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소도시 여행 - 뮌스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만3년째 계속되고 있다. 다른 나라의 일임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갑갑한데, 하물며 3년이 아니라 30년 동안 전쟁이 계속된다면?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힌다. 17세기, 유럽은 실제로 30년간 전쟁을 치렀다. 유럽 각국이 편을 먹고 연합해 참혹한 전면전을 벌였다는 점에서 사실상 제0차 세계대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전쟁의 한복판에 놓인 신성로마제국은 전국적으로 재앙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
1618년부터 시작된 전쟁은 1648년이 되어서야 끝났다. 승자는 없었고, 이대로 가면 다 죽는다는 위기감만 남았을 때 벼랑 끝에서 간신히 평화협정을 맺었다. 베스트팔렌 조약이라 부르는 이 사건은 이웃한 두 도시에서 각각 체결되었는데 그 중 한 곳이 뮌스터(Münster)다. 30년 전쟁을 끝낸 평화의 도시, 지금도 평화로운 활기가 넘치는 뮌스터의 매력을 다섯 가지 장면으로 소개한다.
Scene 1. 구 시청사
뮌스터의 역사적 의의가 집약된 구 시청사(Historisches Rathaus). 바로 여기서 베스트팔렌 조약이 체결되었다. 지금도 그 역사적인 홀은 박물관으로 개방되어 관람할 수 있다. 구 시청사는 고딕 양식의 좁고 높은 박공을 드러내는데, 주변의 모든 건물들이 양식은 다르지만 같은 높이에 같은 분위기로 줄지어 있어 중앙마르크트 거리(Prinzipalmarkt) 전체가 환상적인 소도시의 풍경을 자아낸다.
Scene 2. 성 람베르티 교회
중앙마르크트 거리가 끝나는 지점에 높은 고딕 첨탑이 솟은 성 람베르티 교회(St. Lamberti)가 있다. 그런데 탑을 자세히 보니 높은 곳에 철장이 매달려 있다. 알고보니 16세기에 뮌스터에서 반란을 일으킨 주동자 세 명을 사형에 처하고 50년간 시신을 매달아 놓은 현장이라고 한다. 동화 같은 소도시 풍경이 펼쳐지는 곳에서 잔혹한 역사의 스토리를 마주하게 된다.
Scene 3. 대성당
건축양식은 1000년 전의 로마네스크인데, 새 것 같은 깔끔한 대성당(St.-Paulus-Dom). 2013년에 복원을 끝내고 다시 문을 열었다고 하니 이제 10년 조금 넘은 새 건물이 맞다. 원래의 로마네스크 양식을 최대한 살려 복원하되 일부는 현대식 해석을 가미하여 변형하였다. 내부에도 볼만한 장식과 스테인드글라스, 종교예술품 등이 가득하다.
Scene 4. 레지덴츠 궁전
한때 주교의 거처로 지은 바로크 양식의 우아하고 거대한 레지덴츠 궁전(Residenzschloss)이 있다. 그런데 오늘날 궁전 앞은 젊은이들로 붐빈다. 이 궁전이 뮌스터 대학교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때 높은 권력자가 머물던 장소는 백팩 가득 책을 쑤셔넣고 편한 옷차림으로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학생들에게 점령당했다. 넓은 앞마당과 뒤뜰에 앉을 자리도 많으니 그 활기를 느끼며 쉬어가기에 좋다.
Scene 5. 아 호수
녹지에 둘러싸인 광활한 아 호수(Aasee)는 놀랍게도 인공 호수다. 이 넓은 호수를 사람의 손으로 만들었다. 상습 침수 지역이 도시까지 범람하여 피해가 반복되자 뮌스터는 20세기 초 아예 호수를 만들어 물을 가두는 기지를 발휘했다. 덕분에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원"으로 뽑히기도 한 쾌적한 시민 공원이 탄생하였고, 지금도 호수에서 요트를 타거나 호수가에서 맥주를 마시는 현지인의 여유가 펼쳐진다.
뮌스터는 스스로를 "평화의 도시"라 부른다. 30년이나 지속된 참혹하고 지난한 전쟁의 종지부를 찍은 도시이니 충분히 납득할만한 별명이다.
독일은 전국 곳곳에 대학도시가 많고, 그런 도시는 어김없이 자전거가 뒤덮은 채로 젊은이들의 활기가 도시를 지배한다.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뮌스터는 유독 활기의 '게이지'가 맥시멈을 뚫는 도시로 나의 기억 속에 남아있다. 전쟁을 끝내고 평화가 찾아오니 평범한 이들의 일상에 활기가 차고 넘친다. 그 진리를 보여주는 산증인이니 뮌스터는 "평화의 도시"가 분명하다.
<독일 소도시 여행>
2007년부터 독일을 여행하며 그동안 다녀본 100개 이상의 도시 중 소도시가 대부분입니다. 독일 소도시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 독일여행에 깊게 발을 들이게 된 여행작가가 독일 소도시의 매력을 발견한 장면들을 연재합니다. 물론 그 중에는 객관적으로 소도시로 분류하기 어려운 곳도 있지만 까다롭게 따지지 않기로 합니다.
(매주 일요일 연재)
독일 소도시에 담긴 역사, 문화, 풍경, 자연 등 다양한 이야기를 읽기 편한 한 권의 책으로 엮었습니다. 35개의 독일 도시에 담긴 이야기를 담은 쉽게 읽히는 여행 에세이로 독일의 진면목을 발견하세요.
동화마을 같은 독일 소도시 여행 (유상현 지음, 꿈의지도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