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소도시 여행 - 아이제나흐
한 민족의 역사에 중요한 사연을 가진 도시는 많다. 복잡한 역사를 가진 독일이라면 더더욱 더 그러할진대, 희한하게 다른 시대에 다른 상황으로 독일 역사에 중요한 자양분을 공급한 성이 있다. 1천년 유구한 역사를 가진 고성 아래에 호젓이 펼쳐지는 도시 아이제나흐(Eisenach)는, 말하자면 독일을 잉태한 땅이나 마찬가지다.
아름다운 성이 지켜보는 아이제나흐가 품고 있는 다섯 가지 장면을 소개한다.
Scene 1. 바르트성
독일을 잉태한 땅, 그 정점이 바르트성(Wartburg)이다. 약 1천년 전 영주가 부근을 지나가다가 성을 짓기 좋은 산을 발견하고서 "기다려라, 그대는 나의 성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남기고는 실제로 성을 지어 "기다림의 성"이라는 뜻의 이름이 생겼다. 여기서 게르만족 서사시를 읊는 경연대회를 열어 민족의 뿌리가 구전되는 기틀이 생겼고, 여기서 마르틴 루터가 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하면서 현대 독일어 문법의 틀이 마련되었으며, 19세기 독일 통일을 외치는 민족주의자와 학생들의 본부가 되면서 삼색 깃발을 휘날린 것이 오늘날 독일 국기의 시발점이 되었다. 즉, 한 장소에서 다른 시대에 각기 다른 방법으로 독일의 민족 설화, 언어, 국기에 모티브를 제공한 것이니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에는 흥미로운 스토리를 가진 장소다. 물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Scene 2. 루터의 동상
아이제나흐에서 있었던 역사적인 사건 중 최고봉은 단연 루터의 성서 번역이며, 이로 인해 종교개혁이 완성될 수 있었다. 아이제나흐는 기차역에서 가까운 구시가지 초입에 루터의 큰 동상을 만들어 이를 기념한다. 동상에 세워진 초석의 사면에 각기 부조를 새겨두었는데, 바르트성의 골방에서 성서를 번역하는 모습도 찾아볼 수 있다.
Scene 3. 루터하우스 & 바흐하우스
아이제나흐가 루터를 기념할 일은 더 있다. 어린 루터가 부모 품을 떠나 유학하며 공부한 도시가 아이제나흐였으며, 그가 하숙한 집은 루터하우스(Lutherhaus) 기념관이 되었다. 마르틴 루터 외에도 아이제나흐가 기념하는 위인이 도 있는데, 바로 이 도시에서 태어난 "음악의 아버지" 바흐다.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생가(로 추정되는 곳)는 바흐하우스(Bachhaus) 기념관으로 만들었다. 두 기념관 모두 원래의 건물에 현대식 건물을 바로 이어붙여 만만치 않은 규모의 박물관이 되었으니 관람할 이유가 충분하다.
Scene 4. 마르크트 광장
산 위의 바르트성, 그리고 루터와 바흐의 흔적이 남은 건물만 있는 건 아니다. 아이제나흐는 그만큼 오랜 세월 동안 발달한 도시로서 지역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으며, 그 흔적이 남아있는 화려한 구시가지의 중심 마르크트 광장(Markrplatz)가 있다. 큰 교회, 화려한 시청사, 부유한 상인이나 귀족의 저택 등 눈에 띄는 중세 건축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Scene 5. 시립궁전
아이제나흐는 근대에 들어서도 권력의 중심에 머물렀는데, 마르크트 광장 옆에 큰 궁전이 있어 이를 느낄 수 있다. 바로크 양식의 시립궁전(Stadtschloss)은 큰 규모와 화려한 인테리어 등을 볼 수 있는 곳이며, 오늘날에는 지역 역사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광장에서 보이는 풍경만으로도 꽤 화려하다.
산 위의 고성은 멋진 자태를 드러낸다. 산 아래의 시가지는 궁전과 교회 등 큼직한 스케일의 건축물로 멋진 풍경을 만든다. 그 중에는 역사에 이름이 기록된 위대한 인물의 기념관이 보인다.
우리가 알고 있는 독일이라는 나라의 캐릭터를 만드는 데에 있어 중요한 자양분을 제공한 도시. 말하자면 독일을 잉태한 땅. 아이제나흐는 여행할 맛 나는 소도시다.
<독일 소도시 여행>
2007년부터 독일을 여행하며 그동안 다녀본 100개 이상의 도시 중 소도시가 대부분입니다. 독일 소도시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 독일여행에 깊게 발을 들이게 된 여행작가가 독일 소도시의 매력을 발견한 장면들을 연재합니다. 물론 그 중에는 객관적으로 소도시로 분류하기 어려운 곳도 있지만 까다롭게 따지지 않기로 합니다.
(매주 일요일 연재)
독일 소도시에 담긴 역사, 문화, 풍경, 자연 등 다양한 이야기를 읽기 편한 한 권의 책으로 엮었습니다. 35개의 독일 도시에 담긴 이야기를 담은 쉽게 읽히는 여행 에세이로 독일의 진면목을 발견하세요.
동화마을 같은 독일 소도시 여행 (유상현 지음, 꿈의지도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