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소도시 여행 - 프라이부르크
독일 동남부 끄트머리 산골 도시에 원자력발전소를 짓겠다고 하자 시민들이 격렬히 반대했다. 대개 이럴 때 "원전을 반대할 거면 원전에서 생산한 전기는 쓰지 말라"는 "기적의 논리"가 발현한다. 그런데 이 도시는 실제로 그렇게 했다. 신재생 에너지만 가지고도 도시의 일상을 꾸려나갈 수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 도시는 "친환경 수도"라는 별명을 얻고 전세계가 주목하며, 견학차 찾아오기에 이른다.
합리적 대응이 불가능한 "기적의 논리"를 진짜로 성취한 이곳. 그 기적을 이룬 여기는 프라이부르크(Freiburg im Breisgau)다. 우리가 굳이 프라이부르크에서 친환경 메카니즘을 견학하고 학술적으로 연구할 필요는 없다. 그저 프라이부르크를 여행하면서 쾌적하고 깨끗한 소도시의 매력을 즐기면 된다. 프라이부르크의 매력을 다섯 가지 장면으로 정리한다.
Scene 1. 베힐레
프라이부르크에는 꼬마강 베힐레(Bächle)가 흐른다. 중세에는 소방용수의 목적으로 이렇게 시내에 물을 끌어오는 게 일반적이었지만, 오늘날에는 그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프라이부르크는 베힐레를 그대로 간직하면서 여전히 산에서 발원한 맑은 물이 흐르게 한다. 시민들은 자기 집과 가게 앞의 베힐레를 저마다의 센스로 꾸민다. 베힐레는 더 이상 소방용수의 기능은 없지만, 도심 온도를 낮추고 탄소를 줄이는 효과가 있어 친환경 도시 프라이부르크의 캐릭터가 되었다.
Scene 2. 슐로스베르크
베힐레에 흐르는 물은 뒷산에서 발원한 것인데, 바로 그 뒷산 슐로스베르크(Schlossberg)는 숲이 빽빽한 깨끗한 자연의 현장이다. 여기는 '검은 숲'이라는 뜻의 슈바르츠발트(Schwarzwald)의 일부이며, 은근히 가파른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면 옛 성터와 전망대를 만나게 된다. 여기서 내려다보이는 프라이부르크 전경도 예쁘다.
Scene 3. 대성당
프라이부르크의 오랜 번영을 보여주는 가장 상징적인 랜드마크가 대성당(Freiburger Münster)이다. 고딕 양식의 높은 탑은 계단으로 올라가는 전망대 역할도 한다. 2차대전 중에도 대성당만큼은 기적적으로 화마를 피해 수백년의 건축사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대성당 주변에도 눈에 띄는 옛 건축물이 광장을 이루고 있다.
Scene 4. 시청사 광장
베힐레를 따라 프라이부르크 구시가지의 좁은 골목을 거닐다보면 빨갛게 칠한 구 시청사(Altes Rathaus)와 나란히 있는 신 시청사(Neues Rathaus), 그리고 이들을 바라보며 큰 나무가 그늘을 만들어주는 분위기 좋은 광장이 등장한다. 대학도시 프라이부르크답게 젊은이들의 활기찬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Scene 5. 콘비크트 거리
그런가하면, 일부러 낭만적인 풍경을 연출하는 골목도 있다. 콘비크트 거리(Konviktstraße)는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양쪽의 건물들이 덩쿨로 연결되는 독특한 풍경이 펼쳐지는 곳이다. 기념품숍, 카페, 호텔 등 관광의 재미를 더하는 곳이 여기에 많이 몰려있다.
프라이부르크에서 굳이 친환경을 공부하려 하지 말자. 그냥 자그마한 도시를 걷다보면 대학도시의 활기 속에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바가 있을 테니까. 친환경이라는 숙제 때문에 개개인이 불편을 감수하며 도를 닦고 사는 곳이 아니다.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는 이들의 활기가 가득한 이곳이 친환경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들이 이룬 성과는 그야말로 기적에 가깝다.
기적의 논리에 기적으로 답한 도시. 좋다.
<독일 소도시 여행>
2007년부터 독일을 여행하며 그동안 다녀본 100개 이상의 도시 중 소도시가 대부분입니다. 독일 소도시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 독일여행에 깊게 발을 들이게 된 여행작가가 독일 소도시의 매력을 발견한 장면들을 연재합니다. 물론 그 중에는 객관적으로 소도시로 분류하기 어려운 곳도 있지만 까다롭게 따지지 않기로 합니다.
(매주 일요일 연재)
독일 소도시에 담긴 역사, 문화, 풍경, 자연 등 다양한 이야기를 읽기 편한 한 권의 책으로 엮었습니다. 35개의 독일 도시에 담긴 이야기를 담은 쉽게 읽히는 여행 에세이로 독일의 진면목을 발견하세요.
동화마을 같은 독일 소도시 여행 (유상현 지음, 꿈의지도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