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소도시 여행 - 아헨
독일 서쪽 끄트머리 국경도시 아헨(Aachen)은 한 명의 인물로 정리가 끝난다. 독일어로 카를 대제, 프랑스어로 샤를마뉴, 중립적 표현으로 카롤루스 대제라고 불리는 군주. 그의 나라는 이내 유럽 대륙 전체에 뻗쳤고,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황제로 인정받아 공식적인 제국의 길을 열었다. 그리고 그의 사후 대제국은 셋으로 분열되었는데, 이것이 오늘날 프랑스-이탈리아-독일의 모태가 된다. 그래서 카롤루스 대제를 일컬어 "유럽의 아버지"라 부른다.
"유럽의 아버지"의 도시가 바로 아헨이다. 유럽 전체에 권세를 떨친 대제의 흔적은 오늘날까지도 아헨 곳곳에서 발견된다. 다섯 가지 장면으로 소개한다.
Scene 1. 마르크트 광장
아헨 시청사가 있는 마르크트 광장(Marktplatz)은 상당히 고풍스러운 매력이 넘친다. 특히 아헨 시청사는 마치 성을 보는 듯 웅장하고 견고한하며 일견 음산해보이기까지 하는 위용을 뽐내는데, 카롤루스 대제의 성터에 지었기 때문이다. 시청사 앞에는 카롤루스 대제의 동상이 있다.
Scene 2. 아헨 대성당
카롤루스 대제는 자신의 성 옆에 교회도 지었고, 죽어서 여기에 잠들었다. 당시에는 크지 않았지만, 후대에 이르러 이 중요한 장소를 더 크게 증축하고 압도적으로 화려하고 거대하게 바꾸어놓았다. 그러나 카롤루스 대제가 만든 팔각형 모양의 예배당은 여전히 그 형태를 유지하며 대제의 안식처가 되어 있다. 중앙 제단 뒤편에 황금빛 유물함 속에 대제가 잠들어있다. 아헨 대성당은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을 처음 발표한 1978년부터 그 이름을 올려 "유럽의 1호 문화유산"으로서 상당한 존재감을 가진다.
Scene 3. 카를 프리드리히 싱켈
중세와 근대에 이르러 아헨이 엄청나게 번영한 도시는 아니었지만 "유럽의 아버지"가 가진 상징성으로 여전히 많은 순례자가 찾는 번화한 곳이었다. 이는 독일 내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신성로마제국 당시에도 아헨 대성당은 황제가 찾는 중요한 곳이었고, 신성로마제국 이후에도 프로이센 왕국이 아헨을 지배하며 각별히 관리하였다. 오늘날에도 베를린 곳곳에서 볼 수 있는 화려한 궁전, 성당, 박물관, 학교 등을 지은 대건축가 카를 프리드리히 싱켈(Karl Friedrich Schinkel)이 19세기에 직접 아헨까지 와서 극장과 온천홀을 지을 정도였다.
Scene 4. 온천
프로이센이 아헨을 깨끗하고 화려하게 관리한 것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아헨은 온천도시로 유명하여 유럽 각지에서 '높으신 분들'이 휴양 오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싱켈이 지은 엘리제 원천(Elisenbrunnen)은 온천수가 나오는 원천에 홀을 만들어 '높으신 분들'을 접객하는 용도였다. 여전히 엘리제 원천에서 온천수가 뿜어져 나오는 것을 볼 수 있고, 원한다면 음용도 가능하다. 또한, 2차대전으로 쑥대밭이 되면서 아헨의 온천 시설도 황폐해졌으나 2000년대 들어 현대식 온천 스파 카롤루스 테르멘(Carolus Thermen)을 만들어 다시 한 번 리조트 도시로서의 면모를 내세운다.
Scene 5. 아헨 공대
그리고 21세기에도 아헨이 활기를 잃지 않는 원동력은 세게적인 공과대학이 있다는 사실이다. 아헨 공대는 구시가지의 관문이었던 폰트문(Pondtor) 바로 바깥에, 그리고 구시가지 안쪽까지 캠퍼스를 이루고 있으며, 자연스럽게 학생들이 즐겨찾을 개성적인 상점과 카페, 이국적인 식당이 많다. 물론 한국 식당도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덕분에 1200년 전 황제의 흔적을 찾아가는 여행에서도 21세기의 활기를 느끼며 재미를 즐길 수 있다.
다채로운 활기와 온천의 휴식까지 즐길 수 있지만 역시 아헨의 핵심은 "유럽의 아버지"다. 최근에는 카롤루스 대제에 관한 큰 기록관도 문을 열었다. 독일의, 그리고 유럽 각지의 학생들이 그들의 뿌리를 보러 단체로 찾아오는 도시 아헨. "유럽의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 재미와 의미를 보장한다.
<독일 소도시 여행>
2007년부터 독일을 여행하며 그동안 다녀본 100개 이상의 도시 중 소도시가 대부분입니다. 독일 소도시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 독일여행에 깊게 발을 들이게 된 여행작가가 독일 소도시의 매력을 발견한 장면들을 연재합니다. 물론 그 중에는 객관적으로 소도시로 분류하기 어려운 곳도 있지만 까다롭게 따지지 않기로 합니다.
(매주 일요일 연재)
독일 소도시에 담긴 역사, 문화, 풍경, 자연 등 다양한 이야기를 읽기 편한 한 권의 책으로 엮었습니다. 35개의 독일 도시에 담긴 이야기를 담은 쉽게 읽히는 여행 에세이로 독일의 진면목을 발견하세요.
동화마을 같은 독일 소도시 여행 (유상현 지음, 꿈의지도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