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소도시 여행 - 퓌센
젊은 왕은 자신을 향한 세상의 시선이 두려웠다. 노회한 관료들과의 충돌, 세간의 시선, 격동하는 사회, 모든 것으로부터 숨고 싶었다. 자신이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놀았던 알프스 산자락이 생각났다. 호수에 노니는 백조를 바라보며 오페라의 한 장면을 떠올리며 마냥 행복했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는 그곳에 성을 지었다. 세상으로부터 은둔하기 위한 은신처나 마찬가지였다.
백조가 서식해 슈반가우(Schwangau)라 불린 산골. 왕의 성은 채 완공되지 않았지만 외관은 완성되었고, 그 모습은 매우 아름다웠다. 그러나 은둔지로 지은 성에서조차 왕은 오랜 날 머물지 못하고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다. 아름다운 풍경과 아름다운 고성, 그러나 거기에 담긴 슬픈 이야기. 퓌센(Füssen)의 매력을 다섯 가지 장면으로 소개한다.
Scene 1. 노이슈반슈타인성
바로 그 왕 루트비히 2세. 젊은 나이에 바이에른 국왕이 되었지만 사회에 적응하지 못했다. 세상으로부터 숨기 위해 슈반가우 외딴 산골에 성을 지었는데, 자신이 좋아하는 백조의 형상으로 직접 스케치하여 도안을 만들 정도로 애착을 보였다. '새롭게 돌로 만든 백조'라는 뜻의 노이슈반슈타인성(Schloss Neuschwanstein)은 내부가 일부 미완성이지만 그 아름다움을 확인하기에는 조금도 모자람이 없다. 절벽에 걸쳐 웅크린 한 마리 백조를 보는듯 도도하고 아름답지만, 세상으로부터 격리된 쓸쓸한 정서가 느껴진다.
Scene 2. 호엔슈반가우성
루트비히 2세가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왔던 바이에른 왕실의 별궁이다. 이런 궁전을 놔두고 루트비히 2세는 더 깊은 산속으로 숨어들었다. 노이슈반슈타인성을 공사할 때에 루트비히 2세가 호엔슈반가우성에 머물며 발코니에서 망원경으로 공사현장을 감독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Scene 3. 알프 호수
고요한 알프스 산세 틈에 에메랄드빛으로 일렁이는 청정 호수. 루트비히 2세가 어린 시절 여기서 백조를 보았고, 그 모습에서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의 주인공을 떠올렸다. 루트비히 2세는 바그너를 몹시 존경하였으며, 바그너의 작품을 향한 광적인 집착을 보이기도 하였다. 그런 왕의 집착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날에도 호수에 백조 몇 마리가 노닌다.
Scene 4. 라이헨 거리
노이슈반슈타인성과 슈반가우는 너무 유명한 관광지다. 그런데 퓌센이 외딴 산골이다보니 대도시 뮌헨에서 원데이투어로 바삐 다녀가느라 미처 간과하는 사실이 있는데, 슈반가우만 아름다운 게 아니라 퓌센 사가지도 상당히 매력적이라는 것이다. 보행자 거리로 길게 쭉 뻗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파스텔톤 옛 건물이 올망졸망 모여있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다.
Scene 5. 호에성
퓌센 시가지에도 언덕 위에 육중한 성이 있다. 원래 바이에른 왕실에서 별장을 찾던 중 먼저 눈독을 들였던 곳이라고 한다(결국 더 좋은 호엔슈반가우성으로 택하였지만). 붐비는 퓌센 시가지가 지척에 있지만 호에성은 조용하다. 살짝 낡은 느낌으로 더욱 운치를 자아낸다.
루트비히 2세는 노이슈반슈타인성을 채 완성하기 전에 이미 두 곳의 성을 더 짓기 시작하면서 점점 세상으로부터 깊숙히 숨으려 하였다. 궁전에 집착하며 왕실 재산을 모조리 탕진하자 바이에른 의회는 루트비히 2세를 정신병자로 진단하고 왕에서 물러나게 하였다. 결국 루트비히 2세는 자신이 그토록 공들인 성에서 머문 날이 얼마 되지 않는다.
노이슈반슈타인성의 탁월한 건축미는 그 안목 높은 디즈니까지 홀렸고, '신데렐라의 성'에 깊은 영감을 주었다. '백조의 성'은 '디즈니성'이면서 '미치광이의 성'이다.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 젊은 국왕의 슬픈 이야기를 품은 홀리도록 아름다운 성이 있다.
<독일 소도시 여행>
2007년부터 독일을 여행하며 그동안 다녀본 100개 이상의 도시 중 소도시가 대부분입니다. 독일 소도시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 독일여행에 깊게 발을 들이게 된 여행작가가 독일 소도시의 매력을 발견한 장면들을 연재합니다. 물론 그 중에는 객관적으로 소도시로 분류하기 어려운 곳도 있지만 까다롭게 따지지 않기로 합니다.
(매주 일요일 연재)
독일 소도시에 담긴 역사, 문화, 풍경, 자연 등 다양한 이야기를 읽기 편한 한 권의 책으로 엮었습니다. 35개의 독일 도시에 담긴 이야기를 담은 쉽게 읽히는 여행 에세이로 독일의 진면목을 발견하세요.
동화마을 같은 독일 소도시 여행 (유상현 지음, 꿈의지도 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