 다른 "한 세트"가 쌍을 이루어 하나의 하모니를 이루는 것이, 불협화음으로 하나의 악곡을 완성하는 재즈와 결이 같다.
그리고 그림의 주인공인 색소폰에는 각각 글귀가 적혀있다. 한쪽에는 BAR AFRICAN, 한쪽에는 ON NEW YORK. 여기서 BAR AFRICAN은 당시 프랑크푸르트에 실존한 재즈클럽 이름이라고 하고, ON NEW YORK은 재즈가 한창 유행한 미국의 중심도시다. 막스 베크만은 명백히 재즈를 표현하고자 한 것이고, 재즈의 중요한 캐릭터라 할 수 있는 불협화음을 그림 속에서 구현한 것으로 이해된다.
막스 베크만은 이 작품을 완성한 뒤 아내에게 "내 그림에서 음악 소리가 들리니?"라고 서신을 보냈다고 한다. 몹시 그렇다고 답해주고 싶다.
<여행지에서 만난 그림 한 점>
미술에 문외한인 여행작가가 여행 중 만난 미술 작품을 이야기하는 코너입니다. 어느날은 길게, 어느날은 짧게, 어느날은 비평으로, 어느날은 감상으로, 하여튼 미술을 말합니다.
(매주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