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브레히트 뒤러, 자화상 (1500)
<여행지에서 만난 그림 한 점>
- 작품명 : 자화상 (Self-Portrait at Twenty-Eight)
- 작가 : 알브레히트 뒤러 (Albrecht Dürer)
- 제작시기 : 1500년
- 전시장소 : 뮌헨 알테 피나코테크
1500년대 초반이면 아직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전이다. 즉, 신성로마제국은 철저히 종교권력의 손아귀에 있던 시절이고, 세속권력보다 종교권력의 권위가 인정받던 시절이다. 그런데 고작 그림이나 그리는 화가가 종교권력의 심기를 거스른다? 높은 확률로 살아남기 어렵다. 여기 그 어렵다는 과업을 이루고 명성까지 떨친 별종 같은 한 사람이 있다.
알브레히트 뒤러. 그는 자화상을 그렸을 뿐이다. 그런데 이게 예사롭지 않다. 그 시절, 아무리 대단한 화가라 해도 "감히" 자신의 정면을 스스로 그려 화폭에 채우진 못했다. 정면 초상화는 성서의 인물 또는 신화의 인물에게나 허락된 영예였다. 나머지 인물의 자화상은 살짝 돌아서 66~75%의 측면을 보이는 구도를 택했다. 심지어 황제나 왕도 자신의 초상화를 의뢰할 때 이 구도에서 벗어난 그림을 그리라고 "감히" 명하지는 못했다.
뒤러는 금기에 도전했다. 자신의 정면을 그린 그림을 발표했다. 심지어 붉은 빛이 도는 머리카락도 마치 염색이라도 한듯 흑발에 가깝게 연출했다. 만약 별다른 사족을 붙이지 않고 그림을 보여주면 많은 사람들이 예수그리스도를 연상할만한, 그게 당연한, "도발적인" 자화상이 탄생하였고, 심지어 당시에 꽤 고가였던 모피코트까지 입은 모습이 담겼다. 이 시기 뒤러는 아직 명성을 크게 떨치기 전이었기 때문에 모피코트를 입을 정도의 재력을 가진 신분으로 보기는 어렵다. 분명 이 작품은 자화상이지만, 있는 그대로 그린 게 아니라 작가의 연출이 가미되었고, 기존에 없던 대담한 도전을 담고 있는 셈이다.
궁금해졌다. 자칫 신성모독이라 욕먹고 고초를 치르기 딱 좋을 이런 그림은 어떻게 탄생하였을까? 유럽을 휩쓴 혁명과도 같은 르네상스는 이탈리아를 거쳐 프랑스로 흘러들어갔다. 당시 독일, 즉 신성로마제국은 이 흐름에 한 발 뒤쳐졌고, 독일 출신의 젊은 화가 뒤러는 이탈리아를 방문하였다가 르네상스에 매료되어 돌아왔다. 그는 독일에서 르네상스가 시작됨을 선언할 상징적인 작품을 원했다.
감히 신과 같은 포즈로 화가 자신을 그린 것은 르네상스의 인본주의 철학의 차용이다. 인간도 그만큼 존귀하다는 것이다. 그는 머리카락 색까지 바꿔가며 명백히 자신을 예수그리스도처럼 보이도록 그렸다. 도발이다. 부의 상징인 모피코트를 입은 모습으로 예술가도 사회 지도층에 뒤지지 않는 인정을 받는 위치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은 것이다. 당시로서는 법보다 중요한 사회의 기준이었던 "신과 인간의 관계" "고귀한 신분과 평범한 신분의 관계"에 도전장을 낸 것이나 마찬가지다.
시그니처도 의미심장하다. 뒤러는 그 시절에 이미 "브랜딩"이 뭔지 아는 천재였다. 자신의 이름 이니셜인 A.D를 마치 브랜드 로고처럼 만들어 작품에 사용하였는데, 이 작품에도 등장한다. 또한, 인물의 구도에 있어서도, 장발을 늘어트린 얼굴의 형태는 A, 코트를 살짝 쥔 손모양은 D를 연상시킨다. 이처럼 A.D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데, A.D는 뒤러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서기(AD; Anno Domini)로 해석될 수도 있다. Anno Domini는 "예수그리스도 탄생 이후"를 뜻하는 것. 다시 말해서, 뒤러의 선언적인 자화상이 독일 르네상스의 탄생을 가르는 기준점이라는 뜻이 된다.
작품에 적힌 글귀도 의미심장하다. 자신의 얼굴을 기준으로, 한쪽에는 브랜드 로고 같은 A.D를, 다른 한쪽에는 "뉘른베르크 출신의 나 알브레히트 뒤러는 28세 되는 해에 실제와 같은 색으로 나 자신을 그렸다"는 뜻의 글귀를 적었다. "실제와 같은 색"이 무얼까? 보이는대로 화폭에 옮겼다는 뜻일 터. 즉, 연출이 가미된 이 그림이 허구가 아니라 "결국 현실에 이루어질 것"을 언하는 용감한 선포와 같다.
혹자는 뒤러를 일컬어 "알프스 이북(당시 이탈리아의 시선에서 신성로마제국을 일컫는 말)의 다빈치"라고 표현하였다. 뒤러가 이 문제의(그러나 아무도 문제를 눈치채지 못한) 자화상을 그린 시기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모나리자>를 그린 시기와 겹친다. 다빈치와 동시대에 뒤러는 그에 뒤지지 않는 인상적인 르네상스의 성취를 이루었다. 남들보다 한 발 늦게 르네상스에 눈 뜬 독일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선도한 선구자와 같다.
이제 막 이름을 알린 독일의 젊은 화가가 이탈리아에서 보고 온 르네상스에 매료되어 자신의 조국에 출사표를 던진다. 그림으로 성공할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으로, 앞으로 더 잘 나가고 인정받아 돈도 많이 벌게 될 자신의 미래를 기대하면서, 금기를 깨고 과감히 첫 발을 내딛는다. 그렇게 독일에 르네상스가 시작되었고, 종교개혁이라는 격랑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뒤러의 작품은 살아남았다. 평범한 초상화가 아니라, 한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거대한 전환점이 이 한 점의 그림에 담겼다.
뒤러는 용감했고, 뒤러의 작품은 탁월했다. 그의 선언은 이루어졌다.
<여행지에서 만난 그림 한 점>
미술에 문외한인 여행작가가 여행 중 만난 미술 작품을 이야기하는 코너입니다. 어느날은 길게, 어느날은 짧게, 어느날은 비평으로, 어느날은 감상으로, 하여튼 미술을 말합니다.
(매주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