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드 모네, 야외 인물화 테스트 (1886)
<여행지에서 만난 그림 한 점>
- 작품명 : 야외 인물화 습작 (Essai de figure en plein-air)
- 작가 : 클로드 모네 (Claude Monet)
- 제작시기 : 1886년
- 전시장소 : 파리 오르세 미술관
클로드 모네는 워낙 다작의 화신인지라 교과서에 실릴 만한 명작도 많이 남겼다. 그 중 하나가 <파라솔을 든 여인>인데, 모네가 양산(파라솔)을 쓴 자신의 아내 카미유와 아들 장을 그린 실외 인물화다. 모네가 첫 전시회에서 <인상, 해돋이>로 센세이션(물론 기존 미술계의 부정적인 반응이 컸으나)을 일으킨 1872년 이후에도 여전히 가난한 화가로 실외에서 빛과 그림자를 쫓던 1875년에 그린 작품이었다.
다행히 부유한 사업가 오슈데(Ernest Hoschedé)의 도움으로 살 집을 얻고 그림도 그렸지만, 수많은 작품의 모델이 되어주었던 아내 카미유를 사별한다. 설상가상으로 오슈데의 사업도 파산해 어디론가 잠적해버리고, 오슈데의 아내가 모네와 자녀들을 거두어 함께 살게 된다. 사실상 모네의 두 번째 부인이 된 알리체는 그동안 관계를 맺었던 상류층 사람들에게 모네를 소개하고 그림을 팔도록 도왔다. 지베르니에 정착한 모네는 화가로서의 명성이 높아지고 경제적으로도 안정을 이루게 된다.
첫 아내 카미유가 무수한 작품의 모델이 되어준 것과 달리 알리체는 모델이 되기를 싫어했다. 그 대신 알리체의 딸(모네의 의붓딸) 수잔 오슈데가 그 역할을 맡았다. 1886년, 모네는 두 점의 연작을 완성했다. 같은 장소에서 수잔을 그렸는데, 한 번은 왼쪽 얼굴이, 한 번은 오른쪽 얼굴이 보이는 방향으로 포즈를 바꾸었다. 두 작품에서 수잔은 양산을 들고 포즈를 취한다. 마치 11년 전 아내 카미유가 그러했듯이.
모네는 이 작품에 제대로 된 제목을 붙이지 않고 <야외 인물화 테스트>라고 명명했다. 일단 제목에서 테스트(습작)라고 규정한 것을 보면 누군가의 의뢰를 받거나 전시회에 출품하려 만든 정식 작품이 아닌 건 분명하다. 이 시기 모네는 인물화보다 풍경화 위주로 커리어를 이어갔으며, 훗날 <수련> 시리즈가 등장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시선은 시시각각 다른 색조를 포용하는 대자연의 일부를 화폭에 옮기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그랬던 모네가 야외에서 인물화를 제대로 그려보려고 수잔에게 포즈를 부탁한 모양이다. 먼저 저쪽을 바라봐, 이번엔 이쪽을 바라봐, 그렇게 포즈를 주문하면서 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들판에서 열심히 붓을 놀렸을 것이다. 모델인 수잔의 얼굴은 이목구비가 매우 흐릿하여 형체를 알아보기는 어렵다. 수잔을 그리려는 게 아니라, 그저 누군가가 햇볕 쨍쨍한 날 양산을 들고 있는 모습,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그 순간의 빛과 그림자가 만드는 인상적인 찰나의 순간을 그리려는 연습이었나보다. 그러면 <야외 인물화 테스트>라는 제목도 납득이 되지 않는가.
모네가 소환한 구도는 그로부터 11년 전 자신의 첫 아내와 만든 것과 유사하다. 아직 이름도 알리지 못하고 세상으로부터 조롱과 비난을 받는 게 더 익숙했던 무명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 모네는 다시금 실외에서 인물화를 그리기 위한 시동을 거는 출발점을 만들고 싶었던 모양이다. 이 시기 모네는 무명 시절을 끝내고 어느정도 인정받았고, 새 가정을 이루어 안정도 찾았으며, 지베르니에 새 보금자리도 꾸렸다. 활동의 보폭을 넓히려고 기억을 더듬어 연습을 시작하는 듯, 기지개를 펴는 모네의 습작.
과연 인상주의의 거장답게 살랑살랑 부는 바람결까지도 스냅샷처럼 화폭으로 옮긴 기분 좋은 따뜻한 작품이다.
<여행지에서 만난 그림 한 점>
미술에 문외한인 여행작가가 여행 중 만난 미술 작품을 이야기하는 코너입니다. 어느날은 길게, 어느날은 짧게, 어느날은 비평으로, 어느날은 감상으로, 하여튼 미술을 말합니다.
(매주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