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소도시 여행 - 본
봄만 되면 주목받는 도시 본(Bonn). 우리가 벚꽃 개화일을 챙기며 축제와 풍광을 즐기듯이, 독일에서 봄마다 벚꽃이 만발하여 화사한 풍경을 연출하기로 유명한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솔직히 이야기하건대, 나는 본에서 벚꽃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몇 달 전부터 취재 일정을 픽스하고 이동시간까지 분 단위로 계획을 마쳐야 떠날 수 있는 여행작가에게, 언제 개화할지 알 수 없는 꽃놀이를 예상하여 취재일정을 짜는 건 판타지에 가깝기 때문.
그러나 봄에 유독 본에 관심이 집중되는 건 팩트. 이왕 본에 관심을 둘 당신을 위하여, 본에서 벚꽃을 보지 못하더라도 충분한 지적 만족감을 선사할 다섯 가지 장면을 소개한다.
Scene 1. 베토벤 하우스
본에서 가장 유명한 '네임드'는 이 도시에서 출생한 베토벤이다. 1770년 베토벤이 태어난 생가는 베토벤하우스(Beethoven-Haus) 기념관으로 단장하여 베토벤의 생애와 음악, 그리고 음악가 집안인 베토벤 가문에 대한 내용을 전시한다.
Scene 2. 본 대성당
본은 쾰른 선제후국의 실질적 수도였으며, 최고 권력자인 대주교의 궁전이 있었다. 베토벤의 아버지도 주교궁의 궁정 음악가였다. 본은 큰 도시가 아니었지만, 고대 로마 시절 이 자리에서 순교한 성인을 기리며 일찍부터 큰 가톨릭 교회가 존재하였다. 바로 그 순교지의 거대한 교회, 본 대성당(Bonner Münster)은 지금도 거대한 규모로 방문객을 맞이한다.
Scene 3. 마르크트 광장
그랬던 본이 세계사에 이름을 알린 것은 독일 분단시절 서독의 임시수도가 되면서부터다. 당시 동서독은 냉전의 최전선이었기 때문에 정치적,외교적으로 서독의 수도 본이 시끄러울 날이 많았다. 마르크트 광장(Marktplatz)에 있는 본 시청사도 미국 대통령 등 서방 민주 진영의 거물이 종종 들르는 곳이었다.
Scene 4. 독일 역사박물관
독일 통일 후 베를린으로 다시 수도를 옮길 때 본 시민들이 흔쾌히 받아들인 건 아니다. 민심을 달래기 위해 본에 UN 캠퍼스를 비롯하여 많은 공공 기관이 자리를 잡게 되는데, 큰 박물관 지구도 이때 완성되었다. 덕분에 도시의 규모는 작아도 박물관의 클래스는 상당하며, 특히 냉전의 최전선으로서 현대사의 전면에 있던 도시답게 독일 역사박물관(Haus der Geschichte)이 가장 눈에 띈다. 입장료도 무료.
Scene 5. 하리보 스토어
본을 대표하는 과거의 '네임드'가 베토벤이라면, 현대의 '네임드'는 따로 있다. 바로 하리보의 본고장이 본이라는 사실. 하리보(HARIBO)라는 회사명 자체가 설립자 한스 리겔(Hans Riegel)의 이름과 성에서 각 두 자, 그리고 본에서 두 자를 따서 만들어진 이름이다. 지금은 본 근교로 본사를 옮겼지만 여전히 본은 하리보의 고장이며, 커다란 플래그십 스토어가 있어서 어린아이들이 좋아할 알록달록하고 달콤한 세상을 보여준다.
혹자는 이렇게 이야기할지 모른다. 본이 서독의 임시수도였는데 무슨 소도시냐고. 틀린 말은 아니다. 오늘날에도 본은 인구 30만명 이상의 도시니까. 그런데 역사적으로 본은 늘 쾰른 배후에 있었다. 본이 서독의 임시수도가 된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대도시를 임시수도로 정할 경우 나중에 통일되어도 수도를 베를린으로 옮기기 어려울 것이라는 논리로 본이 선정되었다.
그러니 우리는 까다롭게 따지지 말기로 하자. 대도시 쾰른 여행 중 원데이투어로 훌쩍 다녀오기 좋은 근교도시로, 사시사철 여행자를 기다리는 베토벤과 하리보를 만나러 가는 여행지로 본을 기억하기로 하자. 이왕이면 벚꽃이 피었을 때 가면 가장 좋겠다.
<독일 소도시 여행>
2007년부터 독일을 여행하며 그동안 다녀본 100개 이상의 도시 중 소도시가 대부분입니다. 독일 소도시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 독일여행에 깊게 발을 들이게 된 여행작가가 독일 소도시의 매력을 발견한 장면들을 연재합니다. 물론 그 중에는 객관적으로 소도시로 분류하기 어려운 곳도 있지만 까다롭게 따지지 않기로 합니다.
(매주 일요일 연재)
독일 소도시에 담긴 역사, 문화, 풍경, 자연 등 다양한 이야기를 읽기 편한 한 권의 책으로 엮었습니다. 35개의 독일 도시에 담긴 이야기를 담은 쉽게 읽히는 여행 에세이로 독일의 진면목을 발견하세요.
동화마을 같은 독일 소도시 여행 (유상현 지음, 꿈의지도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