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포도밭을 지키는 산성

독일 소도시 여행 - 코헴

by 유상현
코헴성01.jpg

산등성이 이어지는 가운데 계곡처럼 강이 흐른다. 강과 산 사이의 좁은 평지는 다닥다닥 건물이 모여 마을을 형성하고, 산 위까지 경사면을 따라 포도밭이 펼쳐진다. 열 맞춰 자라는 포도나무 위로 산봉우리에 웅장한 성이 둥지를 틀고 있다.


코헴(Cochem)은 우리가 생각하는 독일 소도시의 전형적인 모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햇볕이 들지 않을 정도로 좁고 어지럽게 이어지는 골목 사이사이로 보이는 푸근한 소도시 풍경, 탁 트인 곳에 이르면 머리 위로 자태를 뽐내는 아름다운 성, 그것을 보기 좋은 뷰포인트까지, 코헴의 매력을 네 가지 장면으로 소개한다.


Scene 1. 코헴성

정식 명칭은 코헴 제국성(Reichsburg Cochem).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영지였기 때문이다. 물론 황제가 여기에 머문 날은 거의 없었고, 대부분 트리어 대주교의 관할에 있었으며, 오늘날 성의 모습은 19세기 후반 독일 역사주의 사조의 유행에 따라 고딕리바이벌 양식으로 다시 지은 것이다. 성까지 오르는 길이 은근히 가파르지만, 경사면마다 농부의 명찰이 달린 포도밭이 펼쳐진다. 말하자면, 지금의 코헴성은 과거의 권력자가 머물렀거나 군사적 목적을 가진 산성이 아니라, 포도밭을 지키는 낭만적인 경관 지킴이 정도 되겠다.

코헴성02.jpg
코헴성03.jpg
좌,우 : 코헴성


Scene 2. 모젤강

과거에는 왜 이런 곳에 성을 지었을까? 모젤강(Mosel)은 독일과 프랑스를 연결하는 하상교통의 요지로 교역이 활발하였다. 이런 곳은 영주가 좋은 길목에 소위 '톨게이트'를 만들어 통행료를 징수하곤 했는데, 코헴성의 용도가 바로 통행료 징수를 위한 거성이었다. 트리어 대주교(황제를 뽑는 선제후의 지위를 가진 3명의 대주교 중 한 명)에게 쏠쏠한 수입원이었던 만큼 권력의 숨결이 닿아있던 것이다. 모젤강변에서 보이는 자그마한 마을 풍경도, 산 위의 성 풍경도 모두 아름답다.

모젤강01.jpg
모젤강02.jpg
좌,우 : 모젤강


Scene 3. 피너크로이츠

코헴성이 있는 산 옆의 다른 산, 그 정상에 세운 기념 십자가가 피너크로이츠(Pinnerkreuz)이다. 십자가 자체는 심미성이 높다 하기는 어렵지만, 거기서 보이는 코헴성과 모젤강의 풍경은 한 폭의 그림이 따로 없다. 피너크로이츠까지 체어리프트를 타고 올라가 약간의 등산이 필요한데, 인위적인 등산로를 조성한 건 아니어서 편한 복장과 신발은 필수이다.

피너크로이츠01.jpg
피너크로이츠02.jpg
좌: 피너크로이츠에서 보이는 전망 | 우: 피너크로이츠로 가는 길


Scene 4. 마르크트 광장

산과 강 사이, 얼마 되지 않는 좁은 면적에 빼곡히 들어선 마을도 코헴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다. 마르크트 광장(Marktplatz)이 그 중심이며, 작은 분수를 두고 중세의 건축물이 광장을 둘러싸고 있다. 주변 레스토랑이나 카페의 노천 테이블이 광장의 상당 부분을 점유하고 있으니 고풍스러운 광장의 분위기 속에서 잠시 쉬어가도 좋겠다.

마르크트광장01.jpg
마르크트광장02.jpg
좌,우 : 마르크트 광장

포도밭이 펼쳐진 위로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는 성에 오르고, 체어리프트를 타고 다른 산에 오르고, 미로 같은 골목을 걷다가 탁 트인 강변에서 땀을 식힐 수 있는 곳. 산과 강과 마을이 완성하는 풍경은, 비록 두 다리가 꽤 아플 확률이 높지만 그 수고가 아깝지 않은 시원한 힐링을 선사할 것이 틀림없다.

체어리프트01.jpg

<독일 소도시 여행>

2007년부터 독일을 여행하며 그동안 다녀본 100개 이상의 도시 중 소도시가 대부분입니다. 독일 소도시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 독일여행에 깊게 발을 들이게 된 여행작가가 독일 소도시의 매력을 발견한 장면들을 연재합니다. 물론 그 중에는 객관적으로 소도시로 분류하기 어려운 곳도 있지만 까다롭게 따지지 않기로 합니다.

(매주 일요일 연재)


독일 소도시에 담긴 역사, 문화, 풍경, 자연 등 다양한 이야기를 읽기 편한 한 권의 책으로 엮었습니다. 35개의 독일 도시에 담긴 이야기를 담은 쉽게 읽히는 여행 에세이로 독일의 진면목을 발견하세요.

동화마을 같은 독일 소도시 여행 (유상현 지음, 꿈의지도 출간)

[자세히 보기]

keyword
이전 12화슬프도록 아름다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