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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파스텔이라고요?

장에티엔 리오타르, 초콜릿 걸 (1743-1744)

by 유상현 Mar 12. 2025

<여행지에서 만난 그림 한 점>

- 작품명 : 초콜릿 걸 (The Chocolate Girl)

- 작가 : 장에티엔 리오타르 (Jean-Étienne Liotard)

- 제작시기 : 1743-1744년

- 전시장소 : 드레스덴 옛거장의 회화관


브런치 글 이미지 1

깔끔하게 차려입은 하녀가 쟁반을 들고 있는 그림. 여기까지는 크게 대단치 않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작품 설명을 보니 유화가 아니라 파스텔화라고 한다. 내가 국민학교그때엔 초등학교가 아니었다 다닐 때나 만져보았던 파스텔로 이런 세심한 표현이 가능하다는 것에 놀랐다.


스위스(당시 제네바 공화국) 출신으로 영국, 프랑스, 오스트리아, 터키 등 유럽 전역을 다니며 커리어를 쌓은 화가 장에티엔 리오타르는, 그 당시 한창 유럽 미술계에서 반짝 유행한 파스텔을 능수능란하게 활용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파스텔은 정교하고 세밀한 표현이 어렵고, 완성한 뒤에도 보관이 까다로운 편이다. 그런 재료로 유화에 뒤지지 않는 완성도를 보여준 리오타르였으니 당시 명성이 높았다. 한창 로코코가 유행하던 시기, 그러니까 화사하고 화려한 것을 선호하던 시기였기에 파스텔의 물성이 시대상에도 잘 어울렸다.


브런치 글 이미지 2

작품 속에서 하녀가 들고 있는 것은 초콜릿(핫초코)이다. 당시 초콜릿은 뜨거운 액체 형태이므로 쏟아지지 않게 일종의 컵홀더 역할을 하는 유리 받침에 컵을 담아 제공했다고 한다. 또한, '다크' 초콜릿의 쓴 맛을 헹구고자 물을 함께 제공했다고 한다.


리오타르는 이러한 당대의 풍습을 화폭에 담아 도자기 컵과 유리컵의 질감 및 빛 반사까지 정밀하게 표현함은 물론, 물컵 뒤로 손이 굴절되어 비치는 모습, 쟁반에 손가락과 접시가 반사되는 모습, 초콜릿 위에 생겨난 거품 등을 깨알같이 담아냈다. 이처럼 세밀한 표현은, 미술관에서 적당한 거리를 두고 관람하는 사람에게는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깨알 같다. 모니터로 크게 확대해야 눈에 들어오는 장치들을 파스텔로 정밀하게 표현한 것이다.


이 작품을 그릴 당시 그는 비엔나에 머물고 있었다. 18세기 초 비엔나의 호사스로운 귀족 문화의 일면이 담겨 있는 그림이며, 컵의 문양과 '발 달린' 쟁반 등 동양의 문화가 비엔나 상류층에서 소비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브런치 글 이미지 3

하녀의 표현도 섬세하기는 마찬가지다. 머리 장식의 레이스 무늬까지도, 그 아래로 살짝 드러난 머리카락까지도, 몹시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에 비해 배경은 모노톤으로 단순한데, 당시 귀족의 저택에는 일반적으로 하녀가 출입하는 복도를 따로 분리해두었다고 하니, 이 또한 하녀를 모델로 하는 작품으로서 사실적인 묘사라 할 수 있겠다. 나아가서, 모노톤의 흐릿한 배경에서도 은은히 드러나는 그림자와 명암을 통해 모델에 집중할 수 있는 몰입감을 준다는 것도 인상적이다.




<여행지에서 만난 그림 한 점>

미술에 문외한인 여행작가가 여행 중 만난 미술 작품을 이야기하는 코너입니다. 어느날은 길게, 어느날은 짧게, 어느날은 비평으로, 어느날은 감상으로, 하여튼 미술을 말합니다.

(매주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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