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소도시 여행 - 첼레
동화책에 삽화를 그리거나 테마파크에서 동화를 재현할 때,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중세 유럽의 건축양식을 인용하게 된다. 나무로 뼈대를 만들고, 뾰족한 지붕을 가진 건물. 이런 양식을 하프팀버(Half-Timber), 즉 반목조 건물이라 부른다. 숲이 많아 나무를 구하기 쉬운 독일에서 특히 반목조 양식이 발달하였으며, 마치 우리나라의 초가집처럼 전통 민속문화의 심볼이라고 할 수 있다.
첼레(Celle)는 하프팀버의 천국이다. 구시가지에 수백채의 하프팀버 건축물이 잘 보존되어 있다. 나무로 만든 건물들이 모인 마을, 첼레의 구시가지는 마치 "나무로 만든 마을"을 보는 듯하다. 그 정겨움이 묻어나는 첼레의 매력을 다섯 가지 장면으로 소개한다.
Scene 1. 쵤너 거리
하프팀버 건축이 가장 많이 밀집된 구시가지의 번화가. 그런데 일부러 보여주기 위해 전통가옥을 보존한 민속촌 같은 개념이 아니라, 여전히 사람들이 살고 있고 장사하는 삶의 현장이라는 점이 인상적이다. 삐거덕거리는 낡은 반목조 건물에서 의류, 잡화, 식품을 팔고, 시민들은 구경하고 쇼핑하며 한가로운 일상을 보낸다. 보여주기 위한 장소라면 낭만은 반감되지만, 과거의 현장에서 현대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일상이 펼쳐지는 장소이기에 쵤너 거리(Zöllnerstraße)에서 첼레의 낭만이 배가된다.
Scene 2. 그로서플란 광장
쵤너 거리가 구시가지의 메인스트리트라고 하면, 그로서플란 광장(Großer Plan)은 그 이면의 자그마한 광장이다. 역시 마찬가지로 하프팀버 건축이 만드는 특유의 정취가 극대화 된 곳이며, 쵤너 거리가 보행자 전용인 반면 그로서플란 광장은 자동차도 오가며 과거와 현재가 기막히게 공존하는 독특한 풍경을 만든다. 첼레 구시가지에 약 400여채의 하프팀버 건축이 남아있다고 한다.
Scene 3. 첼레성
첼레는 중세 시대에 한 영주가 거하는 중심지였다. 신성로마제국의 역사를 가진 독일은 무수히 많은 소국의 집합체였고, 각 소국마다 영주의 권력이 닿는 중심도시는 있기 마련이다. 오늘날의 기준으로는 소도시지만, 중세에는 한 나라의 권력이 머문 곳이었다는 뜻. 나무로 지은 건물이 즐비한 구시가지 옆에 큼지막한 첼레성(Schloss Celle)이 등장하는 게 그 때문이다.
Scene 4. 구 시청사
첼레성과 쵤너 거리 사이, 르네상스 양식으로 멋들어진 모습을 뽐내는 구 시청사(Altes Rathaus)는 바로 이웃한 성모마리아 교회(Stadtkirche St.Marien)와 함께 독일 구시가지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중세의 풍경을 선사한다. 성모마리아 교회의 첨탑은 전망대로 개방된다.
Scene 5. 신 시청사
신성로마제국이 해체되고 독일이라는 이름의 큰 나라가 등장한 이후 첼레는 주로 군사적 요충지로 중요성을 이어나갔다. 큰 병영이 들어섰는데,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신 시청사(Neues Rathaus)로 사용 중이다. 나무로 만든 마을과는 완전히 분위기가 다른 고압적인 붉은 건축물에는 군사 목적이었다는 속사정이 있는 셈이며, 그런 군사 요충지임에도 불구하고 세계대전 중 큰 피해를 입지 않아 구시가지가 보존된 것은 아이러니하다.
그 옛날 나무로 건물의 골격을 만들 때 반듯하게 짓기는 어렵다. 하프팀버는 기본적으로 삐뚤삐뚤한 아날로그의 정취를 갖는다.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몇백년 전의 라이프스타일을 흉내내지는 않는다. 조금 불편할지언정 느릿느릿 아날로그의 삶을 즐긴다.
동화에 나올 것 같은 마을. 그러나 그 속에 동화는 없다. 느리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보여주기 위한 곳이 아니라 살아가는 곳. 그래서 첼레의 낭만이 좋다.
<독일 소도시 여행>
2007년부터 독일을 여행하며 그동안 다녀본 100개 이상의 도시 중 소도시가 대부분입니다. 독일 소도시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 독일여행에 깊게 발을 들이게 된 여행작가가 독일 소도시의 매력을 발견한 장면들을 연재합니다. 물론 그 중에는 객관적으로 소도시로 분류하기 어려운 곳도 있지만 까다롭게 따지지 않기로 합니다.
(매주 일요일 연재)
독일 소도시에 담긴 역사, 문화, 풍경, 자연 등 다양한 이야기를 읽기 편한 한 권의 책으로 엮었습니다. 35개의 독일 도시에 담긴 이야기를 담은 쉽게 읽히는 여행 에세이로 독일의 진면목을 발견하세요.
동화마을 같은 독일 소도시 여행 (유상현 지음, 꿈의지도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