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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게임을 작품으로

야코프 요르단스, 콩 왕의 축제 (1640/1645)

by 유상현

<여행지에서 만난 그림 한 점>

- 작품명 : 콩 왕의 축제 (The Feast of the Bean King)

- 작가 : 야코프 요르단스 (Jacob Jordaens)

- 제작시기 : 1640/1645년

- 전시장소 : 비엔나 미술사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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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년쯤 전 한 여가수가 발표하여 세계적인 인기를 끈 노래 <아파트(Apt.)>는 '술 게임'이 작품이 되어 대중에게 사랑받은 케이스다. 그로부터 약 400년 전, 지구 반대편 유럽에서도 비슷한 케이스가 있었다. '술 게임'을 작품으로 만들어 성공을 거둔 플랑드르 화가 야코프 요르단스의 이야기다.


17세기 화가 요르단스는 당시 평범한 민중의 일상을 주로 그렸다. <콩 왕의 축제> 역시 당시 주현절(1월 6일)마다 열린 민속문화를 소재로 하며, 심지어 같은 내용의 그림을 다른 버전으로 여섯 작품이나 남겼을 만큼 요르단스가 애착을 가진 주제였다.

술 게임의 룰은 이러하다. 콩 한 조각을 넣은 파이나 케이크를 구워 사람들이 함께 나눠먹는다. 이때 콩이 들어있는 조각을 받은 사람이 그 날의 '왕'이 되고, 참석자 중 '왕비'를 지명한다. 이후 '왕'이 술잔을 들면 그 자리의 모든 이들은 함께 술잔을 든다. 만약 술고래가 '왕'이 되면 그날 모든 참석자는 집에 다 갔다고 봐야 한다.


작품을 보자. 왕관을 쓴 할아버지가 오늘의 '왕'이다. 그가 술을 마시자 참석자 모두 술잔을 높이 들었다. 심지어 어린아이까지도 뭔가를 마시고 있는데, 당시 지역 풍습을 고려했을 때 어린아이라고 해서 예외를 허락하지는 않았다고 하니 조심스럽게 음주 중일지 모르겠다. 한 참석자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겠는지 그 자리에서 힘들어하는 모습을 감추지 못한다. 창밖의 햇살을 보니 낮술이 틀림없다.

어쨌든 모두가 즐겁게 파티를 여는 너머로 벽에 한 글귀가 쓰여있는데, "술 취한 사람보다 미치광이는 없다"라는 뜻이란다. 이들을 비판하거나 조롱하는 것보다 오히려 이들의 음주가무를 역설적으로 추켜세우는 장치로 읽힌다.


그림에서 술 냄새가 나는 듯한 이 광란의 현장. 그런 와중에 그림으로서의 완성도가 매우 훌륭하다는 것이 키포인트라 하겠다. 요르단스는 루벤스와 함께 그림을 배웠고 이후 루벤스에게 그림을 더 배웠다. 빛과 그림자를 예술적으로 표현한 당대 네덜란드/플랑드르 거장의 스타일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흡수하여 풍부한 표정과 사물의 질감을 살려준다. 인물의 배치, 시선 처리, 건배하는 와중에도 겹치지 않는 자연스러운 구도, 개와 고양이 등 깨알같은 찬조출연자까지 모든 게 완벽하다.


그렇게 '술 게임'은 작품이 되었다.


<여행지에서 만난 그림 한 점>

미술에 문외한인 여행작가가 여행 중 만난 미술 작품을 이야기하는 코너입니다. 어느날은 길게, 어느날은 짧게, 어느날은 비평으로, 어느날은 감상으로, 하여튼 미술을 말합니다.

(매주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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