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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성지

독일 소도시 여행 - 비텐베르크

by 유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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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초반, 로마 교황청의 타락이 나비효과를 일으켜 신성로마제국을 휩쓸었다. 성서에 근거가 없는 면죄부(면벌부) 판매가 독일 전역에서 횡횡하였고, 사회는 혼란했다. 이때 한 소도시에서 무명의 사제가 조심스럽게 이의를 제기했다. 그가 자신의 교회 문 앞에 써붙인 발제문은 삽시간에 독일 전국으로 퍼졌고, 민심은 들끓었다.


종교개혁이 시작되었다. 그 선봉에 선 무명의 사제가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당시 그가 신학교 교수 겸 사제로 일하던 도시가 비텐베르크(Lutherstadt Wittenberg)다. 종교개혁은 중세 유럽 권력의 패러다임을 틀어 일대 변화를 촉발한 순간이다. 특정 종교의 사건에 국한하지 않고 인류 문명 전체의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바로 그 위대한 혁명의 출발지, 비텐베르크의 매력을 다섯 가지 장면으로 소개한다.


Scene 1. 슐로스 교회

종교개혁 당시 마르틴 루터가 성직자로 일하던 곳. 루터는 면죄부 판매를 포함한 교황청의 일련의 행위가 성서의 가르침에 어긋난다 생각하여 토론을 요구하였다. 자신의 입장을 적은 95가지 발제문을 슐로스 교회(Schlosskirche) 문 앞에 써붙여 항의했는데, 소위 <95개조 반박문>이라는 타이틀로 전국에 퍼져 종교개혁을 일으키는 불씨가 되었다. 종교개혁이 시작된 상징적인 장소이며 매우 엄숙한 분위기 속에 웅장한 건축미를 느낄 수 있고, <95개조 반박문>이 붙었던 문에 발제문 내용을 새겨 영원히 기리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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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슐로스 교회 | 우: 95개조 반박문이 붙었던 문


Scene 2. 루터하우스

마르틴 루터는 비텐베르크 신학교 교수를 겸하였다. 대학교에 속한 건물에 살며 지냈고, 훗날 이 건물은 종교개혁의 동지들이 머물며 뜻을 펼치거나, 어려운 이들과 가난한 학생들을 거두어 구제하는 '본부'가 되었다. 루터하우스(Lutherhaus)는 오늘날 루터에 관한 대형 박물관으로 활용되며, 루터가 살았던 시대의 모습을 재현하고 루터의 아내에 대한 자료까지도 상세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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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우 : 루터하우스


Scene 3. 루터의 나무

종교개혁의 불길이 거세게 번지자 교황청은 루터를 달래기도 하고 겁을 주기도 하였다. 그러나 뜻을 굽히지 않고 교황청의 오류를 비판한 루터는, 결국 교황청으로부터 파면당하게 되는데, 이때 루터는 자신의 집(루터하우스) 부근 공터에서 파면교서를 불태워버린다. 이 순간부터 루터와 교황청은 완전히 결별하고 기독교가 두 세력으로 나뉘는 전환점이 되었다. 파면교서를 불태운 그 자리에는 이를 기념하는 참나무를 심어 루터의 나무(Luthereiche)라 부른다. 여담이지만, 루터의 나무 '오리지널'은 나폴레옹 침공 당시 프랑스군이 베어버려 그 자리에 새로 심은 나무를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다.

루터의나무01.jpg 루터의 나무


Scene 4. 멜란히톤 하우스

종교개혁을 마르틴 루터 혼자 리드한 건 아니다. 루터가 종교개혁의 '아버지' 같은 역할이었다면, 뒤에서 질서를 조율하며 교리를 체계화하는 '어머니' 같은 역할을 맡은 이가 필리프 멜란히톤(Philip Melanchthon)이다. 그도 비텐베르크 대학교 교수였으며, 그가 비텐베르크에서 살았던 건물은 멜란히톤하우스(Melanchthonhaus) 기념관이 되었다.

멜란히톤하우스01.jpg 멜란히톤하우스(왼쪽 큰 건물)와 기념관 입구(오른쪽 벽돌건물)


Scene 5. 마르크트 광장

마르크트 광장(Marktplatz)은 소도시로서의 매력이 가장 잘 느껴지는 비텐베르크의 중심 광장이다. 르네상스 양식의 시청사가 광장 정면에 위치하고, 루터와 멜란히톤의 동상이 그 앞에 나란히 있다. 광장 안쪽 골목에서 높은 탑을 드러내는 시립교회(Stadtkirche)는 루터가 결혼식을 올린 곳이며, 독일 르네상스 화가 루카스 크라나흐의 제단화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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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마르크트 광장 | 우: 시립교회

비텐베르크는 이쪽 끝부터 저쪽 끝까지 걸어서 30분이면 주파할 수 있을 정도로 자그마한 도시다. 이 작은 마을에서 세상을 뒤흔든 위대한 사건이 시작되었다. 모름지기 역사란, 그렇게 종종 예측할 수 없는 곳에서 겉잡을 수 없는 물결을 일으키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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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소도시 여행>

2007년부터 독일을 여행하며 그동안 다녀본 100개 이상의 도시 중 소도시가 대부분입니다. 독일 소도시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 독일여행에 깊게 발을 들이게 된 여행작가가 독일 소도시의 매력을 발견한 장면들을 연재합니다. 물론 그 중에는 객관적으로 소도시로 분류하기 어려운 곳도 있지만 까다롭게 따지지 않기로 합니다.

(매주 일요일 연재)


독일 소도시에 담긴 역사, 문화, 풍경, 자연 등 다양한 이야기를 읽기 편한 한 권의 책으로 엮었습니다. 35개의 독일 도시에 담긴 이야기를 담은 쉽게 읽히는 여행 에세이로 독일의 진면목을 발견하세요.

동화마을 같은 독일 소도시 여행 (유상현 지음, 꿈의지도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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